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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상소 하나가 뒤흔든 수도이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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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 천도 꿈꿨던 광해군...극렬 반대에 수도이전 무산
서경 수도이전 놓고 내전까지 벌인 '묘청의 난'
수도이전은 '국민적 합의'...쉽게 말할 사안 아냐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광해군 4년(1612년) 음력 8월6일. '한 장의 상소'가 나라를 뒤흔든다. 상소를 올린 사람은 선왕인 선조 때부터 왕릉을 정하는 등 왕실의 풍수지리를 도맡았던 지관(地官) 이의신(李懿信)이었다.

이의신의 상소로 임진왜란 이후 어수선하던 정국은 격랑에 휩싸인다. 상소 내용은 다름 아닌 '천도(遷道)', 수도이전이다.

◆광해군, 교하천도의 꿈 

이의신의 상소 내용은 '한양의 지세가 다했으니 교하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하는 지금의 파주 일대다. 조선시대에는 현재 파주시내와 운정 신도시(옛 교하읍), 탄현면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임진강과 한강이 맞닿고 서해가 인접한 넓직한 장소로 현재는 북한과 맞닿은 초접경지다.

이의신의 상소는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에 전문이 나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상소 이후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의논해보라"고 내려보낸다. 이후 예조판서 이정귀가 광해군에게 '수도이전 불가'를 강하게 주장하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이의신의 상소내용을 엿볼 수 있다.

술관 이의신이 상소하여, 도성의 왕기(旺氣·왕성하게 될 징조)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도성을 교하현(交河縣)에 세워 순행(巡幸·왕의 이동)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니, 왕이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하였다. 예조 판서 이정귀가 회계하기를 "지금 의신은 임진년의 병란과 역변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과 조정의 관리들이 분당하는 것과 사방의 산들이 벌거벗은 것이 국도의 탓이라고 합니다. 풍수의 설을 받들어 믿을 만하고 가능치도 않은 일들이 낱낱이 맞는다 하더라도 도성을 옮기는 일은 막중 막대한 일이니, 비록 곽박이 건의하고 이순풍이 계책을 세웠다 하더라도 오히려 경솔히 의논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의신의 방술에 대한 수준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1764년 이명유가 소지하던 교하군읍지(交河郡邑誌) <자료=한국학자료포털> 2020.07.30 fair77@newspim.com

이의신은 상소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조정의 대신들이 당파로 나눠 서로 싸우는 등 이유가 한양의 지기(地氣·땅의 기운)가 다해 그런 것이니 풍수지리를 참고하면 수도를 파주 교하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해군은 '교하천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교하천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면 왕기를 흩트리고 백성을 현혹케 한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아 단박에 이의신을 처단했을 것이다.

'이의신의 상소내용을 논의하라'고 내려보낸 자체가 광해군도 수도이전에 대한 의지가 상당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예조판서가 대표로 나섰지만, 신하들의 교하천도에 대한 반감은 상상이상이었다. 이정귀의 답변에는 가시가 돋혔다. 고려시대 수도이전 논란으로 내전으로 발전한 '묘청의 난'을 들먹이며 '자칫하면 반란으로 왕위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한다.

다시 이정귀의 발언이다. "소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서로 뜬소문에 동요되어 더러는 '성상께서 이 말을 믿는다' 하고, 더러는 '새 궁궐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이 말 때문이다' 하여, 원근이 모두 놀래고 현혹되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이단이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예로부터 그러했으니, 고려 말엽에는 요승(妖僧) 묘청(妙淸)이 음양의 설로 임금을 현혹하기를 '송경(松京·개경)은 왕업이 이미 쇠퇴하였고 서경(西京·평양)에 왕기가 있으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드디어 새 궁궐을 서경 임원역에 지었으나 끝내는 유참 등의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고사도 이와 같은데,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해군은 불쾌했다. 그래도 수도이전에 대한 의지는 꺾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광해군이 수도이전지로 삼은 교하지역의 옛지도. 관해군인 임진왜란 이후 수도이전을 통해 조선의 제2건국을 꿈꿨다. 지도는 1872년 만들어진 작자미상의 조선후기 지방지도. <자료=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소>2020.07.30 fair77@newspim.com

왕이 다시 하명한다. "예로부터 새로 도성을 세운 제왕이 많았으니 본디 세웠던 도성을 아주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는 말로서 이 말을 믿는다고 임금을 지척하니 너무 놀랍다. 앞으로는 이러한 말을 경솔하게 내지 말도록 하라. 소장의 끝에 있는 회계의 일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상의하여 의계토록 하라." (광해군일기 정초본 59권, 광해 4년 11월15일 을사 2번째 기사)

한바탕 난리가 난 지 두 달이 지난 광해군 5년(1613년) 음력 1월 3일. 광해군은 수도 이전을 본격 추진한다. 임진왜란 이후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전반을 총괄한 실질적인 최고의 관청인 비변사에 비밀하교를 내린다. 하교는 '수도이전을 할 교하지역 산세를 탐색하고 그려오라'는 것이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62권 신유 3번째 기사다. 왕이 비밀로 비변사에 전교한 내용이다.

"자고로 제왕들은 반드시 성읍을 따로 건설하여 예기치 않은 일을 대비하였으니, 도읍 옮기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교하는 강화를 앞에 마주하고 있고 형세가 심히 기이하다. 독성산성의 예에 따라 성을 쌓고 궁을 짓고는 때때로 순행하고 싶다. 대신과 해조 당상은 헌관·언관·지관과 같이 날을 택해 가서 살피고 형세를 그려 오라."

왕의 비밀지시가 내려오자 조정은 쑥대밭이 된다. 신하들은 당파를 초월해 모처럼 '한마음'으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논쟁은 2년 넘게 이어진다. 광해군은 "주나라는 만세가 우러러 본받는 나라인데 호경과 낙양이 있었고, 지금 명나라에도 남경과 북경이 있다. 의신이 국가를 위하여 큰 계획을 진달한 것은 이궁(離宮)을 창건하자는 데 불과할 따름이다"(광해군일기 정초본 79권, 광해 6년(1614년) 6월 14일)라면서 반발을 일단 피해가려 하지만, 신하들의 끈질긴 반대로 끝내 교하천도는 무산된다.

예조판서 이정귀를 비롯한 신하들의 '왕위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예언으로 돌아온 것일까. 천도론을 꺼낸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왕의 자리에서 쫒겨났다.

◆'동전'으로 점을 쳐 정해진 수도 한양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가 세워진 이후 수도로 낙점된 한양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양과 무악(현재 연세대학교 일대), 충남 계룡산 인근의 3곳을 수도 후보지로 정한 조선왕조는 처음에는 계룡산 일대를 수도로 정하고 궁궐 건설까지 착수한다.

'계룡산에 새 도읍을 정하였는데, 기내(畿內)의 주현(州縣)·부곡(部曲)·향소(鄕所)가 모두 81이었다.(태조실록 3권, 태조 2년(1393년) 3월 24일)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태조와 태종 때 수도이전이 논의될 때마다 거론된 후보지 무악(빨간 표시). 현재 연세대학교 부근이다. <자료=수선전도>2020.07.30 fair77@newspim.com

하지만 신하 하륜이 반대하면서 한양으로 급반전한다. 태조 2년(1393년) 12월 11일 기사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이온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서 동면·서면·북면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신이 일찍이 신의 아버지를 장사하면서 풍수 관계의 여러 서적을 대강 열람했사온데, 지금 듣건대 계룡산의 땅은, 산은 건방(乾方·서북방향)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남동쪽)에서 흘러간다 하오니,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이 이른 바, '물이 장생을 파하여 쇠패가 곧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을 건설하는 데는 적당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도읍을 정한 계룡산 땅이 크게 보면 한반도 중심부가 아니라 남쪽에 치우쳐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길이 좋지 않아 도읍지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이다.

태조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도읍지를 물색해 조정 대신들의 갑론을박 끝에 현재 한양도성으로 정하고 수도를 정하게 된다.

그런데 한양은 천도(1394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수도의 지위를 내주게 된다. 2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 이후 명분과 눈치상 곧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태종 대신 잠시 왕위에 오른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해 버린다.

임금이 종친과 좌정승 조준 등 여러 재상들을 모두 불러 서운관에서 올린 글을 보이고, 또 피방해야 될지의 가부를 물으니, 모두 피방하여야 된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어느 방위로 피방하여야 할지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경기 안의 주현에는 대소신료와 숙위하는 군사가 의탁할 곳이 없고, 송도는 궁궐과 여러 신하의 제택이 모두 완전합니다."(정종실록 1권, 정종 1년(1399년) 2월 26일)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다시 한양천도가 추진된다. 피바람 끝에 왕위에 앉은 태종으로서는 정몽주를 죽였던 일 등을 기억하는 개경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터에다, 고려왕조의 향수가 남아 있는 개경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태종으로서는 아버지 태조의 신뢰를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태조가 공들여 세운 새왕조의 수도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도 있고, 개경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길을 피할 기회로 삼는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인천=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너머로 개성 송악산이 보이고 있다. 2020.06.19 mironj19@newspim.com

개경으로 환도한 지 2년만인 태종 1년(1401년) 음력 7월23일. 태종이 말한다. "내가 한양으로 돌아가겠으니, 서운관으로 하여금 떠날 날을 점치어 알리라."

새 왕조가 열렸다 해도 대소신료들의 주무대는 개경이었다. 어렵사리 집과 재산이 있는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2년만에 당시로서는 신도시인 한양으로 왕이 돌아가겠다고 하니 속된 표현으로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만만찮은 반발이 이어졌다. 좌사간 윤사수 등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용서했다. 4년이 흐른 태종 5년(1405년)에는 의정부에서 '흉년'을 이유로 한양 환도를 반대한다. 태종은 10월에는 반드시 한양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양은 조선의 수도가 된다.

당시 신하들의 반발이 극심하자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전점'까지 동원한다. 왕들의 조상 신주를 모신 종묘에 가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한양에 다시 갈지 말지'를 결정한 것이다. 동전으로 점을 쳐서 조상들에게 물어보니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뜻이 나왔기 때문에 재천도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태종이 한양으로 재천도하기 1년전인 태종 4년(1404년) 음력 10월 6일. 임금이 종묘 문밖에 나가 여러 사람에게 포고했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와 신도(한양), 무악(현재 연세대 부근) 고(告)하고, 그 길흉을 점쳐 길한 데 따라 도읍을 정하겠다. 도읍을 정한 뒤에는 비록 재변이 있더라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태종은 한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길 때 동전으로 점을 쳐 수도이전의 명분을 만들었다. 사진은 고려 성종 때 주조된 한국 최초의 동전화폐 건원중보(乾元重寶) <자료=한국은행 화폐박물관> 2020.07.30 fair77@newspim.com

점치는 물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척전(擲錢)으로 하기로 한다. 척전은 한꺼번에 동전 셋을 던져 1개가 뒷면이 나오고 2개가 앞면이 나오면 단(單)이라 해 작대기 하나 모양으로 표시한다. 2개가 뒷면이 나오고 1개가 앞면이 나오면 탁(拆)이라고 작대기 두개를 나란히 놓은 모양으로 놓는다. 3개가 모두 뒷면이 나오면 중(重)이라 하여 O로 나타낸다.

3개가 모두 앞면이 나오면 순(純)으로 X로 표시한다. 세번 던져 하나의 괘(卦)를 만들어 길흉을 판단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개경을 도읍으로 정할 때도 사용했다는 이유 등도 고려됐다.

태종은 신하를 거느리고 종묘에 예배한 뒤 완산군 이천우·좌정승 조준·대사헌 김희선·지신사 박석명·사간 조휴를 거느리고 묘당에 들어가 꿇어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척전을 던지게 했다. 한양은 2길 1흉이 나왔다. 개경과 무악은 모두 2흉 1길이었다.

동전점을 친 결과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조상의 뜻이 나온 셈이다. 드디어 태종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다만 정도전이 설계한 경복궁을 꺼려 창덕궁을 지어 이궁으로 삼았다.

◆수도이전 놓고 내전(內戰)까지

한국사에서는 수도이전을 놓고 내전(內戰)까지 벌어진 경우도 있다. 고려 인종 시대 '묘청의 난'은 서경(평양) 천도를 둘러싸고 국론이 둘로 갈라져 전쟁까지 불사한 사건이다.

고려사 열전 권제40 반역(叛逆) 부분에는 묘청에 대한 인물평이 서술돼 있다. 묘청은 서경의 승려로 정지상 등과 풍수지리설을 기반으로 서경천도운동을 벌였다. 당시 임금인 고려 인종이 묘청의 말을 듣고 서경에 궁궐까지 짓고 실제로 이동까지 한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각종 이변과 재해'가 잇따르자 불안감을 느낀 왕이 수도이전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자 인종 13년(1135년)에 묘청이 분사시랑 조광·병부상서 유참, 사재소경 조창언·안중영 등과 함께 서경을 근거지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돼 있다.

반란은 1년간 이어졌지만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 등에게 진압된다. 고려사에는 김부식 군대가 진격하자 서경 사람들이 묘청의 머리를 베어 바쳤다고 저술돼 있다.

일제강점기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처에서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 일천년래 일대사건'으로 명명했다. 신채호는 묘청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묘청의 난'에 대해서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의 낭가사상과 신흥 이데올로기로 떠오른 당시 유교사상이 맞붙은 사건으로 정의했다.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어 잠시 접어두더라도, '묘청의 난' 자체를 놓고 본다면 수도이전은 단순히 지도상 위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전까지 불사할 정도의 복잡다단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김학선 기자 yooksa@

◆헌재 행정수도 위헌판결 핵심은 '국민적 합의'

최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판결(2004헌마554)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읽어봤다. 세간에서는 '관습헌법'이라는 단어만 뇌리에 남았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본 판결문의 포인트는 '국민적 합의'다.

문자로 형식화한 헌법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수도=서울'이라는 관습적 명제를 인용해 서울은 관습헌법적으로 수도이며, 관습헌법도 성문헌법처럼 헌법과 다름없으니 수도를 이전하려면 헌법적 절차를 거치는 게 핵심이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합의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의견을 물어야 한다. 즉, 일부 정당과 집권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도이전을 논의하지 말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헌법에 명시하라는 이야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헌법개정에 필요한 전체의석(300석)의 3분의2(200석)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수도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사람들도 곤욕을 치렀다. 한국사에서는 수도이전 이슈로 내전까지 발발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재산권 등이 걸려 있어 첨예하고 극단적인 논란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최선은 아니지만 16년전 판결문에 드러난 '국민적 합의'라는 문구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 시점이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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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지분 9440억 매각…"개인자금 조달"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재산분할 소송에 필요한 개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약 9440억원 규모의 SK㈜ 지분을 매각한다. 매각 금액은 지난 7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재산분할금 9440억원과 같은 규모다. 다만 최 회장은 해당 판결에 재상고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 회장은 보유 중인 SK㈜ 보통주 165만3924주를 총 9439억9994만원에 처분하는 거래계획을 공시했다. 거래가 완료되면 최 회장의 보유 주식은 1297만5472주에서 1132만1548주로 줄고 지분율은 17.76%에서 15.49%로 낮아진다. SK㈜는 이번 지분 변동에 대해 "최대주주가 재산분할 소송 관련 개인 자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뉴스핌DB] 최 회장의 매각 규모인 9440억원은 서울고법이 지난 7월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금액과 일치한다. 최 회장은 이후 재상고하면서 9440억원 가운데 7000억원은 다투지 않고 나머지 2440억원에 대해서만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한 상태다. 지분 매각은 두 갈래로 진행된다. 97만2493주는 주당 55만9387원, 총 5440억원에 전략적 투자자에게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다. 나머지 68만1431주는 주당 58만7000원, 총 4000억원 규모로 증권사 대상 주가수익스왑(PRS) 거래를 병행한다. 실제 거래는 오는 11월 2일 이뤄질 예정이다. PRS 계약 기간은 3년이다. 기준가격은 주당 58만7000원으로, 향후 거래 상대방이 해당 주식을 처분했을 때 실제 매각 금액과 기준가격의 차이를 서로 정산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주식을 처분한 이후에도 일정 기간 SK㈜ 주가 변동에 따른 손익을 공유하게 된다. SK는 대규모 주식을 정규장에서 일시에 처분하지 않고 전략적 투자자와 증권사를 대상으로 거래해 시장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거래 후에도 최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거래 전 25.2%에서 22.9%로 낮아진다.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는 최 회장 지분율이 23.9%에서 20.8%, 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은 33.5%에서 30.5%로 줄어든다. syu@newspim.com 2026-10-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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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양궁, 인도 꺾고 리커브 단체전 金과녁 명중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세계 최강 한국 남자 양궁이 여자 단체전의 아쉬움을 씻어내며 한국 양궁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켰다. 김우진(청주시청), 이우석(코오롱), 김제덕(예천군청)이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정상에 함께 섰던 세 선수는 다시 한번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금빛 과녁을 명중시키며 세계 최강의 저력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제덕(왼쪽부터), 김우진, 이우석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전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으로 이뤄진 한국 남자 리커브 대표팀은 2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다목적광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인도를 세트 스코어 5-1(56-56 57-50 56-54)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이번 금메달은 앞서 펼쳐졌던 여자 단체전의 충격을 딛고 일어선 결과라 더욱 값졌다. 한국 여자 양궁은 이번 대회 결승에서 인도에 발목을 잡히며 무려 28년 동안 이어져 온 8연패 행진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김제덕 역시 앞서 강채영과 나선 혼성 단체전 준결승에서 중국에 패한 뒤 동메달에 머물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남자 대표팀이 든든하게 중심을 잡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제덕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우진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이우석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토너먼트 과정은 완벽했다. 16강에서 타지키스탄을 6-0으로 완파한 한국은 8강에서 몽골을 5-3으로 꺾었다. 준결승에서는 대만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6-0 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이날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을 꺾었던 인도였다. 1세트에서 한국은 27대 29로 리드를 내줬으나 뒷심을 발휘해 56-56 동점을 만들며 세트 포인트 1점씩을 나눠 가졌다. [오카자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2일(한국시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리커브 남자 단체 결승전을 마치고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6.10.2 psoq1337@newspim.com 균형은 2세트에서 곧바로 무너졌다. 한국은 첫 세 발을 모두 10점에 꽂아 넣으며 30점 만점을 기록했다. 인도가 흔들리는 사이 한국은 57점을 기록해 세트 스코어 3-1로 앞서갔다. 3세트에서도 빈틈은 없었다. 한국은 인도가 54점에 그친 사이 56점을 합작하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우승으로 김우진은 통산 네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수확했고 이우석은 통산 세 번째, 김제덕은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단체전 정상 탈환에 성공한 한국 양궁 대표팀은 3일 열리는 개인전에서 추가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psoq1337@newspim.com 2026-10-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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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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