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기획탐사 기획

속보

더보기

[못다부른 만세]② 기억 저편의 3·1운동, 잊히는 아픔의 역사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편집자주]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은 이후 민족적 독립운동의 근본이 됐고 대한민국 건국의 원천이 됐다.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이라는 3·1 정신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유구히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고 식민 잔재는 여전히 곳곳에 스며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 선조들이 '못다부른 만세'는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내 나라 내 땅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 것이 무엇이 죄요? 오히려 죄 없는 사람을 침략하고 강제로 억압하는 당신들이 죄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18세 소녀 유관순이 재판장에서 한 진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망설임 없이 학교 담장을 뛰쳐나가 독립만세를 외쳤던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은 휴교령에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직접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유관순 수감기록 카드 [사진=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음력 3월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에서 3000명의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때 부모님이 총살당한 것을 비롯해 유관순은 수차례 비극적인 순간과 마주했다. 100가지가 넘는 고문과 고생스러운 옥살이에도 유관순 열사의 꺾이지 않았던 자주독립의 신념은 100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유관순 열사 뿐 아니라 수많은 무명의 지사(志士)들이 독립을 위해 힘써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이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보급 유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올해 초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대한콜랙숀' 전시회에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3·1절'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 '삼점일'로 읽는 사람도 있다더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100년 전 독립을 꿈꾼 선열들의 참뜻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시점이다.

◆ 민족자결주의 도래…독립선언과 만세운동

3.1독립선언서 [사진=민족문화연구소]

1919년 종로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국내외 상황은 어수선했다. 국제적으로는 '민족자결주의'가 제기되면서 만주와 상해, 미국 등에서 한국의 자주수호를 열망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본 유학생들은 1919년 "우리는 민족 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할 것을 청구한다"는 내용으로 2·8독립선언을 외쳤다. 이는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과도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종교계(천도교인 15명, 기독교인 16명, 불교인 2명)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민족대표 33인이 결성돼 독립운동의 불씨가 켜졌다. 민족대표들은 대한독립을 위해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비밀리에 전국으로 배포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종교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붕어는 민중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조시켰다.

애초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만세운동을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민중이 몰려 유혈 충돌을 우려해 계획을 바꿔 태화관으로 장소를 바꿨다. 이날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무렵 탑골공원에는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의 남녀학생 4000~5000명이 모였다. 이들은 강기덕과 김원벽 등 학생의 연락을 받고 집결해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족대표가 나타나지 않자 오후 2시 한 청년이 팔각정으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낭독이 끝나자 학생들은 쓰고 있던 모자를 하늘로 향해 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이 바로 독립만세 운동의 첫 불씨였다. 학생이 중심이었던 만세운동은 상인과 평범한 시민들로 이어지며 약 두 달간 전국적인 만세 운동으로 번졌다.

◆ 해외까지 퍼진 민족운동…비폭력 시위, 대규모 참상

3·1운동은 자주 국권 수호를 위해 국민들이 스스로 일으킨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다. 3월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4일 평안남도 강서, 16일 경상남도 합천 등 전국 8도와 만주, 연해주,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이국 땅까지 확산됐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그해 4월까지 두 달동안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의 집회 횟수는 1542회, 참가 인원은 202만명을 훌쩍 넘었다. 만세운동으로 일본군에 체포된 사람은 4만7000명에 육박했고 불에 탄 민가와 교회는 700여 채에 달했다. 두 달간 독립만세운동으로 사망한 국민은 7509명, 부상자 수는 1만5961명이었다. 이는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때 사망·실종자(2만명)에 버금가는 수치다.

3·1운동이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이유는 대중적인 운동이면서 비폭력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총과 칼 없이 맨몸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때문에 희생 규모가 컸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만세운동은 맨손 시위였다. 전국 각지에서, 장날에 만세시위가 일어난 현장에서 일본군과 헌병군은 민간인들을 총으로 쐈다"고 말했다.

민간인들의 참혹한 죽음은 4월15일 오후 2시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일어난 '제암리 학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30여 명이 총살당했다. 앞서 화성 시민들은 장날을 맞아 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만세운동은 송산지역(3월28일), 향남지역(3월31일), 장안·우정지역(4월3일)에서 이어졌고 일본군은 예고 없이 들이 닥쳐 주민 46명을 사살, 400여명을 연행해 고문을 가했다.

이에 주민들은 봉하 시위와 일본순사를 처단하는 등 공격적인 시위를 벌였다. 4월15일 일본 특별검거단은 "심한 매질을 한 것을 사과하러 왔으니 교회에 모이라"고 한다. 대상은 15세 이상의 남자였다. 교회로 오지 않은 만세운동 주도자들을 일부러 끌어오기까지 했다. 미리 파악한 만세운동 주도자들이 다 모이자 일본군은 교회 문을 폐쇄 하고 이들을 총살했다. 그리고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제암리 주민이었던 전동례 할머니는 사건이 일어난 지 63년 만인 1982년,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할머니는 "그 이튿날까지 여기서 30리 밖까지 재가 날아가고 송장 탄내가 났다"고 기억했다.

◆ 간도·자유시참변, 무참히 짓밟힌 독립지사들

간도참변으로도 불리는 경신참변도 독립군이 아닌 민간인이 대규모로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들은 그 지역에 살던 무고한 한국인들이 목숨을 앗아갔다. 1920년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무려 7개월간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어졌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1만여명이 죽고 민가 2500여채, 학교 30여채가 불탔다.

자유시참변(1921년 6월28일)도 역사적으로 묻힐 수 없는 아픔이다. 이는 독립군이 총과 탱크 등 무기를 무장한 러시아군대로부터 사살 당한 사건이다.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소련은 일본과 어업조약으로 무기와 식량을 획득했고 일본이 요구한 독립군 활동 중지를 받아들였다. 결국 1921년 6월28일, 소련은 한국독립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자유시참변 당시 희생자수는 사료마다 다르다. '재로고려혁명군대 연혁'에는 사망 36명, 포로 864명, 행방불명 59명으로 기록돼 있다. '간도지방 한국독립단의 성토문'에 따르면 자유시참변 사망자는 272명이었으며 250명이 행방불명됐고 포로는 917명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1000~1500명이 희생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병기 대한민국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박사는 "학자마다 학설이 다 다르지만 2500명 정도의 독립군이 자유시로 이동했다. 서로 2000명 규모의 군대를 탐을 내다 군권쟁탈전에서 희생됐다"며 "강에 빠진 사람, 사살된 사람이 몇 백명, 포로가 된 사람이 800~900명, 장교도 70~80명 잡혀갔다고 기록돼 있는데 1000~1500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집계된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아픔의 역사를 모르나

한국 광복군 서명 [사진=문화재청]

이처럼 독립운동 시기의 우리 국민의 피해 규모는 정확히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근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당사자도 없고 기록도 희박한 상황이어서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은 일제시대, 근대시대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35년간의 일제시대의 정확한 역사 기록이 부족한 것은 이미 사회, 정치, 경제의 핵심 분야와 인물 등에 일제의 잔재가 깔려 있는 것도 한 이유다.

김 박사는 "광복 후 70년 친일 청산이 아직 안됐다"며 "역사적 사실을 책에도 교과서에도 정리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대학에서 독립운동사 연구가 시작됐다. 해방은 1948년에 됐는데 왜 뒤늦게 연구를 시작했겠느냐"며 "그때는 이미 현장 당사자들은 다 돌아가시고 그 기록을 정확하게 남길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정권에서도 역사 기록, 교육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번 정권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군대 생활 33년만에 대령으로 제대했지만 군시절 6·25 전쟁 외에 한국의 전쟁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변 이사장은 "세계대전 등 해외 전쟁 역사는 교육해도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 교육은 없었다. 임진왜란도 청일전쟁에 대해서도 배운적이 없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이 소장은 국민들이 3·1운동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이유가 역사계에 뿌리박힌 식민사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아직까지 식민사학이라 불리는 조선총독부 관점으로 보고 있다. 아직까지도 식민사관의 후예들이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어서 한국 역사는 일본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89hklee@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30대女, 철원 민통선 넘어 GOP 철책 끊었다고?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강원도 철원에서 30대 여성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넘어 최전방 일반전초(GOP) 철책까지 접근해 광망(철조망 감지 센서)을 절단했다가 군에 붙잡혔다. 민통선 진입 이후 약 20시간 동안 군 감시망은 이 여성의 이동을 추가로 포착하지 못했다. 합동참모본부는 26일 "우리 군은 전날(25일) 강원도 철원군 GOP 이남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 군 경계시설물에 무단 접근한 미상 인원의 신병을 확보해 관계기관과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국방부 등 종합감사에서 진영승 합동참모의장에게 철원 민통선 무단 진입 사건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화면 캡처] 2026.10.26 gomsi@newspim.com 합참에 따르면, 이 여성은 24일 오후 철원 지역 민통선 이북으로 무단 진입했다. 이후 계속 북상해 25일 오전 GOP 철책에 접근, 광망을 절단했다. 군과 관계기관의 합동조사 결과 현재까지 대공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안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24일 키 158㎝밖에 안 되는 30대 여성에게 우리 GOP가 뚫린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민통선을 통과해 들어온 것"이라고 답하자, 성 의원은 "그게 뚫린 것"이라고 질책했다. 강 장관은 "GOP 광망이 절단된 걸 아느냐"는 질의에 "보고받았다"고 했다. 성 의원은 24일 오후부터 25일 오전까지 20여 시간 동안 이 여성이 폐쇄회로(CC) TV에 식별되지 않은 이유도 따져 물었다. 진영승 합참의장은 "토요일(24일) 오후 민통선 지역에서 인원을 확인했고, 신병 확보 작전 중에는 추가로 CCTV에 탐지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gomsi@newspim.com 2026-10-26 11:53
사진
SK하이닉스, 추가 주주환원 28일 발표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SK하이닉스가 오는 28일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추가 주주환원 정책을 공개한다. 분기 영업이익이 7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가가 고점 대비 절반 이상 하락하면서 대규모 이익을 주주에게 얼마나 돌려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 투자 차익을 활용한 특별배당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6일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이사회 결의를 거쳐 오는 28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키옥시아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투자 차익의 활용 여부가 주요 관심사다. 앞서 SK하이닉스가 약 20조원으로 추산되는 키옥시아 투자 차익 가운데 16조원 가량을 특별배당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 [사진 = 뉴스핌DB]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기대감은 역대 최대 실적 전망과 맞물려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98조2257억원, 76조964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76% 증가한 수준이다.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와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이 실적 개선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주가는 최근 가파른 조정을 받았다. 지난 23일 SK하이닉스 주가는 127만7000원에 거래를 마쳐 종가 기준 고점 대비 약 56% 하락했다.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와 외국인 매도세 등이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1일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당초 계획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 마쳤다. 취득한 주식은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회사는 앞서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의 손실이 커지는 상황에서 임직원들에게는 역대급 성과급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만큼 내년 직원 1인당 수억원대 성과급이 지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주가는 고점 대비 절반 이상 하락하면서 실적 개선의 성과를 주주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주주환원 정책이 임직원 보상과 주주 이익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주주환원을 병행하기 위한 재원 운용도 과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낸드플래시 자회사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했다. 외부 자본 유치 대신 자체 자금을 활용한 투자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번 발표에서 향후 투자와 주주환원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도 관심이 모인다. syu@newspim.com 2026-10-26 10:38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