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 늘리려는 고육책이나 인위적 희망퇴직 유감
[서울=뉴스핌] 문형민 금융부장 =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에 현직이면 도둑놈). 외환위기을 맞아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인원 감축 광풍이 몰아칠 때 유행했던 우울한 단어들이다.
20년이 지나 다시 이 단어들이 회자되고 있다. '좋은 직장'으로 손꼽히는 은행에서 그렇다. 고객들이 모바일 인터넷 등 비대면 거래를 늘리자 은행은 지점을 통폐합하고, 인원을 줄이고 있어서다.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게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만 55세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되면 10명 중 9명이 은행을 그만둔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고령자고용법')상 정년은 60세지만, 사실상 정년은 55세인 셈이다. 은행은 그에 앞서 떠날 기회를 준다. 즉, 3년치(36개월) 이상의 급여를 희망퇴직자에게 제시한다. 일부 은행은 '만 40세(1978년생) 이상'을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로 확대했다. 40대 중반~50대 초반으로 정년이 단축되는 셈이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직원(임원 무기계약직 별정직 제외) 수는 2015년말 6만3824명에서 2016년말 6만1602명으로, 지난해말 5만6905명으로 줄었다. 2년새 약 7000명을 감원했다. 이는 외환위기 시절과 비교되는 수준이다. 1999년말 9만7236명이었던 은행 직원은 2001년말 8만9183명으로 정리됐다. 2년새 8000명 가량이다. 당시 33개에 달하던 은행이 18개로 통폐합됐다.
은행이 인원을 줄일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협조 요청이다. 그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눈치 보지 말고 퇴직금을 올리는 것을 권장하고 인센티브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8일에도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년들의 취업난을 감안할 때 최 위원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우선 오는 7월부터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다. 희망퇴직 규모를 늘리다 자칫 인력 부족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또 신규 채용이 퇴직자만큼 이뤄지지 않아 전체 고용은 악화된다. 최 위원장도 얘기했듯 은행이 10명 퇴직할 때 7명만 채용한다. 중·장년층의 고용 안정성이 악화된다. 은행마다 재취업을 할 수 있게 교육하고, 일자리를 알선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 효과는 부족하다. 신입 직원이 현장에 투입돼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 2~3년 교육을 받아야한다. 은행 입장에선 효율성 저하를 걱정해야한다. 노조의 거센 반발도 감안해야 한다.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도 있다. 감원은 어디까지나 고정비 지출을 아끼자는 궁여지책일 뿐이고, 성장성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거다. 지금 은행 산업은 비대면거래 이후 다가올 첨단 IT금융시장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핀테크 디지털금융이 화두로 떠오른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은행이 내놓은 다양한 IT서비스는 은행원의 업무를 대체하는 조회업무와 단순거래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사이 중국의 알리페이, 위챗페이, 미국의 페이팔 등은 은행의 영역을 침범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이미 1994년에 "은행 기능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은행의 희망퇴직은 은행에 맡겨두는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은행이 자발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안을 금융당국 수장이 나서서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 어떻게 혁신하고, 성장할 지 고민하는 게 금융위원장의 할 일이다.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