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신흥국을 중심으로 지구촌에 또 한 차례 신용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연초 이후 지속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경제적 후폭풍이 유동성 경색을 일으킨 데 이어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얘기다.
통화 가치와 상품 가격이 동반 급락한 가운데 이미 상당수의 신흥국이 부채 상환에 난항을 겪고 있고, 유럽의 은행권도 부실 여신 급증에 초긴장 상태다. 경제 셧다운에 따른 매출 붕괴는 회사채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2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프리카 최대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가 유로본드와 중국 여신을 상환하기 어렵다며 투자자들에게 만기 연장 및 채무 탕감을 요청했다.
경기 한파에 구리값을 포함한 상품 가격이 급락한 데다 통화 가치 역시 브레이크 없는 하락을 연출한 데 따른 결과다.
앞서 에콰도르도 채권자들에게 채무 재조정을 요청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 전쟁에 국제 유가가 폭락,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는 입장이다.
남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극심한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는 830억달러 규모의 채무재조정 협상마저 연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된 탓이다.
투자자들은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 채권펀드에서 31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이탈했다. 이는 2008년 10월 이후 최대 규모다.
신흥국 채권시장은 연초 이후 15% 이상 급락했다. 미국 금융위기가 고조됐던 2008년 당시보다 두 배 가량 큰 폭의 하락이다.
이른바 프론티어 마켓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조20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인 동시에 GDP의 114%에 해당하는 수치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침체가 확실시되는 한편 회복 역시 느릴 것이라는 데 경제 석학들이 입을 모으고 있어 신용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거대한 규모의 경기 부양책과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충격에 신흥국을 중심으로 국가 부도 사태가 속출할 전망"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최소 20개 신흥국의 국채가 미 국채 수익률 대비 10%포인트를 웃도는 프리미엄에 거래, 부실 채권으로 취급받고 있다.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 이미 은행권은 부실 여신 상승에 초긴장 상태다. 유럽은행감독기구(EBA)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 부실 여신이 3%로 안정적이었지만 산업 전반에 걸친 비즈니스 마비로 인해 수치가 급상승할 전망이다.
TS롬바드의 데이비드 오네글리아 이코노미스트는 CNBC와 인터뷰에서 "유로존에 신용위기가 닥칠 여지가 매우 높다"며 "유럽 상당 지역이 봉쇄됐고, 이로 인한 비즈니스와 수요 붕괴가 과거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을 일으킬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7500억유로(8020억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에 나섰지만 연쇄 디폴트 사태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회사채 시장도 위기 상황이다. 바이러스 확산이 진화되지 않으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업들이 줄도산 할 것이라는 경고다.
전날 미국 셰일 업체 화이팅 정유가 파산보호 신청을 냈고, 월가의 시장 전문가들은 이를 기업 연쇄 파산의 신호탄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형 사모펀드 업체 TPG의 신용 사업 부문인 식스 스트리트 파트너스의 앨런 왁스맨 헤드는 투자 보고서에서 "공중 보건 위기가 전방위적인 신용 및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며 "전례 없는 매출 파괴가 일어나고 있지만 시장은 이에 따른 충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의 제이미슨 쿠트 본즈의 앵거스 쿠트 대표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장기 저금리에 외형을 확대한 부채 버블이 무너질 것"이라며 "채권 거래가 마비된 상황이고, 매출이 급감한 기업들의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차환 발행이 막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이 2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