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김선영이 영화 '세자매'로 극사실주의에 기반한 일상 연기의 정수를 선보였다. 순식간에 모두의 연민을 이끌어내지만, 스스로는 정말로 그 인물 자체가 된 듯하다.
20일 김선영과 '세자매' 개봉 기념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출을 맡은 이승원 감독은 김선영과 부부사이다. 계속해서 감독과 배우로 작품을 함께 해온 만큼, 이번에도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감독님이 제 남편인 건 아시죠. 그분 작품에 거의 다 제가 출연했죠.(웃음) 저를 놓고 작품을 썼다기보다 제게 영감을 많이 받아서 여러 인물에 녹여내시는 듯 해요. 희숙은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있거나 누군가와 관계가 안풀릴 때 내 탓으로 돌리는 타입이에요. 이 사람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죠. 사과하고 괜찮은 척 하고,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게 희숙 캐릭터의 핵심이에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김선영 [사진=리틀빅픽처스] 2021.01.20 jyyang@newspim.com |
김선영의 연기에 함께 호흡한 배우 문소리도 그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집 나간 남편에게 돈을 뜯기고 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희숙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냐는 질문에, 김선영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놨다.
"표현할 때 고민을 한다기보다 그 전에 왜 그런가,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 항상 생각하며 연기하려고 해요. 어떤 인물을 맡았을 때 그 룩, 상태를 먼저 바라보죠. 그게 잡히면 인물에 훅 들어가게 돼요. 아 이런 사람이구나. 이해하고 접근하는 거죠.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문소리 언니에게 정말 감사해요. 하하. 감독님 전작 '소통과 거짓말'에서 연기한 걸 심사위원으로 보시고 특별히 언급해주시면서 인연이 됐어요. 현장에선 사랑이 워낙 큰 분이에요. 연기 외에도 영화의 모든 것에 그게 다 미치죠. 다 주시하고, 소통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지혜로워요. 정말 많이 배웠죠."
김선영은 '세자매'를 직접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희숙도 그렇지만 문소리가 연기한 미연 역에 크게 몰입됐음을 털어놨다. 특별히 그는 인물을 향한 이승원 감독 특유의 시선과 표현 방식에 푹 빠져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봤을 때보다 제 마음이 미연에게 가더라고요. 미연이 영화의 중심이 돼서 이 언니, 이 동생, 내 아이들, 가족, 남편까지.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미연을 보면서 참 버겁게 산다 싶었고, 몰입이 많이 돼서 끝나고 많이 울었어요. 소리 언니가 했던 얘긴데 이승원 감독이 연출하는 인물이나 상황들이 어떻게 보면 극사실주의로 극대화돼있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 안에는 좀 극단적인 인물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죠. 그 지점에 굉장히 공감해요. 남편 작품을 늘 같이 해서 잘 알고 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김선영 [사진=리틀빅픽처스] 2021.01.20 jyyang@newspim.com |
의외로 김선영은 연기를 하면서 희숙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동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짠하기 그지없는 희숙을 만나 안아주고 싶은 순간이 있었냐는 물음에도 "제가 안아주면 희숙이가 불편해할 것 같다"는 나름의 해석을 내놨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그의 답변에 절로 동조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희숙이 만나서 안아주면 '아 저 괜찮아요' 하면서 불편해할 것 같아요. 하하.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아픈 기억이나 슬픔을 회피하는 타입인데 습관이 되면 진짜 그런 게 없다고 속을 수 있거든요. 극대화된 지점이 '빨리 밥 먹자고! 나 괜찮다고!' 막 소릴 지르잖아요. 밥이 입에서 막 쏟아지는데.(웃음) 촬영 전에 1년 정도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어요. 연기 전에는 힘든 순간들이 안쓰러운 맘이 들기도 했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맘이 쓰였죠. 근데 인물을 연기할 땐 자기연민이 도움이 많이 안돼요. 저의 그런 해석 때문에 연기를 불쌍하게 하면 좀 재미없어지기도 하고요. 얘가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을 거니까. 연기할 땐 쌈박하게 했죠. 희숙이 돼서 난 이렇게 느꼈어. 하면서 연기했죠."
특히 김선영은 극중 희숙의 남편과 딸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남편과 딸이 제 앞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럴 일은 요만큼도 없다"면서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앞서 문소리가 말한 것처럼, 늘 남편과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는 말에도 동의했지만, 그 역시 익숙한 풍경이라고.
"같이 작품을 많이 만들었고 늘 함께하는 동업자죠. 서로 의견을 어마어마하게 나누는데 그 외에는 거의 대화가 없어요. 하하. 굉장히 격렬한 토론에 익숙하고 재밌고 그래요. 아무래도 여러 편을 해서, 저는 진짜 딱 보면 알아요. 늘 이승원 작가의 글을 봤고 제가 가장 빨리 해석해내는 배우일 거예요. 척 하면 척하고 알아요. 촬영장에서도 감독이 그냥 '이거 좀, 더 이렇게 갈게' 하면 모르실걸요? 근데 저는 알아요. 거의 환상의 호흡이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세자매'에 출연한 배우 김선영 [사진=리틀빅픽처스] 2021.01.20 jyyang@newspim.com |
늘 집에서 마주보는 가족과 일까지 같이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김선영은 이승원 감독과 작업에 만족하고, 그를 존경하는 남편이라고 말했다. 급한 상황에서 남편의 안목이 고팠던 그는, 현금을 걸었던(?) 일화까지 털어놓으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남편을 만나서 제 연기가 정말 많이 좋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졌어요. 작업자 이승원 감독의 매력이 곧 내 남편의 매력이죠. 하하. 정말 존경하는 게, 인물과 작품을 읽어내는 힘을 지녔거든요. 얼마나 신뢰를 하냐면 어떤 드라마 촬영 바로 내일인데 캐릭터 구축이 안되는 거예요. 남편은 일이 또 있으니까 자야 하는데 빨리 이 인물의 핵심을 잡아내고 싶은데 죽겠더라고요. 막 깨우면서 '현금 100만원 지금 바로 주겠다. 어디 썼는지 묻지 않겠다' 하니까 눈을 번쩍 뜨더라고요. 웃긴 게 진짜 100만원 어치 했어요. 그 인물의 핵심, 제게 영감을 딱 던지더라고요. 그래서 연기를 한 적도 있어요. 그 사람이 인물과 작품을 읽는 힘, 시선을 믿어요."
김선영은 '세자매'를 보는 관객들에게 어떤 한 가지 메시지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인물로 극대화된, 극단적인 순간들이 파편적으로 모두에게 다가가는 순간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나만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고, 나만 가족과 힘들고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느끼게 되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고 얘기했다.
"가족 안에서 사랑받거나 보호받지 못한 순간이 누구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응어리가 누구에게 더 크냐 작냐의 문제죠. 너무 상처가 큰 사람에겐 어쩌면 더 아플 수도 있고 파편적으로 그런 기억이 있는 분에게 '나도 그랬는데' 하고 공감을 던지겠죠. 각자 나름의 가족이란 테두리 안의, 관계로 인한 응어리가 있는 모두에게 주는 위로가 있다고 봐요. 그걸 이 인물들이 '나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있고 손을 잡아주는 영화가 아닌가 해요. 다만 척지고 비난하는 거에서 끝날 거면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각자의 용서의 지점이나 그 색깔이 다를 수 있어요. 용서, 이해 또는 받아들임, 연민 이런 방향으로 마무리되면서 세 자매가 바다를 걸어요. 결국은 색깔이 다른 사랑과 용서를 얘기하는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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