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 말 135조원 돌파 추정...PB형 랩 성장세
투자자 성향 반영한 맞춤형 투자·자산관리 서비스
"사모펀드 정상화까지 랩 시장 규모 더 커질 것"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잇단 사건으로 사모펀드에 등을 돌린 큰 손 투자자들이 이젠 랩어카운트(랩)로 대거 몰리고 있다. 비교적 투자자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동시에 운용 투명성까지 확보돼 사모펀드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고는 131조1800억원으로 연초(119조1003억원) 대비 10.1% 증가했다. 지난 2017년 말 이후 3년 가까이 110조원대에만 머물던 잔고는 지난 7월 120조원을 넘어선 뒤 지난 10월 130조원을 돌파했다. 올 11월 통계치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이 같은 추세를 고려하면 랩 잔고는 135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랩 잔액을 운용형태 별로 살펴보면 국내 증권사가 판매한 지점형(PB형) 랩 잔액은 연초 4조2950억원에서 지난 10월 5조7219억원으로 33.2%(1조4269억원)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본사운용형 랩 잔액은 114조6660억원에서 125조2950억원으로 늘었다. 사모펀드 설정액이 지난해 월 평균 9조2191억원에서 올해 1~10월 5조803억원으로 급감한 것과 대조를 보인다.
랩은 사모펀드와 달리 투자자의 성향을 반영하고 투자과정에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산가들이 사모펀드 대신 랩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펀드에 자금을 묶어놨던 고액 자산가들이 올해 초부터 이탈 조짐을 보이더니 옵티머스 사태 이후로 본격적으로 랩 상품으로 옮겨온 것 같다"며 "각 증권사들도 이들을 잡기 위해 프리미엄 랩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랩은 증권사의 금융자산관리사가 고객이 맡긴 자금을 고객의 투자 성향에 따라 운용 배분, 투자종목 추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일정률의 수수료를 받는 상품이다. 투자자가 직접 종목을 매매하는 기존의 투자 방식과는 달리 고객의 재산에 대해 자산 구성부터 운용 및 투자 자문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종합금융서비스인 셈이다. 랩은 투자자의 성향이나 투자 과정이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사모펀드와는 대척점에 있는 상품으로도 취급된다.
이처럼 랩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커지면서 증권사들도 랩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에선 기존 랩 상품들이 전에 없던 히트를 기록하는 등 판매액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먼저 신영증권은 전날 미국 등 선진국 증시에 상장된 고배당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에 투자하는 '신영 글로벌 밸류업 리츠 랩'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입지 ▲공실률 ▲배당성장률 ▲배당 안정성 ▲시장 트렌드 등 정량적·정성적 분석을 거쳐 선정된 리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지난 14일 '한국투자글로벌신재생에너지WIN랩'을 출시하고 투자자 모집을 마친 상태다. 이 상품은 미국에 상장된 신재생에너지 ETF에 주로 투자한다. 편입 투자종목인 FAN, LIT 등 5개 ETF는 전세계 150여개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목을 나눠 담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KB증권이 'KB 에이블 어카운트 이지폴리오'를, 유안타증권은 '유안타 뉴웨이브 랩' 등 잇달아 랩 상품을 출시했다.
아울러 한화투자증권의 랩 상품인 '한화 델타 랩'은 지난 21일 연간 판매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2018년 첫 선을 보인 이 상품은 서울대 수학과 박사 출신의 운용역이 금융공학 모델을 기반으로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등 기초자산의 변동성에 따라 운용하는 서비스다.
증권가는 사모펀드 부실화에 따른 반사이익과 경쟁력 있는 랩 상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당분간 시장 규모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고액 자산가를 위한 랩 상품이 쏟아졌다면 최근에는 가입금액을 낮추고 펀드처럼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들이 속속 나오면서 랩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사모펀드 정상화까지는 상당 기간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내년도 랩 시장은 올해보다 더 몸집을 불릴 것"이라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