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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톡] 현대판 마녀사냥, 내 목소리는 어디에…연극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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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마녀사냥 배경으로 탄생한 아서 밀러 희곡
오는 3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서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빌리지(현 댄버스)에서는 약 5개월에 걸쳐 185명의 주민들이 투옥되고, 19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총 25명이 목숨을 잃은 마녀재판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웃을 마녀나 악마로 고발했다.

연극 '시련' 공연 장면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시련'은 실제 일어났던 위 사건을 배경으로 한 미국 현대 희곡의 대표 극작가 아서 밀러의 작품이다. 마녀재판에 1950년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인 '매카시즘'을 투영시켜 집단 안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을 그린다.

공연은 패리스 목사가 일어나지 않는 딸을 걱정해 퇴마의식 전문 존 헤일 목사를 초청하며 시작된다. 패리스 목사는 마을 소녀들이 숲속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딸 역시 마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소녀들은 마을 사람들을 한명씩 마녀로 지목하고,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된다.

주인공 존 프락터는 세일럼의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하녀 아비게일과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기 때문. 그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아비게일은 세일럼 마녀사냥을 주도하며 존 프락터의 아내 엘리자베스 프락터를 마녀로 고발한다. 존 프락터는 아내를 살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처형당한다.

연극 '시련' 공연 장면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극중 세일럼은 매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이다. 힘든 경제대공황 시기를 독실한 신앙과 엄격한 규율로 버텨나간다. 약 70년 전이기에 지금 보기엔 너무 숨막히고 오히려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지배층의 권위와 권력이 매우 막강해 소위 '갑(甲)질'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신념에 맞춰 행동하지만, 이 신념이 옳고 그른지 판단은 제대로 되지 않은 채라 문제다.

아비게일과 소녀들은 춤 춘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작은 거짓말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간다. 그러나, 그동안 누군가의 하녀로만 일해야 했던 이들이 법원 안에서 권력자가 되면서 그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 자신들의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억압당했던 과거를 보상받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무대 위 배우들이 악마를 보았다며 소리 지르고 몸을 뒤집고 꺾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진짜 악마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어째서 이들의 증언에 대한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않을까. 소녀들 중 한 명이자 존 프락터의 하녀인 메어리가 진실을 알리려고 증언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마녀로 몰리자 결국 거짓말에 동참하게 된다. "고발하는 자는 왜 의심하지 않는 건가요"라는 존 프락터의 외침은 그저 공허히 흩어질 뿐이다.

연극 '시련' 공연 장면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무대는 침대 하나 혹은 테이블 하나 등 매우 단순하고 차갑고 건조한 느낌이다. 그러나 배우들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존 프락터'의 김재범, '존 헤일 목사'의 박정복, '메어리' 역 심서율의 몸 사리지 않는 연기가 눈에 띈다. 공연은 160여 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배우들의 열연에 비현실적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한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광고 카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소신과 용기를 뜻했던 이 행동이 세일럼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집단적 광기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만이라도 살기 위해 거짓에 동참할 것인지, 올바른 신념과 가치를 위해 끝까지 진실을 말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시련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연극 '시련'은 오는 3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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