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정우가 '이웃사촌'으로 휴먼드라마의 대가 이환경 감독과 만났다. 쉽지 않은 블랙코미디 장르에서, 정우는 주연 대권 역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17일 정우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면서도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인터뷰 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화 속 정우는 그의 말처럼 '불나방처럼'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가장, 유대권을 열연했다.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롭네요. 몰랐는데 생각보다 오랜만에 인사드리게 됐어요. 가장 중요한 건 관객분들의 반응이나 평가가 아닐까요. 많이 사랑해주셨음 해요. 그래도 보시기에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저도 최선을 다했고요. 감독님이랑은 예전에 작업한 후 15년 넘게 시간이 흘렀어요. 이렇게 재회한 게 기쁘고 '이웃사촌'이란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굉장히 영향을 크게 미쳤어요. 영화 속 제 연기나, 아쉬운 부분은 분명 있지만, 개인적으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리틀빅픽처스] 2020.11.17 jyyang@newspim.com |
정우는 '이웃사촌'의 출연을 수락하기까지, 이환경 감독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전에도 몇 번 출연 제안은 주셨다. 타이밍이 안맞아서 함께 못했지만 늘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시고 챙겨주신 분"이라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지금 '이웃사촌' 같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전부터 늘 아껴주셨어요. 늘 감사함을 갖고 있었죠. 작품 제안해주셨을 때 시나리오 꼼꼼히 읽지도 않고 일단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일단 감독님께 신뢰가 있었고, 시나리오를 봤더니 대권이란 캐릭터가 욕심났어요. 연기를 하면서는 물론 중압감이 들었죠. 그래도 불나방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처럼 앞뒤 재지않고 돌파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실제로 이환경 감독은 정우를 '라이온킹'의 심바로 빗댈 정도로 그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이 얘기가 나오자 정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쑥스러워했지만, 기분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많고 많은 별명과 표현 중에 하필이면 심바라고 하셨을까요. 하하. 주변에서 그래도 잘 어울린다고 말씀들 해주셨어요. 저를 '심바야'하고 부르시는 분들도 있고요. 예전엔 주변 분들이 '짱구야 짱구야' 하고 부르셨는데 이제 심바가 됐죠. 저는 그냥 신나요. 감독님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재밌어요. 괜찮은 별명인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리틀빅픽처스] 2020.11.17 jyyang@newspim.com |
'이웃사촌'은 정치적으로 엄혹한 시대, 가택연금된 야권 정치인 도청 임무를 맡은 도청팀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소 무거운 소재와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끊이지 않는 유머코드로 객석을 쥐고 흔든다. 정우의 몫도 빠지지 않는다. 대권의 '웃픈' 처지는 블랙코미디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웃기고 유쾌한 장면이 많지만, 저희는 굉장히 진지하게 찍었어요. 진지하기 짝이 없었죠. 보통 뭐 현장에서 웃음꽃이 많이 피고 그럴 수도 있지만, 물론 우리 현장이 무거웠던 건 아니에요. 하하. 매사에 굉장히 진지하게 찍었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컷 하면 감독님은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생각하신 그림이나 연출 방향이랑 맞아 떨어질 때 배우들이 힘이 날 만한 리액션을 해주셨어요. 아주 뜨겁고, 따뜻하신 분이죠. 개인적으로 전 시나리오 보면서 '부스럭 부스럭' 이게 무슨 소린지 너무 궁금했어요. 관객분들이 그 부분을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해요."
특히 계속해서 웃음코드 얘길 이어가던 중, 정우는 팬티 바람으로 미친놈처럼 도로를 활보하는 장면을 찍을 때를 떠올렸다. "발악을 하면서 찍었다"는 그는 어떻게 톤조절을 해야할지 감독과 계속해서 고민했던 과정을 털어놨다.
"리딩 때 막 발악을 했죠. 현장감이나 분위기를 아직 모르니까요. 텍스트로만 읽으니까 선배님들이 이거 좀 이상하대요. 하하. 옷을 얼마나 벗을지, 팬티도 삼각으로 갈지 사각으로 갈지, 양말을 벗어야 하는지. 몸은 또 너무 좋으면 안된다는 등. 여러 가지를 고심했어요. 근육질 안된다고 운동하지 말라셨죠. 어찌보면 굉장히 안타깝고 슬픈 장면일 수 있는데 음악은 굉장히 유쾌한 뽕짝같은 게 깔려요. 반어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이죠. 그래서 그 신이 참 묘해요. '웃프다'는 말이 딱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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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이 영화를 찍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을 믿고 갔다고 했다. 그는 "산으로 가자면 산으로, 바다로 가자면 바다로 갔다"면서 이 감독과 함께 귀한 경험을 했음을 털어놨다.
"대권이 혼자서 카메라를 대면하는 신이 많았어요. 그 너머 감독님과 교감과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죠. 항상 감독님은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저와 똑같이 느끼면서 촬영하세요. 동료애가 넘치는 현장이었고 그 힘으로 정말 녹록치 않은 촬영을 버텼죠. 누군가는 제게 연기를 쉽게, 편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대요. 사실 정반대예요.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치며 매달리죠. 매 작품 할 때마다 가랑이가 찢어져요. 하하.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절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고 힘을 주셨어요. 제 영화라서가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감독님을 응원하고 싶어져요."
매 촬영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 녹초가 됐다는 정우. 그러면서도 "빨아서 또 탁탁 털면 개운하다"면서 아이러니한 연기의 매력을 얘기했다. 이 감독이 세상을 떠난 절친한 친구의 이름에서 유대권을,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이의식의 이름을 따온 만큼, 정우는 그토록 소중한 '이웃사촌'이 많은 이들에게 가 닿는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굉장히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대권인데 이상하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민이 느껴져요. 대권이는 내 편이 돼줄 것 같았죠. 그럼 든든할 것 같았고요. 그걸 잘, 진정성있게 표현하는 게 참 쉽지 않았죠. 매력있는 인물이고, 이 영화를 보시면서 대권이에게 관객들의 감정이 올라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중에 대권이가 뭔가를 해줬으면 하고 응원하게 될 거고요. 거기서 움직여줘야 하는 사람이 대권이니까요. 장르를 떠나 영화를 통해 위로받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그러시길 바라죠."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