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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아버지' 방시혁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2가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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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더 생동감 있는 이야기 전달해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방탄소년단의 아버지’ 방시혁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가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73회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있다. 2019.02.26 pangbin@newspim.com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방시혁은 애초에 서울대에 전달한 축사 전문보다 인생사 등이 담긴 더 많은 이야기를 졸업식 현장에서 쏟아 냈다.

이에 방시혁이 처음에 서울대에 전달한 축사(전문 1)와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실제 축사(전문 2) 등 2개 모두를 소개한다.

<전문 1>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음악프로듀서인 방시혁입니다. 오늘 추운 날씨에도 졸업식장을 가득 메운 여러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한들 지루한 ‘꼰대의 이야기’가 될 게 뻔하고, 삐딱하게 보려면 방탄소년단이 성공했다고 잘난 척 하는 걸로 비칠 수 있어서 말이죠. 

그런데 요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방탄소년단이 핫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랑도 좀 하고, 제 삶의 여정에서 여러분과 맞닿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학력고사 세대인 저는 법대를 가고 싶었지만 뭔가 쿨할 것처럼 보였던 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부터 직업프로듀서의 삶을 시작해 JYP에서 일하다, 독립해 지금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음악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큰 그름일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어쨌든 저는 지금 꽤나 성공했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연속 톱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매진시켰습니다. 불과 2주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도 시상자로 초청받아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우며 과분하게도 유튜브 시대의 비틀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인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아직 공식 데뷔 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커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축사에서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면서 오늘의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 즉 분노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화를 많이 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분노하는 방시혁이었습니다. 적당히 일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타협없이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달려왔습니다. 제가 태생적으로 그런 사람이기도 했지만 음악으로 위로를 받고 감동을 느끼는 팬들과의 약속,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약속이었기에 그래왔습니다.

그렇게 음악 산업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달려오는 동안에도 제게는 분노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앗습니다. 이 산업이 처한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았고 저는 그것들에 분노하고 불행했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18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등.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단적으로, 여러분도 “게임회사는 가더라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든 낙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의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이라는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불립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선사하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없는 익명의 비난에 절망합니다. 우리 피,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는 부당하게 유통돼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행복과 음악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꼰대들에게 지적할 거고, 어느 순간 제가 꼰대가 돼 있다면 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엄하게 스스로를 꾸짖을 겁니다.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싸워서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산업이 상식이 통하는 동네가 되어 간다면 한단계 한단계 변화가 체감될 때마다 저는 행복을 느낄겁니다. 분노의 화신인 제가 행복을 이야기하니 모순처럼 들리죠. 그러나 저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 덧붙여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낼 때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듯한 샤워로 달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겁니다.

누구에게 취업걱정 노후걱정없느 공무원의 삶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포브스에 나오는 전 세계 몇 대 부자들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누려야 행복한 사람은 당연히 명예와 권세를 좇아야 겠지요. 문제는 자신이 정의한 것이 아닌 남이 만들어 놓은 목표와 꿈을 무작정 따르고 그래서 결국은 좌절하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리듬, 여러분의 스웩이 아닙니다.

사회에 나가면서 여러분이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 무엇이든, 앞으로의 여정에는 무수한 부조리와 몰상식이 존재할 겁니다. 이런 부조리와 몰상식이 행복을 좇는 여러분의 노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분노의 화신 방시혁처럼 여러분도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변화합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달려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싸움꾼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두서 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모두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살아왔구나 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분노의 화신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감"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콘텐츠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잘 찾아서 여러분다운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문 2>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 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 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미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하면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어떤 열정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 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라고 반 협박조로 (대응해)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결정들, 훗날 보면 의미 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큰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 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YouTube 시대의 비틀즈’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 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 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 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의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 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 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다란 꿈을 향해 끊임 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 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K-Pop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 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 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 한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 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 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 세상에 대해 끊임 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 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시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 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잘 찾아서, 여러분다운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unj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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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의원, 英 집권 노동당 새 대표로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의원이 17일(현지 시각)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에 올랐다.  버넘 대표는 오는 20일 키어 스타머 총리를 이어 영국의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고 버넘 의원을 당 대표로 공식 선출했다. 버넘은 전날 마감된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에서 단독으로 등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동당 공보에 따르면 버넘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379명과 노동조합·사회주의 단체 23곳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했다. 현재 노동당은 전체 의석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94%가 버넘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노동당 새 대표가 17일(현지 시각) 특별 당대화에서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의 새 대표 선출 결과 발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버넘은 일성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를 지지한 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영국 곳곳의 잊혀진 지역을 위해 과거의 노동당을 되찾아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하나로 뭉쳤고, 그 힘을 오랫동안 정치로부터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지역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 가지 변화와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노당동의 단결을 위해 '파벌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했고, "이번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비난보다 문제 해결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영국 정치가 덜 독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세번째 변화로는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을 거론하며 노동당답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처럼 행동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국개혁당(Reform UK)보다 더 개혁당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 옷을 너무 많이 입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진정한 노동당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네 번째 약속이고, 중앙정부가 독접하고 있는 권한을 웨스트민스터와 화이트홀에서 지역 사회로 되돌려주는 지방분권이 다섯 번째 약속이라고 했다.  버넘 대표는 자신이 친기업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시절 친기업적인 시장이었듯이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도 친기업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과 함께 지역을 되살렸고 그 방식을 영국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1970년 1월 리버풀 북쪽 교외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맨체스트의 리(Leigh)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내무부·재무부 차관, 문화장관, 보건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5년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에서 패했다.  2017년 중앙정치를 떠나 새로 만들어진 그레이터맨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과 2024년 선거에서도 내리 승리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버스 공영화를 추진하고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과 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에 맞서 북부 지역 지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때부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버넘 시장 재임 시절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버넘 대표는 당 대회 연설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며칠은 영국을 누가 통치하느냐만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영국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릴 기회"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현 스타머 총리보다 더욱 왼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택과 교통, 교육 등과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해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장한다.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둬 중앙정부와 효율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북부 총리실(No. 10 North)' 구상도 밝혔다.  ihjang67@newspim.com   2026-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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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AI카타고에 제1국 불계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두 점을 먼저 놓고 시작했어도 인공지능(AI)의 벽은 높았다.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이 바둑 AI 카타고(KataGo)와의 첫 맞대결에서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신진서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카타고와의 '쎈수학·한경 기신전' 3번기 제1국에서 4시간 20분의 혈투 끝에 245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이번 대국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인간과 AI의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AI의 기력을 고려해 이번에는 신진서가 2점을 먼저 까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카타고는 첫 수부터 흔들기에 나섰다. 좌상귀 화점에 첫 수를 놓는 변칙수로 신진서의 초반 포석 구상을 깨뜨렸다. 이어 우상귀 쪽에도 높은 걸침 수를 두며 변칙 전술을 이어갔다. 신진서는 전투를 피하고 잔잔하게 국면을 이끌며 중반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AI 챗GPT가 제작한 AI '카타고(KataGo)'와 신진서 9단 기신전(棋神戰) 3번기 일러스트] psoq1337@newspim.com 100수를 넘어서면서 승부처가 나왔다. 미세하게 격차가 좁혀지자 신진서는 백 대마를 잡기 위해 중앙에 승부수를 던졌다. 사람을 상대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카타고는 완벽한 계산으로 이를 가뿐하게 타개해 냈다. 112수째에 이르러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역전을 허용한 신진서가 다시 전투를 걸었으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신진서는 다음 대국을 대비해 30분 가까이 끝내기를 이어가며 카타고를 분석했다. 단 한 차례의 실수도 범하지 않고 버텼지만, 30집 가까이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신진서는 돌을 던졌고 대국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쎈수학·한경 기신전'은 승패와 관계없이 3국까지 치러진다. 신진서는 기본 대국료 1억 5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승리할 때마다 5000만 원의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2승 이상을 거둘 경우 제네시스 G90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설욕을 노리는 신진서의 제2국은 오는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psoq1337@newspim.com 2026-07-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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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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