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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간선급행버스체계 도입 본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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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뉴스핌] 남경문 기자 = 창원시가 도심의 교통난해소와 대중교통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간선급행버스체계(BRT) 도입을 본격 추진한다.

시는 13일 오후 시청 회의실에서 시의원, 교통전문가, 경남도, 경찰서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원시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기본구상 및 개발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고 14일 밝혔다.

허성무 창원시장(가운데)이 13일 오후 창원시청 회의실에서 간선금행버스체계 도입을 위한 기본구상 및 개발계획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창원시청]2019.6.13.

이번 용역은 버스 중심의 창원시 대중교통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창원시 전역을 대상으로 BRT 도입노선에 대한 기본구상 및 타당성조사, 육호광장~도계광장~창원광장~가음정사거리까지 18km 구간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시는 지난 2014년 가포동~서성광장~시청~성주광장~석동까지 30.4km구간에 노면전차, 즉 트램 도입을 추진하던 중 약 6500억원의 사업비 부담과 매년 300억원의 운영비 적자를 이유로 도시철도사업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

이에 시는 사업비 부담은 줄이면서도 버스에 독립적인 통행권을 부여해 통행시간 단축, 정시성 확보, 수송능력 향상이 가능한 저비용·고효율의 BRT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용역의 수행기관인 ㈜신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착수보고회에서 성공적인 BRT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친화적인 설계와 교통소통측면에서 승용차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보행환경개선 및 교통체계개선(TSM)과 병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BRT 도입 시 대중교통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트램 등 경전철(LRT) 수단으로 전환이 가능한 시설기준 마련방안을 제안했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대중교통은 시민 생활과 직결된 만큼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체감할 수 있는 계획안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며 "창원시 특성이 잘 반영된 창원형 BRT를 구축하는데 교통전문가와 유관기관의 지속적인 자문과 협조를 구한다"고 말했다.

창원시가 검토하고 있는 간선급행버스체계 구간[사진=창원시청]2019.6.13.

 

news234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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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왕즈이 잡고 말레이오픈 3연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날카로운 공격력까지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년 첫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다. 안세영은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56분 만에 게임 스코어 2-0(21-15, 24-22)으로 물리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0만1500달러(1억3000만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 [사진=BWF]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지난 해 8차례 만나 모두 왕즈이를 제압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호 상대 전적 17승 4패가 됐다. 왕즈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왕중왕전 결승에서 패한 뒤 "안세영은 항상 모든 나라 선수들에게 롤모델"라며 믹스트존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쏟았다. BWF 관계자조차 "왕즈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많았다.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던 세계 3위 한웨이(중국)가 감기 몸살로 기권했고 준결승에서 최대 난적인 세계 4위 천위페이(중국)의 기권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날 경기 전 "안세영은 허점이 거의 없는, 매우 철저하고 완성도 높은 선수"라며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범실을 쏟아내며 1-5까지 밀렸다. 뒤늦게 리듬을 찾은 안세영은 하프 스매싱을 앞세워 득점을 쌓아 10-11로 인터벌에 들어갔다. 휴식 후 특유의 송곳샷이 살아나며 역전했고 셔틀콕을 상대 엔드 라인과 사이드 라인 위에 떨어뜨리며 21-15로 게임을 잡았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2게임에선 짜릿한 뒤집기쇼를 펼쳤다. 9-17까지 밀려 패색이 짙었으나 수비와 길게 가져가는 랠리로 추격에 나섰다. 왕즈이가 20-19로 먼저 게임 포인트에 들어갔지만 안세영이 듀스를 만들고 23-22로 앞선 뒤 대각 스매시로 챔피언십 포인트를 뽑았다. 2026년을 여는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안세영은 환호하는 말에이시아팬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1-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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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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