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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정릉의 눈물' 담긴 정릉 없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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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조성하고 아들 태종이 해체한 신덕왕후 정릉 이름 딴 정동
태종과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돌아선 신덕왕후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 동편에 자리잡은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두번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안식처다. 동네 이름도 정릉동인 만큼 일대에서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정릉의 원래 위치는 여기가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貞洞)이었다.

도성 안에 능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깨고 서울 정동에 만들어졌던 정릉이 북한산 중턱 산골짜기로 파묘천장(묘를 파서 다른 장소로 이전)한 이유에는 조선 건국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두 혁명 동지가 철천지 원수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동네 전체가 도심속 공원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정동. 그러나 서울 정동에는 620여년전 '조선의 국모' 신덕왕후의 눈물과 '피의 군주' 태종의 한맺힌 노여움이 세월을 넘어 엮여 있다.

◆'조선의 국모' 눈물 스민 정동

태종 16년(1416년) 음력 8월21일. 임금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다 좌우에 이른다. "계모(繼母)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유정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이를 계승하는 자를 계모라고 합니다."

임금이 "그렇다면 정릉(貞陵)이 내게 계모가 되는가" 하니 (유정현이) 대답했다. "그때에 신의왕후(神懿王后·태종의 생모)가 승하하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임금은 "정릉이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서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다만 부왕이 애중하시던 의리를 생각해 기신의 재제(제사)를 어머니와 다름없이 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임금의 말에는 독(毒)이 들어 있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어머니로 대접해 정성껏 제사로 드리고 하지만 '내 어머니도 아닌데 내가 제사를 지내고 보살필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뼈가 섞인 말이다.

유교를 다스림의 최고 덕목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유교의 수호신'인 왕이 비록 계모지만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앞으로 신덕왕후에 대한 제사 등 보살핌을 끊고 방치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의 모습. 태조가 조성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의 당초 위치로 추정되는 영국대사관(성당 뒤 회색건물)이 보인다. <자료=서울연구원> 2020.07.09 fair77@newspim.com

이 일에 앞서 7년전 태종은 '어머니의 묘'를 도성 밖으로 내치는 결정을 내린다. 태종(1409년) 9년 2월23일의 일이다. 이날 태종은 정동에 있던 정릉을 옮기는데 동의한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기사다.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천장하였다. 처음에 의정부에 명하여 정릉(貞陵)을 도성 밖으로 옮기는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의정부에서 상언하기를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지금 정릉이 성안에 있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고, 또 사신이 묵는 관사에 가까우니 밖으로 옮기도록 하소서." 하였으므로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태조 승하(1408년 음력 5월24일) 9개월만이다. 신덕왕후가 묻힌 정동의 정릉을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왕릉을 옮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흐르거나 터가 좋지 않다는 등 이유로 천장할 수 있다. 세종대왕 영릉의 경우도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지만 1469년(예종 원년) 풍수지리상 길지를 찾아 옮겼다. 세종 이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등 19년간 왕이 4번이나 바뀌고, 세조와 예종의 장남이 잇따라 요절하자 천장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릉은 도성 안에 있어 불편하다는 탐탁지 않은 명분을 들어 북한산 중턱으로 옮겼다. 이후 200년 이상 정릉은 산골짜기에 방치된다.

태종에 비해 아버지 태조는 정릉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 건국의 정치적 동지이자 공신이나 다름없던 신덕왕후의 위상을 높이 샀던 만큼 정릉 건설공사를 직접 챙겼다.

태조와 신덕왕후는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이자 조선건국 과정의 건국공신이었다. 만남도 심상치 않았다. 먼 길 달려온 장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자 우물가 처녀가 버들잎을 띄워 급체를 막는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뻗은 서울 정동의 모습. 2020.07.09 fair77@newspim.com

한국고전종합DB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 제14권 신덕기적비첩에는 태조와 신덕왕후의 만남을 묘사한 설화가 있다.

"옛날 우리 태조께서 여름철에 말을 달려 계곡을 지나다가 매우 갈증이 나므로 개울에서 빨래하는 한 여자를 보고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즉시 물을 떠오는 데 버들잎 한 움큼을 물에 띄워가지고 바쳤다. 태조가 노하여 '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하니, 그 여자가 '더울 적에 물을 급하게 마시면 몸에 해로우므로, 그것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말에 태워가지고 함께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신덕왕후였다."

이 버들잎 설화는 고려왕조 건국에도 인용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 지방을 지날 때 그 지역의 오씨 성을 가진 여성이 물을 찾는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바쳐 혼인에 이른다. 훗날 고려 2대왕 혜종의 어머니가 되는 장화왕후다.

1396년 음력 8월13일 신덕왕후가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승하하자 태조는 열흘 뒤인 8월 23일 직접 자리를 살펴 취현방 북쪽에 능지를 정했다. 현재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릉은 도성 안에 있을 수 없고, 도성 밖에 조성한다는 원칙도 무시한 채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정릉을 세웠다.(조선 태조비 신덕왕후 정릉의 조성과 봉릉 고찰, 황정연, 서강인문논총 46, 2016년 8월)

그러나 태조가 이처럼 공들인 정릉은 철저히 해체된다. 조선왕조 태종실록 9년(1409년) 음력 4월13일 기사에는 정릉이 파괴되는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봉분은 자취를 없애고 석인(왕릉 좌우에 세우는 문인·무인상)을 땅에 묻었으며 정자각은 헐어 그 자리에 터를 높게 쌓아 태평관을 짓는 데 사용했다.

이듬해인 1410년 8월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돌다리를 복구하는데 사용했다. 원형을 황폐화시킨 것은 물론 제례의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계천 광통교 아래 받침돌로 사용된 정릉의 병풍석. 능침을 둘러싼 병풍석에는 불교와 도교 등을 표현한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서울 청계천 SK그룹 사옥 옆으로 흐르는 청계천에 광통교가 있다. 다리 아래 석축벽에는 일반 돌과는 다른 다양한 무늬와 그림이 새겨진 조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릉을 둘러싼 병풍석이다. 부처를 정교하게 새긴 조각과 도교의 영향을 받은 구름무늬 등은 600년 세월이 흘렀어도 당당한 위품을 자랑한다. 거꾸로 뒤집힌 부처상도 있다.

뭇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수모를 겪으라는 의미로 해체돼 옮겨진 정릉 병풍석은 역설적으로 수백년이 지나도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태종이 정릉을 '철천지 원수'처럼 파괴했지만, 처음 이들은 '혁명동지'였다. 태조가 '왕씨의 고려'를 지우고, '이씨의 조선'을 건국하는데 태종과 신덕왕후는 힘을 합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태조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선 군사를 이끌로 개경으로 돌아온 위화도회군 당시 남아 있던 태조의 가족들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신덕왕후와 훗날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당시 죽음을 피할수 없었던 방번·방석 등 왕후 소생의 배다른 두 동생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이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다. '처음에 신의왕후(태종의 생모)는 포천 재벽동에 있고, 강비(신덕왕후)는 포천 철현에 있었는데, 전하(태종)가 서울에 있으면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말을 달려 포천에 이르렀다. 전하가 왕후와 강비를 모시고 동북면을 향하여 가면서 말을 탈 때든지 말에서 내릴 때든지 모두 친히 부축해 주고, 스스로 허리춤에 불에 익힌 음식을 싸 가지고 봉양하였다. 경신공주·경선공주·무안군·소도군이 모두 나이 어렸으나 또한 따라왔으므로 전하께서 자기가 안아서 말에 태우고 길이 험하고 물이 깊은 곳에는 전하가 또한 말을 이끌기도 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태종이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까지 직접 말에 태워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다. 태종은 목숨을 건 도주에서 태조의 계비와 그 자식들까지 챙긴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표기된 정동. 소정동과 대정동으로 나눠져 있을만큼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수 있다. <자료=수선전도>2020.07.09 fair77@newspim.com

조선 창건의 걸림돌로 지목된 정몽주를 태종이 개성 선죽교에서 죽인 이후 태조 이성계가 크게 화가 났을 때 신덕왕후가 태종을 옹호하는 장면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전하(태종)가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고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신덕왕후)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전하(태종)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공(태조)은 항상 대장군으로서 자처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라고 하였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조 앞에 불려가 뭔가 사달이 벌어지려 할 때였다. 태종이 신덕왕후를 보면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하니, 신덕왕후가 태조에게 '태종이 결단력있게 일을 잘 처리했는데, 왜 몰아 세우느냐'면서 옹호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태종이 신덕왕후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앞선 태조의 위화도회군 당시 목숨이 벼랑 끝에 달린 시점에서 태종이 신덕왕후의 자식들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킨 점도 '어머니'로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동지'는 조선건국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선다. 아버지와 남편을 새 왕조의 임금으로 세우는 과정에서는 '혁명'을 위해 뜻이 맞았지만, 태조가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태종은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대를 끊어 버린다.

◆정릉의 부활

200년 이상 방치된 정릉은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의 상소 등으로 촉발된 서인들에 의해 복구된다.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진다.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된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이다.

태종과 악연이 맺힌 정릉의 복원은 서인의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남인과 대립하던 서인은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릉과 신덕왕후 복귀를 이슈로 삼았다.

당시 서인과 대립하던 남인도 마땅히 반대할 명분이 없던 터라, 정릉 복위를 수차례 반대 끝에 결국 현종이 받아 들였고, 정국은 서인이 좌우하게 됐다.

200여년간 버려졌던 정릉이 제대로 왕릉의 격식을 갖추고 종묘에 배향되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능침을 봉하고 제를 올리던 날 소나기가 정릉(貞陵) 일대에 갑자기 쏟아져 백성들은 그 비를 일러 세원우(洗冤雨)라고 하였다.'(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대왕 행장)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 태종이 내친 정릉은 현종 때 송시열 등 서인에 의해 복원된다. <자료=문화재청> 2020.07.09 fair77@newspim.com

정동은 '신덕왕후의 눈물'뿐 아니라 조선시대 당파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릉을 복위시킨 서인의 발원지다.

조선후기 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인 연려실기술 선조조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에 따르면 선조 5년(1572) 이조 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당시 과거 장원 급제자 김효원이 이조 정랑에 추천되자 그가 어릴 적에 권신 윤원형의 식객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늦게야 이조 정랑이 된 김효원은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 좌랑의 추천에 오르자 외척(명종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 저지시켰다. 이후 심의겸과 김효원은 반목이 생기고, 조신들은 심의겸을 옳다고 하는 파와 김효원을 옳다고 하는 파로 나눠졌다. 심의겸의 집이 서울의 서쪽인 정동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이 동쪽인 건천동에 있어 동인과 서인의 이름이 생기게 됐다.

태종의 악연과 당쟁의 발원지에 이어 정동은 조선의 험난한 역사가 묻어 있다. 조선말 문호 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이 들어선 땅이다. 고종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대사관에 몸을 피한 아관파천을 비롯해 구한말 열강의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 장소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현재 서울 정동의 모습. 동네 전체가 공원이라고 할만큼 역사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하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현대 서울의 정동은 동네 전체가 공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길은 고즈넉히 뻗어 있다.

정동 남쪽 초입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니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다.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있지만, 동네 전체가 공원인 듯한 넉넉한 모습 속에 조선의 아픔도 함께 서려 있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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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태릉·과천 등 6만호 조성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와 태릉CC(골프장), 경기 과천 경마장(렛츠런파크서울)을 비롯한 서울 도심부와 경기 서울 근교지역에 총 6만가구가 공급된다. 이를 위해 11개 도심 내 공공부지에 4만3500가구가 공급되며 신규 공공주택지구를 새로 지정해 6300가구를 짓는다. 또 도심 내 노후청사를 활용해 모두 9900가구가 지어질 예정이다. 오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착공한다. ◆ '9·7 주택공급 확대방안' 후속초지...도심 6만 가구 조성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후속조치인 이번 1·29 대책에서는 도심권에서 6만가구가 공급된다. 지역별로 서울은 3만2000가구(53.3%), 경기 2만8000가구(46.5%), 인천 100가구(0.2%)가 각각 배정됐다.  공급 계획 [자료=국토부] 먼저 도심내 공공부지에는 4만3500가구를 짓는다. 이 가운데 서울시와 정부가 마련한 기존 공급물량 7400가구를 제외하면 3만6100가구가 새로 지정된 물량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캠프킴에서 기존계획 물량 7400가구를 포함한 총 1만2600가구가 공급된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는 6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정부 방침에 따라 주택공급수가 1만가구로 4000가구 늘어나게 됐다. 서울시가 주택공급 확대에 대한 문제로 지적했던 학교 신설은 중단한다. 착공은 2028년으로 예정됐다. 수도권전철 남영역 인근 캠프킴 부지의 주택규모는 2500가구로 기존 1400가구에서 1100가구 더 확대됐다. 2029년 착공을 추진한다. 아울러 인기 주거지역인 서빙고동 '501 정보대'부지에도 신혼부부 등을 위한 소형주택 150가구를 짓는다. 2029년 착공 예정이다.  경기 과천시 일원 과천경마장과 방첩사 부지에서 9800가구를 건립한다. 정부는 과천 경마장(115만㎡)과 국군방첩사령부(28만㎡) 이전 후 해당 부지 총 143만㎡를 통합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경마장과 방첩사 이전계획을 국방부와 농식품부와 협의해 올 상반기내 완료하고 오는 2030년 착공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시절 주택공급 후보지로 떠올랐던 서울 노원구 태릉CC 총 87만5000㎡에는 6800가구가 공급된다. 정부는 장기간 진척되지 못하던 태릉CC 개발사업을 국가유산청과의 협의를 거쳐 본격 추진하고 주민을 위한 교통대책과 충분한 녹지공간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친 후 공공주택 지구지정과 지구계획 수립 등을 병행해 2030년 착공을 추진한다.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및 성남시청과 인접한 곳에 신규 공공주택지구 성남금토2지구와 성남여수2지구 약 67.4만㎡(20만평)를 지정한다. 이들 신규 택지에는 63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두 공공택지는 인허가 및 보상을 완료한 후 착공은 2030년 목표다.  서울 동대문구 일원에서는 국방연구원과 인접한 한국경제발전전시관을 함께 이전하고 이전 부지 총 5만5000㎡ 규모에 주택 1500가구를 짓는다. 국토부는 국조실·기후부·성평등부와 협의해 해당 기관을 2027년 상반기까지 이전하고 이전 시점에 맞춰 사업 승인, 토지 매입 등을 추진해 2029년 착공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인접 역세권 부지와 그간 장기 지연된 사업의 계획을 변경해 총 1만1500여가구를 신규 공급한다. 정부는 이들 지구에 대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함으로써 사업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먼저 경기 광명시 광명경찰서 부지 약 9000㎡에 550가구를 짓는다. 2027년까지 경찰서 이전을 완료하고 이전 일정에 맞춰 2029년 착공한다. 경기 하남시 신장 테니스장 부지 약 5000㎡에는 300가구가 공급된다. 2029년 착공을 목표로 한다.  서울 강서구 강서 군부지 약 7만㎡에는 918가구가 건립된다. 당초 부지 매각 방식으로 추진됐던 이 사업은 위탁개발 방식으로 변경해 재개된다. 2027년 착공될 예정이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공군부대 13만㎡부지는 군부대 압축·고밀개발 방식으로 2900가구를 공급한다. 착공은 2030년이다.  경기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 군부대 부지 35만㎡에 4180가구를 짓는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2029년 착공을 추진한다. 또 경기 고양시 구국방대학교 부지 33만㎡에는 2570가구를 공급한다. 2029년 착공을 목표로 서울 상암DMC와 잇는 직주근접 미디어밸리를 조성할 방침이다. ◆ 공급확대에 범부처 역량 결집...투기 방지도 병행 정부는 이번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주택공급촉진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한다. 회의에서는 발표 부지에 대한 이행 일정 점검 및 조기화를 추진하고 신규 물량 발굴에도 지속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존 시설 이전이 필요한 부지는 2027년까지 이전을 결정하고 택지 조성에 착수할 수 있도록 범부처가 역량을 결집해 추진상황을 집중 관리할 예정이다.  사업 속도 제고를 위해 2026년 중 국방연구원과 서울의료원, 강남구청 등 13곳에 대한 공기업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하고 국유재산심의위·세계유산영향평가 등 사전절차도 신속 이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국가가 서민주택 공급 등을 위해 추진하는 공공주택지구조성 사업은 국무회의 등을 거쳐 그린벨트(GB) 해제 총량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5년 한시로 추진한다.  이와 함께 투기 방지를 위해  해당 지구 및 주변지역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즉시 지정한다. 이를 토대로 투기성 토지 거래 등을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구·주변지역에 대한 조사 결과 미성년·외지인·법인 매수, 잦은 손바뀜과 같은 이상거래 280건을 선별했으며 이에 대한 분석 및 수사의뢰 조치에 나섰다.   향후 정부는 올 2월 도심 공급 확대를 위한 신규 부지와 제도개선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올 상반기 중 '주거복지 추진방안'을 발표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donglee@newspim.com 2026-0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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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최고위, 한동훈 '제명' 의결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이 29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제명' 징계안을 의결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당원 징계안이 윤리위 의결대로 최고위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표결에는 최고위원 6명과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총 9명이 참여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표결 내용이나 찬반 부분은 비공개"라며 구체적인 표결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징계 의결의 취지에 대해 최 수석대변인은 "의결 취지는 이미 윤리위 내용이 공개돼 있어 그 부분을 참고하면 된다"며 "기존 말씀드렸듯이 윤리위 의결대로 최고위에서 의결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의결 과정에서 징계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최고위원들 사이 사전회의는 배석하지 않아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한 "의결 때 비공개였고 저도 배석하지 않은 관계로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좌)와 한동훈 전 대표 [사진=뉴스핌 DB] 최 수석대변인은 "절차적으로 의결에 대한 통보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의결이 된 부분으로서 결정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징계는 의결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한편 한 전 대표가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 입장은 따로 없다"며 "신청되면 신청 절차에 임해서 필요한 부분 소명이나 그런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명 확정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allpass@newspim.com 2026-01-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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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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