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담은 한일 합의가 오늘(28일)로 3년째를 맞이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라고 28일 아사히신문과 NHK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합의에 근거해 설립된 '화해·치유 재단'이 지난달 해산된 데다 강제 징용 판결과 한일 방위 당국 간 '사격통제 레이더' 논란이 겹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NHK도 "한일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되면서 합의 이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6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2018.12.05 mironj19@newspim.com |
지난 26일 주한 일본대사관 근처에는 위안부 '수요집회'가 열렸다. 중학생들을 포함한 약 500명의 시민이 "한국정부는 (일본이 낸) 10억엔을 되돌려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선 올해 돌아가신 8명의 위안부 피해자의 삶이 소개됐다.
아사히신문은 "이 중 일부는 화해·치유재단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지만 집회에선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합의 당시 생존했던 47명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재단으로부터 돈을 지급받은 이는 34명이다. 신문은 "하지만 한국 언론에는 소개된 경우가 적다"라고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5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 이뤄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와 반성"이 명문화돼 합의 당시엔 한국에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합의 직후 이뤄진 한 여론조사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43%였다.
하지만 2017년 3월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합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선거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후보가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주장했다.
한일관계론을 전공한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평가와 합의는 별개여야 하지만, (합의도) 함께 비판을 받으면서 '실정'이라는 평가가 붙었다"며 "일본에서도 '10억엔을 지불해서 문제를 끝냈다'는 등 진의를 의심케하는 발언이 나오며, 한국 여론을 자극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한일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해 재협상 방침을 전환했지만 되레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신문은 "한국 정부가 지난달 일본 정부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화해·치유 재단 해산을 서두른 건 지지층에 대한 배려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현재 일본이 낸 10억엔 가운데 재단이 쓰고 남은 4억엔을 어떻게 처리할 지도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이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취재에서 "일본은 합의 이행만 요구하면 된다"고 답했다.
NHK에 따르면 지난 24일 서울에서 열린 외교당국자 국장급 협의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 징용판결·레이더 문제…얼어붙는 한일관계
최근엔 위안부 문제 외에도 한일 간에 상충하는 현안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지난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판결이다.
한국 정부는 "대응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첫 확정판결이 나온 지 2개월이 지나도 일본에 특정한 일정이나 방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
사격통제 레이더 조준 논란도 한일 간 외교문제로 번지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한국 광개토대왕함이 지난 20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에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했다며 항의했다. 한국 측은 광학 카메라를 켠 것이지,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한 적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의 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신문 취재에서 문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더욱 냉각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일본 전문가가 없는 청와대가 중요한 외교정책을 결정하면서,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지지율이나 시민단체 반응에 신경써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국의 외교 전문가는 "한일 합의와 연관됐던 전문가들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국 젊은 외교관 사이에선 대일관계와 관련된 일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신문은 "현 시점에선 한일 정부 사이에서 외교부 장관 간 왕래나 정상 간 왕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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