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점 주택가, 골목까지 퍼져... '무분별한 입점'엔 갸우뚱
성인용품 시장 성장세지만 국내는 '규모 파악' 어려워
[편집자주]어둡고 컴컴한 지하에서 1층 통유리 매장으로. 젊음의 거리 곳곳에는 성인용품점이 번지고 있다. 카페 또는 갤러리 같은 외관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세대가 바뀌며 성 의식이 변화한 결과다. '부끄러운 성'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 속도는 경제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성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그 과정을 들여다봤다.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성인용품점이 우후죽순 생기며 공공의 생활공간인 주택가에도 들어서고 있다. 성인용품점의 양지화는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다지만 과도한 확장이라는 지적도 적잖다.
◆골목 파고든 성인용품점에... “애들 볼까 민망해”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어린이집 대각선 방향으로 성인용품점이 생긴 이후다. 겉보기엔 카페지만 큰 창과 쉬폰 커튼 너머로 보이는 안쪽에는 성인용품이 진열돼 있다. A씨는 "혹시라도 아이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까 걱정"이라고 했다.
해당 성인용품점은 여성용 성 기구를 파는 곳으로, 커피와 술을 파는 카페이기도 했다. 주택가 반 지하에 들어서 6세 미만 아이들 눈높이에는 그저 예쁘고 신기한 가게로 보일 법 했다. A씨는 “구청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어린이보호구역에 해당하는 어린이집이 아니라는 응답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골목가에 들어선 한 성인용품점. zunii@newspim.com [사진=김준희 기자] |
지난해 12월 마포구청에도 비슷한 민원이 올라왔다. 민원인은 “주택가에 입점한 성인용품점 안이 훤히 보이는데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해달라는 민원이 묵살당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구청은 건축법상 성인용품점이 윤락시설이 아니라 입점을 제한할 수 없으며 관리대상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업종 분류상 성인용품점은 기타 업종 중에서도 ‘그 외 기타 분류 안 된 상품 전문 소매업’이다. 건축법상 유흥주점 등이 속하는 위락시설에 해당하지 않아 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 입점해도 관리·감독할 대상이 없다.
현행법은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오락실, 특수목욕탕 등을 퇴폐조장 시설로 분류해 주택가 입점을 제한하고 있다. 건축허가 규제를 적용함으로써 인근 주민의 주거환경과 교육환경을 충실히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관련 입법 부재로 성인용품점은 ‘프리 패스권’을 쥔 셈이다.
◆세계 성인용품시장 성장세... 국내는 업체 수 파악도 어려워
실제로 국내 성인용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홍대와 이태원 등 젊음의 거리로 나서면 매년 증가하는 다양한 성인용품점을 체감할 수 있다. 성인용품점 업계 1위 레드컨테이너는 2017년 1월 이태원에 1호점을 세운 이후 2년 새 점포를 17호점까지 늘렸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온라인을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입소문’으로 매장을 찾는 요즘 젊은층의 소비 성향 덕에 성인용품점은 번화가에서 다소 벗어난 주택가 골목까지 파고들었다.
성인용품시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확장 추세다. 글로벌 통계 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틱 브래인은 2015년 세계 성인용품시장의 규모를 208억 달러(약 23조원)로 집계했고, 2020년 규모를 290억 달러(약 33조원)로 내다봤다.
미국의 유력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2020년까지 전 세계 성인용품시장이 520억 달러(약 58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국내 성인용품 시장은 규모 파악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콘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용품 시장도 이미 1조원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중 양성화된 규모로 추정되는 것만 2000억~3000억 원 정도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사업체 규모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통계청 관계자는 “성인용품 소매는 기타 업종으로 통합 집계돼 업체 수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청소년엔 유해... “주택가 입점 등은 제한 필요”
박모(32·남)씨는 최근 저녁 시간대 영화를 보러 부산의 한 복합쇼핑을 찾았다가 처음 성 기구를 접해봤다. 인적이 드문 틈을 타 텅 빈 무인 성인용품점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구는 두 개로 모두 전면 유리였다. 매장 중앙에는 체험해볼 수 있는 성 기구 샘플들이 놓여 있었다.
박씨는 “구매까지 자판기로 할 수 있는 무인이라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며 “19세 미만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기는 한데 청소년들의 출입까지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인용품 업종의 관리·관독 부재로 가장 피해를 입는 대상은 청소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바른 성 생활에 대한 지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성인용품 수용은 잘못된 성 인식을 갖게 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인용품은 청소년보호법상 유해 물품인데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성 충동과 성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며 “건축법상 규제뿐만 아니라 청소년 출입 규제를 위한 관리감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성인용품점. zunii@newspim.com [사진=김준희 기자] |
성인용품 시장이 청소년들의 일상 공간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또 주거지역인 골목길에 무분별하게 들어서지 않도록 성인용품점을 윤락시설로 지정하자는 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발의됐다.
건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청소년, 유아 등이 전시·진열된 성인용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올바른 자아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다”며 “미국 등이 주거지에서의 성인용품 판매점 영업을 금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주택 밀집지역에서 입점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