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CCTV 공개 후 공분 커져
국내법상 스토킹은 '경범죄'... 노상방뇨·장난전화 수준
강력범죄 겪으며 '스토킹 처벌법' 제정 요구 커져
국회에선 관련법 6건 낮잠중... "법안소위 상정조차 안됐다"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여성 대상 범죄가 공분을 살 때마다 같이 뜨거워지는 법안이 있다. 일명 ‘스토킹 처벌법’이다. 우리나라는 스토킹에 대한 처벌을 경범죄로 취급한다. 처벌 수준이 노상방뇨나 장난전화에 부과하는 범칙금과 같이 가볍다.
이 때문에 스토킹으로 시작된 여성 대상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가 뒤따른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스토킹범죄 처벌 강화 관련 법안은 6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단 한 건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8일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로 불리는 사건의 범인 조모(30) 씨의 폐쇄회로(CC)TV 상 모습 [사진=인터넷] |
◆현행 '스토킹' 범죄, 경범죄 처벌법 따라 '범칙금 8만원'
최근 한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는 장면이 방범용 폐쇄회로(CCTV)에 잡히며 스토킹 범죄를 엄벌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9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가해자 A씨는 전날 오전 6시2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에서 한 여성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당시 A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긴급체포한 경찰은 이튿날인 30일 그의 범죄 혐의를 ‘주거 침입 강간미수’로 변경했다.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 온 것을 어떻게 단순 주거 침입으로 볼 수 있느냐”는 비난 여론이 일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는 △강제로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한 점 △상당시간 집 앞에 머문 점 등이 고려됐다.
A씨는 피해 여성을 집 주변에서부터 수십미터 따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명 ‘스토킹’이 범죄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국내법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에 규정된 ‘지속적인 괴롭힘’에 해당한다. 처벌은 통상 범칙금 8만원 부과에 그치고 있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시에서 아파트 주민이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주민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 안인득은 위층에 살던 여고생을 수차례 스토킹, 접근이 여의치 않자 "무시 당했다"며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피해 학생의 가족은 안씨의 스토킹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경찰에 제출했지만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안씨에 대한 처벌 요구를 거부 당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2018.11.28 yooksa@newspim.com |
◆스토킹 처벌법 제정 요구에도... 관련 법안 6건, 국회 상임위 계류 중
스토킹 범죄를 엄벌할 개별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국회에서도 지난 3년 동안 총 6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진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2016년 발의된 스토킹처벌법(지속적 괴롭힘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스토커’ 행위를 ‘지속적 괴롭힘범죄’로 규정하는 특례법이다. 스토킹 행위가 지속·반복되며 살인 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킹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 발의자인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같은 해 11월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 “스토킹은 그 피해가 심각함에도 지속적 괴롭힘으로 처벌법상 1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형의 처벌을 받을 뿐”이라며 “암표 매매에 대한 범칙금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스토킹 피해자들은 피해를 중단하고 가해자를 차단할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처벌 근거법이 뚜렷하게 없어 법적 대응을 결심하지 못하고 피해다니기 일쑤이다. 또한 정신과 상담을 받기까지도 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당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궁석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스토킹에 관한 특례법 제정 여부는 제정에 대한 찬반양론, 우리 형사법 체계 및 비교법 자료 등을 토대로 입법정책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법사위 법안소위로 회부된 스토킹 처벌법은 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찬반양론’을 듣고 따져볼 기회도 얻지 못한 셈이다. 통상 소위에 올리는 법안은 여야 간사들이 협의해 정한다. 여론의 온도와 달리 국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 법안은 무한정 계류한다. 5건의 ‘스토킹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안’ 또한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자유한국당이 여야4당의 선거법 및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합의에 강력 반발해 "20대 국회는 없다"며 국회 보이콧을 선언, 정국 경색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한국당은 오는 27일 2차 대규모 장외투쟁 총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국회 일정을 거부,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깃발이 멈춰 서 있다. 2019.04.23 yooksa@newspim.com |
◆발의·폐기 반복된 스토킹처벌법... 일각에선 "국회 공전도 한 몫"
스토킹 처벌법 제정 필요성은 정부에서도 공감대를 이뤘던 부분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정부안은 스토킹 범죄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이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가중 처벌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안은 발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스토킹의 정의를 포함해 법안 내용을 놓고 유관부처(법무부·대법원·경찰청·여성가족부) 간 조율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이 국회에 발의된다고 해도 본회의 문턱을 무사히 넘을 지도 미지수다. 스토킹 처벌법은 15대~19대 국회에서도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총선을 앞두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사실상 논의와 합의를 거쳐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불거지며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범죄’라며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찰과 근본적 대책 없이 ‘반짝’ 관심에만 그치는 정치권 모두 각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심 의원은 “국회는 99년 처음 발의되어 20년째 폐기와 계류를 반복하는 ‘스토킹범죄 처벌’ 관련 법안들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국회가 공전하는 사이 국민의 삶은 매일 위협받고 있다”고 탄식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논의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회 공전이 길어지는 탓도 크다"며 "여러 법안을 논의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