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서영(천우희)은 현기증 나는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30대 직장인이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만, 현실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계약직 생활은 불안정하고, 비밀 연애 중인 진수(유태오)와 관계도 불안하다. 밤마다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도 더는 참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서영은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회사 창밖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자신을 지켜봐 온 로프공 관우(정재광)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
영화 ‘버티고’는 일도 사랑도 가족도 모든 것이 흔들리는 30대 여성의 이야기로 ‘러브픽션’(2012)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의 신작이다. 전 감독은 삶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여자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 그 안의 고독과 외로움을 그렸다. 제목인 ‘버티고’는 현기증을 의미하는 영어 ‘Vertigo’이자 회전할 때 감각을 상실하는 비행용어다. 참고 견딘다는 뜻의 ‘버틴다’이기도 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독특한 전개다. 이야기 진행이 마치 주인공 서영의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영화는 날짜와 날씨를 보여준 후 서영의 하루를 펼친다. 그 위로 서영의 내레이션이 입혀진다. 이 패턴이 17번 반복된다. 이 중에서도 눈여겨볼 건 날씨. 날씨는 서영의 하루를 예보해주는 장치로 쓰였다. 그날 서영이 겪어낼 일들, 느낄 감정들을 미리 귀띔한다.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지만, 부정적으로 끝을 맺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엔딩에서는 희망을 말한다. 전 감독은 생을 끝내기로 결심한 서영에게 다시 한번 손을 건넨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통해서 그렇게 한다. 극적인 장치를 활용한 탓에 현실감이 없긴 하나 위로는 된다. 힘을 얻는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
반면 종종 등장하는 구시대적 설정, 장면들은 아쉽다. 서영의 상황만큼이나 위태롭다.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20여 년 전 전 감독이 회사원일 때 경험한 일이 토대가 됐다. 문제는 그사이 세상이 제법 변했다는 거다. 하지만 전 감독은 “여전히 한국사회는 불평등하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시선도 필요하다”는 반론을 내놨다.
천우희는 언제나처럼 좋다. 최근 봤던 강렬하거나 유쾌한 모습은 없다. 대신 러닝타임 내내 절제된 연기로 작품을 이끈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진수 역의 유태오나 관우 역의 정재광 또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오늘(16일) 전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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