사생활도 없이 활동…기증자 가족 '감사'에 보람
기증 동의권자 동의 획득 애로…경찰 도움 절실
장기기증 대국민 인식 개선 위해 홍보·교육 필요
[세종=뉴스핌] 임은석 기자 = # 경기도에 위치한 K병원에서는 평범한 주부이던 김경숙님의 장기기증이 있었다. 그냥 평범했던 기증이었지만 그 병원에 재직 중인 한 신장내과 의사가 기증자 가족에서 편지를 건네주면서 가족들은 울음바다가 됐다.
의사는 이번에 이식을 받게 된 환자의 주치의로 10년 동안 병원을 다니던 환자가 운 좋게 기증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아 이식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증자와 그 가족에게 감사 편지를 전한 것이다.
가족들이 비로소 생명나눔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며 감동한 순간이었다. 기증을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어떤 사람이 이식을 받는지 아무 정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상 편지를 받고 보니 실감이 난 것이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기증자 가족에게 장기기증 동의를 구하고 있다.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2021.03.29 fedor01@newspim.com |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누구나 좋은 의사를 만나 수술 잘하면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을 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뇌사는 안타깝게도 뇌를 다쳐서 어떤 치료를 해도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이른다.
소생 가능성은 없지만, 아직 장기는 멀쩡한 뇌사추정자들로 부터 장기를 기증받아서, 장기가 나빠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장기기증이다. 중간에서 이들의 생명과 생명을 잇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이다.
◆ 연락 즉시 출동, 사생활 없이 활동…기증자 가족 '감사'에 보람
KODA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국내 유일의 장기구득기관이자 조직기증 지원기관이다. 전국에 약 60여 명의 코디네이터를 두고 병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뇌사추정자를 신고받아 그들로부터 얻은 장기를 통해 이식대기자들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코디네이터들은 연락이 오면 즉시 출동해야 한다. 주말이나 공휴일, 야간에도 연락이 오면 근무를 하러 가야만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대전의 정승례 코디네이터는 급하게 병원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딸을 가까운 동료의 집으로 보낸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장기기증 등록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2021.03.29 fedor01@newspim.com |
직장동료들끼리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것도 불가능할 때는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2011년부터 장기기증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과 긴밀히 움직인다. 이들이 방문해야 하는 병원은 자그마치 379개 병원이다. 기증자를 관리하면 평균 2박 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지내야 해 기증이 종료되고 나면 피곤이 끝까지 몰려온다.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만 보람도 크다. 보통은 기증자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보내는 상황이라 예민해져 있다.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모든 단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안내하면서 멍한 상태인 가족들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기증이 종료되면 가족들은 코디네이터 선생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 순간이 코디네이터들에게는 가장 감사한 순간이고 보람이기도 하다.
◆ 기증 동의권자 동의 획득 애로…경찰·동사무소 도움 절실
기증은 매번 똑 같지 않다. 기증자의 살아 온 삶이 다르듯, 그들이 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기증을 위해서는 선순위 동의권자의 동의가 필수다. 서로 오랫동안 연락을 하고 살지 않았을 경우 부담스럽다며 결정을 거부하기도 한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장기기증 등록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2021.03.29 fedor01@newspim.com |
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동의권자가 형제·자매인 경우, 환자와의 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떼지 못해 기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선순위 동의권자를 찾아내지 못해 기증을 놓치기도 한다.
형제가 여러 명일 경우 서류상으로 가장 선순위에 해당하는 큰형이나 누나가 선순위지만 그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경찰과 동사무소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이다.
"기증을 시작하면 모든 과정이 어렵지만, 무엇보다 동의를 받는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저는 동의서만 받으면 기증의 50% 정도는 진행했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활동중인 서명균 코디네이터의 말이다.
문인성 KODA 원장은 "어렵게 기증을 결심하는 가족들의 의견을 존중해 법이 좀 더 현실적으로 고쳐져야 한다"며 "상황상 가족관계 증명이 어려운 경우는 담당 정부 부처에게 판단을 맡기는 등의 대안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기증은 갑작스레 결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평상시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한 번 쯤 생각한다면 장기기증 결정이 좀 쉽지 않을까 싶다"며 "평상시 대국민 인식을 위해 홍보와 교육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fedor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