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 동명 소설 원작
'모모'와 '로자' 관계 통해 따뜻한 인간애 전달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어린 시절부터 꿈을 강요받고 앞날을 걱정하며 살아왔건만, 정작 바로 앞의 내 삶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거창한 목표나 화려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그게 바로 온전한 생은 아닐까. "사람은 사랑할 누군가가 없이는 살 수 없대요"라는 말처럼.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연극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 작가 겸 배우 자비에 베이야르의 각색을 통해 2007년 초연됐다. 국립극단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오갈 데 없는 아이를 거둬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 소설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가 필명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작품이다. 로맹 가리는 소설가로서 성공적 행보를 걸었지만 평론가들의 극심한 비판에 심적 고통을 시달렸다. 때문에 필명을 통해 편견에 갇힌 사람들에게 통쾌한 일침을 날렸다. 로맹 가리 내면에 쌓였을 고통 혹은 분노가 작품 속에서는 너무나도 따스하게, 햇살이 비치는 잔잔한 수면처럼 펼쳐져 놀라울 따름이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공연은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작품의 배경인 파리 슬럼가의 아파트 내부를 단순하지만 원목의 느낌을 살려 따뜻하게 구현했다. 원작에는 다양한 아이들과 주변인이 등장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오롯이 '로자'와 '모모'의 관계에 집중한다. 종교도, 인종도, 세대도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통해 이해타산적 관계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한다.
'모모'는 10세인 줄 알았던 14세 소년으로, 세상의 모든 것에 통달한 듯 어른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안락사를 '낙태'라고 알 정도로 어린 아이다. 그는 자신을 돌봐준 '로자'에 대해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로부터 지켜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로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할머니로,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며 그들이 보내는 양육비로 생활한다. 물론 돈은 못 받을 때가 더 많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두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에 밑바닥 인생 같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이유도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혹여나 떠나갈까, 서로를 잃을까 불안한 마음과 과거의 상처가 뒤섞여 서로 '안 그런 척' 하는 모습은 오히려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이들의 모습은 잊어버린 인간애를 돌아보게 하고 깊은 울림을 안긴다.
'로자' 역은 배우 양희경과 제55회 동아연극상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국립극단 시즌단원 이수미가 번갈아 맡는다. 양희경의 '로자'는 조금 더 천진하고 연약하다면, 이수미의 '로자'는 거친 세월을 이겨낸 강인함과 그 속의 부드러움이 드러난다. '모모' 역을 맡은 오정택은 너무 어리거나 슬프거나 귀엽지만은 않은,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잘 표현해낸다. 이 외에도 '카츠 의사' 역에 정원조, '유세프 카디르' 역에 김한이 출연한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극중 로자는 모모에게 "행복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줘야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돌려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서로를 기쁘게 해줘서 서로에게 행복을 전해준 두 사람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사랑해주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어떨까.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오는 3월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