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정 중책···하동 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탄력
[하동=뉴스핌] 이경구 기자 = 경남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하동에서 지방 유일의 독자적 ‘대한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선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일산 박치화(1880∼1947) 선생이 3·1운동 이후에도 상해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하동 ‘대한독립선언서’(2015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독립기념관 소장)[사진=하동군청]2019.9.20 |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박치화 선생의 후손이 제공한 자료와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박치화 선생 신임장과 통지서에서 선생의 활약상이 담긴 내용을 3·1운동 100년 만에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정 소장은 "1927년 10월 상해 임정에서 선생에게 수여한 신임장과 통지서로 임시정부 대통령서리 겸 법무총장 이동녕이 임시정부의 협의를 거쳐 박치화에게 ‘법무원 법률판리사 겸 경상남도찰리사’와 임정 재무모집기주원 등의 직책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직책은 임정의 법무, 군무, 재무를 통괄한다"며 "오늘날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중책으로 선생에 대한 신임이 컸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건은 박치화 선생의 종손자 박명신(85)씨의 자료 제공과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문서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임시정부 박치화 재무모집기주원 통지서(1927년, 독립기념관 소장)[사진=하동군청]2019.9.20 |
하동대한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18일 하동군적량면장으로 있던 박치화 선생을 비롯해 12인이 작성하고 서명한 후 하동장날 장터에서 낭독하고 배포한 지방자체의 유일한 독립선언서다. 이 독립선언서는 가로 30cm, 세로21cm의 크기 총329자로 2015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로 지정됐으나 아직 국가문화재등록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로 현재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윤상기 군수는 “이번 문건 발굴은 박치화 선생의 생가복원과 근대문화유산 등록, 공훈비 건립, 독립기념관 건립, 하동 ‘대한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에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연내에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마을에 박치화 지사 공훈비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상 소장은 "박치화 선생은 3·1운동 이후의 활동에 대해 그동안 알려진 바 없었다”며 “임시정부에서의 활약상이 담긴 문건의 발굴은 그가 걸어온 발자취가 컸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임시정부 박치화 신임장 법무원 법률판리사겸 경상남도찰리사(1927년, 독립기념관 소장)[사진=하동군청]2019.9.20 |
lkk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