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英 사립학교 고민하는 청춘들 성장 스토리
750여명 몰린 오디션 통해 주·조연·신예 대거 캐스팅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한국의 콜린 퍼스를 찾을 수 있을까. 신인 배우를 대거 등용하며 화제를 모았던 연극 '어나더 컨트리'가 베일을 벗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박은석(왼), 문유강 [사진=PAGE1] |
지난 30일 오후 서울 종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연극 '어나더 컨트리'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모든 배우들이 총출동해 전막 시연을 선보였다. 우려와 달리 신인임에도 기성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때로는 훨씬 좋은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극작가 줄리안 미첼의 원작에서 따왔다. 1930년대 계급과 권위가 지배하는 영국 명문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명문가 자제로 태어난 수재였으나 공산주의에 매료돼 KGB의 스파이로 활약했던 가이 버제스의 생애가 모티브다.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돼 같은 해 올리비에 어워드 올해의 연극상, 연극 부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1984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됐으며, 37년 만에 한국에서 초연된다.
김태한 연출은 "시대적으로 동떨어져 있고, 영국과 문화 차이도 있어 초반 우리나라 관객들이 어떤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봐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개인과 단체의 사상, 가치관의 부조리와 모순, 그것으로 파생되는 부작용, 사상이 충돌했을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하고 그 결과들이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국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번 작품은 배우 출신 김태한의 첫 연극 연출작이다. 그는 "어떻게 팀을 이끌지,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작품을 이끌어갈 지 모든 것이 다 낯설고 힘들었다. 하지만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더 즐겁고 보람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에 같은 작품에서 배우로 호흡을 맞췄던 이충주는 "부드러운 형님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고 칭찬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에 캐스팅 된 13인 [사진=PAGE1] |
영국에서 '어나더 컨트리'는 콜린 퍼스의 데뷔작으로 유명하다. 루퍼트 에버릿, 케네스 브래더, 톰 히들스턴 등 명배우들을 배출한 스타 등용문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 또한 오디션으로 뽑은 신예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약 750명의 지원자가 몰렸으며, 쟁쟁한 경쟁을 뚫고 실력파 신예들이 뽑혔다.
김태한 연출은 "아직 무대 경험조차 없는 배우도 있다. 상당히 불안하고 긴장도 되고, 어쩌면 많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설어도 또다른 배우, 다른 연기, 새로운 에너지로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다. 나름대로 재밌고 보람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배우들이 무대에 적응하는 시간이 걸릴 테고, 계속해서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작품은 자유로운 영혼 '가이 베넷'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단아 '토미 저드'의 이상과 꿈, 좌절에 집중한다.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젊은 날을 그리는 동시에 인간 대 인간으로의 존중과 이해, 국가와 개인적인 이념 사이의 정체성, 이를 고민하고 방황하는 두 사람의 성장 스토리를 담는다.
'가이 베넷'은 가이 버제스를 모티브로 탄생한 캐릭터로, 권위주의에 물든 제도와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학교 시스템에 저항하는 진보적 청년이다. 배우 이동하, 박은석, 연준석이 맡는다. 연준석은 오디션을 통해 이번 작품으로 데뷔하는 신예다.
1년여 만의 연극 무대에 복귀한 이동하는 "대본을 읽어보니 흥미로웠다. 캐릭터가 굉장히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이 꼭 하고 싶었다. 연습하다보니 너무 좋았다. 지금 굉장히 기쁘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은석은 "작품 자체가 당시 영국의 사회를 볼 수 있는 작은 미니어처 버전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때 영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같은 사회적 억압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반항하는 두 인물의 관계도 좋았다.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고 고급스러운 텍스트"라고 작품의 매력을 꼽았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이충주(왼), 연준석 [사진=PAGE1] |
첫 연극 데뷔인 연준석은 "연극을 꼭 해보고 싶었다. 다같이 한 공간에 계속 모여 일주일에 6일 이상 만나 얘기하고 시간을 나누다보니 친밀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가이 베넷'은 낯가림도 없고 자유분방하고 눈치도 안보는 성격이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전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열망하는 혁명적인 사상가 '토미 저드' 역은 배우 이충주와 문유강이 맡는다. 문유강 또한 오디션을 거쳐 데뷔하는 신예로, 267 대 1이라는 가장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역할을 차지했다.
이충주는 "좋은 작품이라면 대극장, 소극장, 연극, 뮤지컬 가리지 않고 하고 싶었다. 다행히 좋은 작품에 참여하게 돼 감사하다. 노래 없이 연기만으로 부딪혀야 하는 이곳은 굉장한 시험대다.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유강은 오디션 경쟁률에 부담을 드러내면서도 "더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했다. 관객들에게 설득시킬 합당한 연기를 해야하기에 나름 빈틈을 찾고 사람냄새를 풍길 수 있게 했다. 공산주의에 세뇌당한 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가까운 점을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했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다"며 "외향적인 부분도 중요해서 시청각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당시의 모습, 자세를 많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이동하(왼), 문유강 [사진=PAGE1] |
이 외에도 오디션을 통해 '바클레이' 역에 이지현, '데비니쉬' 역에 배훈, '멘지스' 역에 이태빈, '파울러' 역에 이주빈과 최정우, '델러헤이' 역에 김의담, '샌더슨' 역에 김기택과 황순종, '하코트' 역에 이건희, '워튼' 역에 채진과 전변현이 캐스팅됐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은 연극 '어나더 컨트리'가 5회차 전석 매진이 될 경우 공약도 걸었다. 연준석은 '하코트' 역으로, 박은석은 '워튼' 역, 이동하는 크리켓 선수로 변신할 예정이다. 이충주는 골반댄스를 선보이고, 문유강은 기존에 없는 캐릭터인 레스토랑 웨이터로 분할 것을 약속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오는 8월 1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