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 초단기 자금시장이 17일(현지시각) ‘퍼펙트 스톰’을 연출했다.
이른바 레포 금리가 장중 한 때 10%까지 치솟으며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자금 시장이 마비 증세를 보인 것.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뉴욕연방준비은행이 금융위기 이후 약 11년만에 처음으로 532억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공급, 일단 상황이 진정됐지만 근본적인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어 시장 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중 초단기 자금시장의 금리가 10%까지 치솟은 것은 구조적인 문제와 기술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데 시장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먼저, 계절적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분기 말이 가까워 오면 기업들이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난다.
지난주까지 2.1% 선에서 안정을 이뤘던 레포 금리가 16일 연방기금 금리의 상단에 해당하는 2.25%까지 오른 뒤 이날 폭등한 것도 이 같은 기술적 요인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따로 있다. 단순히 계절적 요인만으로 미 통화 당국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할 만큼 자금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제로금리 정책 종료에 이어 실시한 대차대조표 축소와 이에 따른 은행권 지급준비금 감소가 구조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에 걸쳐 자산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던 연준이 대차대조표를 줄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은행권이 연준에 예치한 지준금 역시 지난 2014년 2조9000억달러에서 최근 1조3000억달러로 급감했다.
은행권의 현금 자산이 줄어들면서 단기 자금시장의 거래를 마비시켰다는 진단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양적완화(QE)를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BMO 캐피탈 마켓의 존 힐 채권 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분기 말 법인세 납부는 과거에도 이뤄졌다”며 “이번에 자금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와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정책도 레포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 요인이다. 법인세 인하를 포함해 대대적인 재정 확대에 나서면서 국채 발행 물량이 급증했고, 정부가 자금을 흡수한만큼 시중 유동성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이 밖에 연준의 단기 금리 통제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 저하도 레포 금리 발작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날부터 이틀간의 통화정책 회의에서 정책자들이 기준금리를 현행 2.00~2.25%에서 25bp(1bp=0.01%포인트)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단기 금리가 가파르게 뛴 것은 연준의 통제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월가의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이날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뉴욕연은의 레포 거래가 첫 시도에서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불발된 것도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혼란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라이트슨 ICAP의 루 크랜달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이날 레포 금리 폭등이 자금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을 크게 높였다”고 주장했다.
커버쳐 증권의 스콧 스컴 레포 트레이더는 “자금 시장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며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채권 구루로 통하는 제프리 건드라크 더블라인 캐피탈 최고경영자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연준이 조만간 QE를 재개해 시중 유동성 확대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