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 떨어져 더 많이 배송해야 수익, 근본적 원인 지적
택배3사 근로자 보호 대책 내놨지만 요금 정상화 우선
택배업계 "가격 경쟁 지양, 품질·서비스로 경쟁해야"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택배업계가 근로자 보호 대책을 내놓으면서 택배요금 현실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택배 단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일부 마련된 상황. 단계적으로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택배시장은 지난 2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울며 겨자먹기'식 저가 경쟁으로 택배 요금은 오히려 30% 가량 떨어졌다. 요금이 내리면서 배달 기사들의 배달 물량은 점점 늘어났고, 과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26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택배3사는 근로자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과로 방지 대책을 연이어 내놨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 photo@newspim.com |
각 회사들의 대책을 보면 골자는 택배 분류지원인력 추가 투입이다. CJ대한통운은 분류지원인력을 현재 1000명에서 4000명으로 3000명 늘리고, 한진과 롯데도 각각 1000명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대한통운의 경우 추가 인력 채용으로 매년 5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용 부담은 향후 대리점과 협의해 절반씩 부담하거나, 사측이 전액 부담하는 방법이 있다. 한진의 경우 추가 비용을 사측에서 부담한다고 밝혔다.
인력 투입과 함께 자동 분류 기기 등 설비 투자에도 대대적으로 나선다. 대한통운은 소형상품 전용분류장비를 2022년까지 100곳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한진은 자동 분류기 투자에 500억원, 롯데도 장기적으로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사측이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면서 업계 숙원인 택배요금 인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그간 택배업계는 물가 상승, 원가 상승 등 여러 요금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저가 택배비를 내세워 점유율을 빼앗는 치킨게임 양상을 벌여 왔다.
예를 들어 한 쇼핑몰이 배송 계약을 체결할 때는 서비스 품질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배송료를 가장 낮게 책정하는 곳과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여기에 고객이 결제한 택배비 일부를 쇼핑몰이 챙기는 관행이 생겨나면서 택배사들과 택배 기사들의 사정은 더 악화됐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건당 3200원 정도였던 평균 택배비는 2012년 2506원으로, 지난해에는 2269원까지 내렸다. 통계청 서비스 물가지수를 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세차료는 2.4배, 이삿짐 운송료는 1.7배 올랐지만, 택배이용료는 유일하게 내렸다.
같은 기간 택배비는 내렸지만 택배 이용 건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지난해 27억8980만개로 8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2000년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연 2.4건에서 지난해 53.8건으로 22배 넘게 올랐다.
물량은 늘어나는데 건당 비용이 줄어들다 보니 택배 근로자들은 점점 더 많은 택배를 나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졌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박스당 10원의 단가인상만 하더라도 약 180억원의 추가 수익 가능해 약 30원 수준의 단가 인상으로 늘어나는 비용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며 "특히 택배근로자의 과로사 문제는 대한통운만의 문제가 아닌 택배사 전체의 문제로 단가 인상을 위한 사회적 저항은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택배사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과거에도 택배비 인상을 추진하려 했지만 시장의 반발로 무산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CJ대한통운이 27년 만에 처음 택배비를 10% 올렸다가, 쇼핑몰들의 계약 취소 등에 부딪혀 5개월 만에 무산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사들의 결정만으로 단가를 인상하기 힘들다"며 "택배사들도 출혈 경쟁을 지양하고 화주들도 가격보다 품질이나 서비스 비중을 두고 택배사를 선정하는 방식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