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가을 극장가를 영화 '담보'가 장악했다. 성동일, 하지원, 김희원과 아역배우 박소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뜨거운 감동과 눈물을 담보하며 추석과 한글날 연휴에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하지원의 선택은 다소 의외였지만, 틀리지 않았다.
벌써 데뷔 24년 차 배우 하지원. 스크린 나들이도, 이런 휴먼 드라마 장르의 영화도 오랜만이었다. 그간 사극, 액션, 로맨스 등 온갖 장르물을 섭렵한 것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과 스타성으로 인정받아 온 그의 선택은 약간의 의구심을 남겼다.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야, 관객들은 '하지원의 선택이 옳았다'고 깨닫게 됐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담보'에 출연한 배우 하지원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10.15 jyyang@newspim.com |
◆ '담보'에 담긴 이야기...가족, 그리고 하지원의 진심
영화 '담보'는 지난 10월 초 추석 연휴 내내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80여 만 관객을 끌어모아 초반 흥행몰이를 했다. 코로나19로 극장가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차에 불어온 훈풍 같은 소식이었다. 다 꺼져가는 한국 영화계의 불씨를 다시 붙인 주인공이 바로 하지원, 성동일이다. 두 사람은 '담보'에서 조선족 아이 승이의 어른 역, 돈 대신 데려온 승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두석 역을 맡아 열연했다.
"처음 시나리오 읽었을 때 느낌이 영화에 그대로 나와서 정말 좋았어요. 분량 때문에 제 출연이 의외라고 생각하신 분이 많아요.(웃음) 윤제균 감독님이 주고 싶은 시나리오가 있다고 직접 연락이 오셔서 처음부터 비중이나 분량도 알고 시작했어요. 영화 초반과 끝에 등장하는 승이가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감정이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저한테 부탁하셨죠. 저도 흔쾌히 하겠다고 했고요."
영화 '해운대'에서 함께 호흡했던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JK필름이 제작하고, 전작 '하모니'에서 휴먼 드라마를 제대로 보여준 강대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원이 다양한 작품에서 독보적인 연기로 그만의 캐릭터를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영화의 감정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결국 사랑에 대한 얘기죠. '담보'에서는 정말 특별한 관계의 사람들이 진짜 가족이 되어 가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죠. 요즘에 가족이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관계를 끊고 지내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가족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 소중함이나 가치들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가족은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믿어주는 존재잖아요. 분명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영화에서 잘 보일 수 있어서 가장 좋았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담보'에 출연한 배우 하지원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10.15 jyyang@newspim.com |
초반에 하지원은 어른 승이 역으로 극의 시작을 담당하며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보여줬다. 한중 외교장관급 회의에서 통역을 맡는 등 능숙한 통역가로 등장한다. 과거 중국에서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활약했던 만큼, 그의 중국어 실력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
"전혀 원래 실력은 아니고요.(웃음) 이번에 좀 배웠죠. 극중 승이와 비슷하게, 장관님 통역하셨던 분에게 배울 수 있었어요. 시선 처리나 말의 볼륨이나 톤을 완벽하게 따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아역인 소이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담당해야 했는데, 제가 참 속상할 정도로 어린아이가 겪은 일들과 상황이 가혹하더라고요. 두석 아저씨가 그걸 보고 더 승이를 끔찍이 사랑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성동일 선배와는 너무 한 무대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딸로 만나게 됐네요.(웃음) 실제로 뵈니까 정말 따뜻하고 좋은 분이시고, 또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면이 있으셔서 현장에서도 늘 재밌게 받아주셨어요."
영화 속에서는 어린 승이가 겪는 일들이 참담하기도 하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더한 일들도 일어난다. 하지원은 극중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 승이 세 사람이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지만, 그들을 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음을 털어놨다.
"두석이 어떻게 보면 승이의 진짜 아빠보다 안타까운 승이의 처지를 다 봤기 때문에 더 보호해주고 슈퍼맨처럼 지켜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승이도 안타깝지만 그걸 겪은 게 있어서 더 곧게 자란 것 같고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두석이나 종배 같은 아저씨가 특별한 사랑을 줬기 때문이죠. 나중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두석 아저씨가 승이를 지켜주고 보호해준 것처럼, 승이 역시 두 아저씨를 서로 보호해주고 지켜준 느낌이죠. 마지막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돼버리잖아요. 그게 또 사랑이고요. 내가 살아갈 이유 중에 하나가 될 정도로 서로에게 특별해지잖아요. 나에게 살 힘을 주고 지켜주고 서로가 너무 소중하죠. 그게 뜨겁게 느껴지는 영화예요."
◆ 뭉클했던 '가족'의 의미…24년차 배우가 갈 길은
'담보'에서는 꽤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과도하게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눈물을 흘리는 건 대부분 관객의 몫이다. "일부러 절대 울지 않았다"던 성동일처럼, 하지원 역시 미리 감정을 정해두거나 터뜨리려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했음을 털어놨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담보'에 출연한 배우 하지원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10.15 jyyang@newspim.com |
"마지막에 두석을 찾아서, 결국 만나는 신이 가장 좀 뭉클했던 것 같아요. 어떤 감정이나 연기를 보여줘야겠다 생각하지 않았고, 현장에서 그냥 느끼는 그대로 표현을 했죠. 정형화된 슬픔이나 예상되는 감정들을 다 빼고 백지 상태로 카메라 앞에서 한발 내딛는 것 같았어요. 예측되는 뭔가를 갖고 들어갔을 땐 이미 너무 모든 것이 가짜처럼 되는 순간이 될까 봐 걱정했죠. 모든 걸 내려놓느라 조금 힘든 신이었지만, 그렇게 찍은 기억이 나요. 제가 너무 북받쳐서 슬퍼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았거든요. 너무 예상 가능하거나 뻔할 수 있잖아요."
영화에서는 승이 역의 배우가 하지원까지 총 세 명이 등장한다. 초등학생 시절의 박소이, 고등학생 시절 홍승희, 그리고 대학생부터 성인이 된 승이를 하지원이 연기했다. 하지원은 이 점을 언급하며 어떤 센 상황들보다도 승이의 과거가 한 장면씩 스쳐 지나가는 신이 가장 울컥했다고 꼽기도 했다.
"어린 승이에서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가는 과정이 찡했어요. 몽타주들이 주욱 나오는 부분요. 승이가 아저씨의 속을 이미 다 이해하는 딸이어서 참 눈물이 났어요. 저는 진짜 부모님 말 잘 듣는 딸이었거든요. 저한테 하지 말란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거든요. 그게 우리 부모님 방식이었나 싶은 생각도 해요. 공부하란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다 믿고 맡기셨죠. 딱 한 번 오디션 보러 다닐 때 '너무 힘들면 안 해도 돼'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더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하하. 그 뒤로 더 오디션에 많이 붙고 점점 바쁘게 일을 하게 됐죠."
국내에선 영화 '목숨 건 연애'(2016) 이후 4년 만에 스크린 복귀다. 하지원 역시 관객들의 바람처럼 더 자주 작품으로 인사할 수 있길 바랐다. 무려 24년간 연기하면서 안 해본 연기가 거의 없을 정도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면을 보이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다졌다. 그는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여전한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더 많은 작품에서,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기회가 오길 바라고, 늘 기다리죠. 아직도 도전할 게 남았냐고 하시는데, 더 많은 일을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캐릭터적인 장르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했지만 진짜 사람 얘기도 할 때가 됐죠. 어릴 때 잘할 수 있는 장르와 이야기들이 있다면 지금 나이에 또 할 수 있는 게 있겠죠. 시간이 지나면 늘 봐왔던 것들도 달라지잖아요. 오늘 본 파도와 작년에 본 파도가 다른 것처럼요. 10년 전에 했던 연기여도 분명히 다르게 하겠죠. 똑같이 하면 기계 아닐까요?(웃음) 늘 배우로서 머물러 있기보다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성장하려 해요. 후배들도 좋게 봐주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는데, 그럴 때마다 여기서 주저하지 말고 더 많이 배우고 더 귀감이 됐으면 싶죠. 좋은 선배로서 잘하고 싶고 좋은 길을 가고 싶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