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인 선처 vs 일반인도 동일…평가 엇갈려
"마약 심각성 인식 낮아…양형기준 강화해야"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2019년은 재벌 3세의 마약 사건이 유독 불거진 한 해 였다. SK부터 현대, CJ에 이르기까지 재벌그룹 3세들은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들이 잇따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솜방망이 처벌, 예외적인 선처 아니냐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SK·현대에 CJ까지...잇따른 재벌그룹 3세 마약 사건
재벌 3세 마약 사건은 지난 4월 대마 공급책 이모(27) 씨가 검거되고 총 4명이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불거졌다.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인 최모(31) 씨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주 정모(28) 씨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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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핌] 윤창빈 기자 = '변종 마약 투여' 혐의를 받는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 모 씨가 지난 4월 9일 오전 인천 남동구 남동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19.04.09 pangbin@newspim.com |
최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정 씨와 공모해 대마를 매수하고 흡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씨도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변종 대마를 수수해 총 26차례에 걸쳐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 씨와 정 씨가 1심 선고를 앞둔 9월 이번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모(29) 씨가 액상 대마 카트리지 수십개를 인천공항을 통해 밀반입하려다 검찰에 적발됐다.
또 같은 달 홍정욱(49)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의 장녀 홍모(18) 양도 인천공항에서 대마를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모두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이 씨는 10월 열린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속 48일 만에 석방됐다.
홍 씨는 미성년인 점 등이 참작돼 불구속기소 됐고 12월 열린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최근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같은 형을 선고받은 정 씨는 내년 1월 15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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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그룹]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 |
◆ 법조계 "마약 투약 사건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해야"
사회 유력 인사 자제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 법원이 마약사범으로 기소된 재벌가 자녀들에게만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대법원이 올해 발간한 사법연감 통계를 보면 2018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총 4396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이 중 실형이 선고된 사람은 2317명이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1603명)보다 약 45% 가까이 더 많았다. 2017년에도 실형 선고는 2890명, 집행유예는 1994명으로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단순 마약 소지 또는 투약 범죄의 경우 기본 형량을 1~3년으로 두고 있다. 이때 ▲범행 가담 동기 ▲마약 관련 전과 기록 ▲반성 여부 등이 형량 산정에 주요 기준이 된다.
법원은 재벌 자제들의 혐의에 대해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동종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반성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참작 사유로 들었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평가가 엇갈린다.
정이원 법률사무소이원 변호사는 "법원은 유력인사 자제의 경우 주거도 확실하고 신변이 확실하다보니 구속까지 잘 안 시키는 것 같다"며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있어도 가정환경이 좋으니 집에서 잘 지도하면 재범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인의 경우 선처를 받는 것은 공급책에 대해 수사 협조를 했을 때 풀려난다"며 "그 외에는 엄하게 다스리는데 유력 자제들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동찬 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형사 사건에 대해 기본적인 형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마약 투약 사건에서 초범이고 재범 우려가 없으면 집행유예를 내린다는 양형기준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마의 경우 양형기준이 8개월에서 1년6월이고 3년 이하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며 "사회 유력 인사 자제라는 인식은 있지만 일반인이라고 해도 초범인 경우 충분히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마약 사건에 대한 양형기준이 강화될 필요는 있다"며 "단순히 마약을 소지하거나 흡입한 사람을 유통한 사람과 구분해 가볍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가 현재 마약 범죄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며 "마약 하는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인식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