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외화 중 예수금 50% 넘고, 차입보다 많아
시장 불확실성 커져 조달방안 다양화 강구
"코로나19 장기화로 유동성 부족 배제 못해"
[서울=뉴스핌] 김진호 기자 = 국내 은행권이 '외화 유동성' 점검과 관리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며 '달러 부족'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탓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학습효과'로 은행들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세를 이루지만 실물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뉴스핌] 김진호 기자 =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딜링룸의 풍경. 2020.03.18 rplkim@newspim.com |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외환시장이 연일 불안한 상황을 보임에 따라 '외화 자금조달 방안'을 재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은 우선 외화자금 중 외화예수금 비중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차입금이나 외화채보다 안정적인 이유에서다. 외화예수금 비중이 높으면 은행 입장에서는 외화 건전성 관리가 수월하다.
4대 시중은행의 외화예수금 잔액은 지난 2월 기준 439억7000만달러 규모다. 하나은행이 173억달러로 가장 많았다. 우리은행(101억달러), 국민은행(89억8700만달러), 신한은행(76만8000만달러)이 뒤를 이었다.
전체적 규모를 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기업·개인이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인출한 탓에 전년(460억달러)에 비해 20억달러 소폭 감소했다.
다만 비중이 예년에 크게 증가한 점이 긍정적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외화예수금 비중은 전체의 52.9%로 통계가 집계된 지난 2011년(35.2%)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주목할 만 점은 외화차입금 비중이 같은 기간 45.4%에서 29.1%로 줄어든 것이다. 외화차입금 비중이 높을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발생했을 때 은행에 큰 부담을 준다. 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에 상륙할 때 '기폭제' 역할을 했던 바 있다.
은행들은 또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로 조달시장이 경색될 경우를 가정해 ▲외화 자금시장 동향 및 모니터링 강화 ▲외화 조달방안 다양화 등도 강구 중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현재 관리목표를 상회하는 적정 외화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입외환과 예수금 등 대고객 자산·부채를 일별 모니터링 중이다. 거액 변동이 예상될 경우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국외영업점 유동성 관리를 시작했고 농협은행의 경우 금리우대 확대와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강화를 통해 차입선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외화를 가장 안정적으로 조달 받을 수 있는 '커미티드라인'도 구축해 안전핀을 강화했다. 커미티드라인은 비상시 외국 금융사로부터 외화를 우선 공급받는 '마이너스통장' 개념이다.
은행별 규모로 살펴보면 신한은행이 12억달러로 가장 많다. 이어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8억달러, 6억달러 규모의 커미티드라인을 구축해놓은 상태다. 외화예수금 잔액이 가장 많은 하나은행은 별도의 커미티드라인을 개설하지 않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당행의 경우 많은 외화예수금 잔액을 보유한 만큼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시장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외화유동성비율(LCR) 관리 및 외화가용성 자금 유지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이날 환율 방어와 외화자금 이탈 방지를 위해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확대하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다. 이번 조치로 국내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는 40%에서 50%로, 외은지점은 200%에서 250%로 각각 올라간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외화유동성 문제가 생길 단계는 아니다"며 "이번 정부의 조치는 국내 은행보다는 외은지점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외화 투자금의 유출을 막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외은지점을 통해 들어온 투자금이 달러로 환전돼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란 설명이다. 국내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선물 포지션 한도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외은 지점들이 이번 조치로 채권 등 국내 투자 규모를 유지할 여력이 늘어났을 것이란 평가다.
다만 은행권이 안전핀을 대폭 강화하고 있지만, 실물경제에서의 직접적인 타격이 심각하고 현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다양한 대책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시장 변동성이 급격하게 커질 경우 유동성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소비가 위축돼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며 글로벌 경제가 패닉 상황이 될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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