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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회장 퇴진] 국내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 승선...26세 젊은 선장 ‘캡틴 J. C.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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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두 척으로 회사 설립...창립 50년 매출 7조원대 대기업 '우뚝'
종합식품회사 도약 꿈꾸는 '청년 김재철'...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

[서울=뉴스핌] 박효주 기자 = “항해 중에 사고를 당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꼭 태워주십시오.” 

청년은 절박했다. 1958년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둔 그는 간신히 실습항해사 자격으로 국내 최초 원양어선을 탔고, 숱한 위기를 이겨내며 연 매출 7조원대 대기업을 일궈냈다. 바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얘기다.

김재철 회장은 재계 1세대 중 한 명으로 원양어선 말단 선원부터 시작해 현재의 동원그룹을 일군 신화의 주인공이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으며 장남인 김남구(56)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금융업을, 차남인 김남정(46) 동원그룹 부회장이 산업을 각각 맡고 있다.

김 회장의 엄격한 자식 교육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평소 “부모가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지만 꼭 줘야 하는 것이 고생”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 4학년이던 1989년, 북태평양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그를 태워 선원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김남구 부회장은 생사를 넘나드는 원양어선에서 매일 18시간 넘는 중노동을 경험하며 “죽는 것 말고는 육상에서는 겁날 게 없겠구나”라며 담대함을 키웠고, 그런 경험이 지금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키워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역시 대학 졸업 후 참치 제조공장에서 참치캔 포장, 창고 야적 등 생산업무부터 시작했다. 이후에도 바쁘기로 소문난 청량리 시장 일대를 담당하는 영업사원을 거치며 회사의 가장 작은 일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다.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회장.[사진=동원그룹]

◆어선 두 척으로 ‘동원산업’ 창업...“바다만이 살길”

김 회장은 1969년 현물차관을 통해 도입한 어선 두 척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올해로 창업 50주년을 맞은 동원그룹은 종합식품가공업, 금융업, 종합포장재,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 회장이 나고 자란 전남 강진군 군동면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마을 대다수가 농사를 짓고 있었고, 학생들 역시 농대를 나와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가난한 농가의 7남 4녀 중 장남이었던 김 회장은 강진농고를 졸업할 무렵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농대 장학생으로 선발됐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수산대학(현 부경대) 어로과에 입학했다. 좁은 국토와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배를 탄 지 3년 만인 1960년 말 김 회장은 26세 젊은 나이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그는 선장이 된 후에도 기술 개발과 어장 조건 연구에 몰두했다. 이는 그가 항상 가장 많은 어획고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 회장은 당시 20대 어린 선장이었음에도 ‘캡틴 제이 씨 킴(Captain J. C. Kim)’이란 이름으로 외국 수산업계에서 유명했다.

사모아 최고의 선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 회장은 1969년 35세의 나이에 그동안 모은 1000만원을 자본금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 위기 속 승부수...과감한 투자가 불러온 성공

김 회장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으로 배럴당 2달러에 불과했던 유가가 1974년에는 11달러, 1975년에는 12달러로 치솟았다. 석유파동으로 한국 경제는 경기 침체, 물가 상승, 국제수지 악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한국 경제의 악화는 급성장해 가던 한국 원양업계를 강타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각국은 2백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했다.

원가 중 유류비가 40% 이상을 차지하던 원양어업은 석유파동과 연안어장 규제로 인해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다. 여기에 김 회장은 회사를 시작할 때 어선을 분할상환 방식으로 구입해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를 상환하면서 이익도 내야 했다.

김 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방침을 수립했다. 우선 해외기지 중심으로 진행했던 참치 판매를 독항 어업을 통한 일본 판매 중심으로 전환했다. 어획한 참치를 섭씨 영하 50도 이하로 급속 냉동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독항 어선을 출항시켜 어가(魚價)가 높은 일본에 직접 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였다. 양질의 참치를 잡기 위해 인도양 해역에서 대서양으로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위기 상황 속에서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1975년 2월 4500톤급 트롤 공모선 ‘동산호’를 건조한 것이다. 동산호는 선내에 공장시설을 갖춘, 당시로서는 세계적 수준의 대형 어선이었다. 건조비만 1250만달러로, 당시 동원산업의 전 재산보다 큰 금액이었다.

이후 1979년 이란의 원유 수출 중단으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8년 배럴당 12달러였던 유가가 1981년 12월 34달러까지 뛰어올랐다. 1차 석유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폐업하거나 적자 운영에 시달리는 업체가 속출했다.

김 회장은 다시 몰아친 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헬리콥터 탑재식 참치 선망어법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선망어법은 미국에서도 1943년 이래 개발에 공을 들여 왔으나 실패를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수많은 도전 끝에 파푸아뉴기니 근해에서 1회 투망에 250톤(당시 22만달러) 정도의 어획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이를 통해 선망 사업의 성공에 확신을 갖게 된 김 회장은 선망선을 급속도로 늘려갔고, 동원산업은 참치 어획에 있어 세계적 회사로 성장해 나갔다.

원양업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김 회장은 1982년 원양어업에서 식품가공업으로의 확장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한다. 이전까지 원어(原魚) 형태로 해외에 수출해 오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1차 산업인 원양어업에서 2차 가공산업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김 회장은 선진국의 식생활 패턴을 분석하고 제품 개발에 몰두한 끝에 참치캔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참치캔으로 안정된 시장을 확보한 뒤 수산물 제조판매 부문을 확대하기로 했다. 가공식품의 다양화를 위해 제조공장을 준공하고 꽁치통조림, 조미김, 어육연제품 등을 생산하며 원양어업에서 식품가공업으로의 순조로운 확장을 이뤄 갔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동원그룹]

◆ 원양어업 회사의 금융업 진출...재계를 놀라게 하다

국내 원양업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김 회장은 축적된 자금과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2차, 3차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 이때 김 회장이 주목한 분야가 금융업이다.

1981년 2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AMP 과정을 이수하던 김 회장은 하버드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제조회사가 아닌 증권회사에 더 많이 진출하는 것에 주목했다.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증권회사가 인기가 있다면 한국도 앞으로 증권업이 유망 산업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국내에 돌아와 증권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확신은 곧장 실행으로 이어졌다. 1982년 70억원 규모의 한신증권(한국투자증권)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재계에 놀라움을 안겼다.

김 회장은 한신증권 인수를 통해 사업 전망이 밝은 금융업에 진출하며 사업다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잇따라 한신기술개발금융(1986), 한신경제연구소(1986), 한신투자자문(1988)을 설립하며 결과적으로 2차 산업과 3차 산업 진출에 소요되는 자금 조달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한신증권은 1996년 4월 동원증권으로 상호를 바꾸고 자기자본수익률 업계 1위의 강자로 자리 잡았으며, 1997년에 이어 1998년도 증권감독원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증권사’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이익공유(profit sharing) 성격의 원양어업 성과보상제도를 적용해 우리나라 증권업 최초로 인센티브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 청년 시절 참치를 납품했던 미국 ‘스타키스트’를 품에 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무역협회장 임기를 명예롭게 마친 김 회장은 2006년 다시 동원그룹의 키를 잡았다. 그리고 2008년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인 ‘스타키스트’와 3억6300만달러에 달하는 대형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또 한 번 재계를 놀라게 했다.

스타키스트는 김 회장이 젊은 선장으로 사모아 어장을 누비던 시절, 어획한 참치를 납품하던 회사 중 가장 큰 고객이었다. 1963년 스타키스트는 사모아 섬에 참치캔 공장을 준공하고 미국 내 참치캔 시장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당시 사모아 참치캔 공장에 최초로 참치 원어를 납품한 이가 바로 김 회장이다.
남태평양을 누비며 참치를 잡아 납품하던 20대 선장이 미국의 거대 회사를 50여 년 후 인수하게 된 것이다. 적자에 허덕이던 스타키스트는 동원그룹에 인수된 후 경영이 안정되면서 매해 성장을 거듭해 가고 있다.

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김재철 회장.[사진=동원그룹]

◆ 청년 김재철 회장...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

김재철 회장은 16일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회사를 이끌어 온지 50년 만이다.

회장에서 물러난 후 김 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에만 그간 쌓아온 경륜을 살려 조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재계 원로로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방안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그간 하지 못했던 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일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청년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도전정신이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열성적인 자세는 말단 선원으로서 배를 탔던 20십대 때 그대로다.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약력
1935년 전남 강진 출생 / 1958년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로학과 졸업 / 1969년 동원산업 창립 / 1979년 동원육영재단 설립 / 1981년 미국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 1982년 참치캔 출시 / 1982년 한신증권(현 한국투자금융지주) 인수 / 1989년~ 동원그룹 회장 / 1999~2006년 한국무역협회 회장(23, 24, 25대) / 2006~2007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 / 2008년 미국 스타키스트 인수

△저서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2000, 김영사)
남태평양에서(1989~1996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바다의 보고(1996~2001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거센 파도를 헤치고(1975~1988 실업계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hj0308@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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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경제 숨통 '호르무즈 10km'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호르무즈 해협 10km 남짓의 수로가 지구촌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직접 충돌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불태운다는 협박을 거듭하는 상황. 160km 길이와 폭 30~50km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제 항로는 10km 가량이지만 전세계 에너지 거래의 심장부다. 보도에 따르면 머스크와 CMA CGM 등 주요 컨테이너 선사와 탱커, 트레이딩 하우스들은 호르무즈 통항을 전면 중단한 채 우회 또는 대기 중이다. 유럽과 중국 쪽 해운 데이터에서도 3월2일(현지시각) 기준 상업 유조선 통과가 사실상 0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된다. 사실상 민간 선박의 통행이 중단되면서 충격파가 지구촌 에너지와 물류 시스템에서 물가, 통화정책, 실물경제까지 덮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진다. 일부 투자은행(IB)은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호르무즈의 좁은 심해 수로를 통과하는 원유는 교역량의 4분의 1 이상이다. 액화천연가스(LNG) 물량도 전세계 해상 거래의 20%에 이른다. AI 도구를 이용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분석을 재가공해 보면,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LNG의 80% 이상이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등 네 개 국가로 전달된다. 에너지 흐름은 이미 급제동이 걸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과 민간 데이터 업체 Kpler의 통계에 따르면 호르무즈를 거쳐 나가던 중동산 원유 가운데 상당 부분이 선적항에서부터 출항이 보류되거나 해협 인근에서 정박하는 실정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지역 [사진=미국 에너지부, 블룸버그] 걸프 산유국들은 수출항에서의 선적 일정을 조정하고 일부 물량을 내륙 파이프라인을 통해 홍해 또는 지중해 쪽으로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호르무즈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 아시아 LNG 현물 가격을 나타내는 JKM 지수는 3월2일 15.068달러/MMBtu까지 상승하며 2025년 2월13일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국제 유가도 이번 사태 직전보다 20~30% 가량 뛴 상태다. 주요 투자은행(IB)은 단기적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 선을 중심으로 변동할 것으로 보되,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질 경우 120달러 선까지도 상단이 열려 있다고 경고한다. 단순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아니라 물리적 공급 차질에 따른 구조적 유가 상승이라는 설명이다. 중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 미국의 셰일 생산 여력, 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의 증산 여지를 감안한 다수의 시나리오에서도 호르무즈 봉쇄로 인해 당장 하루 2000만 배럴에 달하는 물량이 제때 시장에 도달하지 못하면 과거 걸프전 당시와 유사한 수준의 가격 충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조선과 LNG선, 컨테이너선이 호르무즈와 인근 해역을 기피하거나 우회하면서 해상 운임과 보험료가 동시에 치솟는 모양새다. 한 LNG 트레이딩 업체는 중동 항로의 워 리스크(war risk) 보험료가 화물 가치의 15~25%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전했고, 이로 인해 일부 선사는 차라리 선박을 놀리거나 다른 노선으로 돌리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글로벌 선사들이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 항로를 피하기 위해 선박을 재배치하면서 해상운임과 보험료가 동시에 상승하고, 일부 화주들은 아예 신규 예약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운임과 보험 쇼크는 곧바로 에너지 수입 가격과 전력 요금, 나아가 광범위한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유사와 발전사, 석유화학 기업의 원가가 이중으로 압박받게 되고, 여기에 컨테이너선과 벌크선까지 위험 해역을 피해 돌아가기 시작하면 중간재와 원자재, 곡물과 사료까지 운송 시간이 늘어나고 비용이 오른다.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장기화되면 글로벌 공급망은 또 한 번 구조적인 병목을 겪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끈적끈적한 물가가 재차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봉쇄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미국과 유로존, 아시아 등 주요 수입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수개월간 0.5~1.0%포인트의 상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여러 연구기관에서 제시된다.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고 상황이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특히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신흥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악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다. AI 도구로 세계은행과 IMF, 민간 리서치기관의 모델을 종합하면 유가가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글로벌 경제 성장률은 0.1~0.2%포인트씩 떨어지고, 에너지 수입국의 경상수지와 재정 부담이 눈에 띄게 악화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유가 150달러 시나리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는 일부 취약 신흥국에서 통화 가치 급락과 경상수지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지금과 같이 전쟁과 제재, 수송 차질이 겹친 상황에서는 단순히 유가 상승분만이 아니라 LNG와 전력요금, 곡물과 비료, 운임비까지 연쇄적으로 튀어오를 수 있어 기존의 "유가 파급계수"보다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AI 기반 시뮬레이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제조 강국들의 심장부를 이루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산업이 동시에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정유사와 발전사는 더 높은 가격에 원유와 LNG를 조달해야 하고, 이는 곧 전기 요금과 산업용 연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석유 화학과 철강, 시멘트 등 에너지 소비가 높은 업종은 원재료와 연료 비용 상승과 동시에 해상 운임 상승까지 감내해야 한다. 자동차와 조선, 전자업체들은 중간재와 부품 공급 지연, 운송비 상승, 해외 수요 위축이라는 삼중고를 마주할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10km 바닷길이 막히면서 에너지 공급과 해상 운임, 보험료와 전력 요금, 나아가 세계 각국의 물가와 성장률까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쇼크'가 현실화되는 시나리오를 경고한다. shhwang@newspim.com 2026-03-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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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만 울린 '왕사남 강가 포스터'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6년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90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짙은 여운을 남기는 강가 포스터를 공개했다. '왕과 사는 남자'가 3일 900만 관객 돌파에 힘입어 강가 포스터를 공개했다. 영화 속 이홍위(박지훈)의 마지막과 함께 공개되는 장면 속 아련한 모습을 담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공개된 포스터는 왕위에서 쫓겨나 청령포로 유배된 이홍위가 강가에 홀로 앉아 쓸쓸히 물장난 치는 장면을 담았다. 흰색 도포를 입고 쪼그려 앉은 이홍위의 모습은 어린 나이에도 자유를 꿈꿨을 그의 심정을 짐작하게 해 먹먹한 감정을 자아낸다. [사진=(주)쇼박스]  특히, 엄흥도 역의 유해진과 이홍위 역의 박지훈이 포스터 속 장면에 대해 직접 소회를 밝힌 바 있어 관객들의 감정을 배가시킨다. 유해진은 "이홍위가 유배지 강가에서 물장난 쳤던 모습이 기억에 남고, 그때 엄흥도의 심정은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유배지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있을 나이인데, 너무 안쓰러웠다"라 말하며, 해당 장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지훈 또한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장면은 해진 선배님의 제안으로 생긴 장면.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을 시기, 유배지에 와서 혼자 물장난을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단종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며, 해당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이홍위의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하고자 고심했던 과정을 밝혀 눈길을 모았다. 이처럼 배우들은 물론 900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 강가 포스터는 '비운의 왕'이라는 단종의 단편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 이홍위'에 집중한 '왕과 사는 남자'만의 서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숨겨진 단종의 이야기로 900만 관객의 마음속에 묵직한 감동을 남기며 파죽지세의 흥행을 기록 중이다.  jyyang@newspim.com 2026-03-0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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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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