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구루들 디폴트 경고..1997년 아시아 위기 재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파키스탄과 터키를 중심으로 신흥국 위기 상황이 날로 악화되면서 월가가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보이고 있다.
신흥국 채권의 디폴트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신용부도스왑(CDS) 거래가 급증했고, 터키를 포함한 일부 국가의 CDS 프리미엄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터키 리라화 [사진=블룸버그] |
채권 구루들 사이에는 파키스탄부터 중국까지 회사채 디폴트가 급증, 과거 1997년 아시아 위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번지고 있다.
2일(현지시각) 시장조사 업체 EMTA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신흥국 CDS 거래 규모가 468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9.3% 급증한 수치다. 이에 따라 신흥국 투자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CDS 거래 규모는 미국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특히 터키와 멕시코, 브라질 CDS에 트레이더들이 몰려들었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터키 채권에 대한 5년 만기 CDS 가격이 이날 장중 16bp(1bp=0.01%포인트) 치솟으며 346bp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2년 1월 이후 6년 6개월래 최고치에 해당한다.
상황은 그 밖에 주요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극심한 무역 마찰 속에 중국 CDS도 최근 64bp까지 뛰었다. 이에 따라 프리미엄은 한국 CDS보다 20bp 가량 웃도는 상황이다. 중국의 투자 리스크가 한국보다 높아졌다는 의미다.
멕시코의 CDS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불확실성 및 페소화 하락, 성장률 둔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난 6월 CDS 가격이 20개월래 최고치로 뛴 이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상황은 투자자들 사이에 신흥국의 위기 경고가 쏟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위협이 현실화되자 터키 리라화는 달러화에 대해 장중 1.7% 급락했다. 달러/리라 환율은 4.996리라까지 상승, 리라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밀렸다.
가뜩이나 두 자릿수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이 더욱 악화되는 한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미국의 강경한 무역 정책에 중국 위안화 역시 달러화에 추가 하락, 13개월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도이체방크를 포함한 투자은행(IB) 업계는 달러/위안 환율이 연말 7.0위안까지 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키스탄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극심한 재정난에 파키스탄 정부는 구제금융 요청에 앞서 국영 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자구책 시행에 나섰지만 미국이 반기를 들고 있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하다.
신흥국의 파열음이 그치지 않자 채권 구루들은 대규모 디폴트 사태에 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및 신흥국 현지 통화 하락, 여기에 무역 마찰에 따른 경기 하강이 맞물리면서 내년부터 2020년까지 디폴트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카암 캐피탈의 압둘 카디르 후세인 채권 헤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신용시장 여건이 급변하고 있다”며 “장기 저금리에 기대 시장에 쏟아진 신흥국 채권이 연이어 디폴트를 내면서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위기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