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反 EU 각료에 거부권…총리 지명자 사퇴
조기 총선 가능성…오성운동 "대통령 탄핵해야"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이탈리아가 전례없는 정치 위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총선 이후 약 11주간의 무정부 상태를 끝내고 연정 구성에 합의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정당 '동맹'이 정부 구성을 포기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양당 지도부가 추대한 재정경제 장관 후보를 거절한 데 따른 것이다.
사퇴 의사 밝힌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지명자 [사진= 로이터 뉴스핌] |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로이터통신·유로뉴스에 따르면 오성운동과 동맹이 천거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지명자는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과 만난 뒤 양당이 합의한 내각 명단을 제출했으나 대통령이 재정경제장관 후보를 거부해 정부 구성권을 반납했다며 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가 헌정 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법학과 교수 출신인 콘테 총리 후보자는 연정 구성 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의 합의로 총리 후보에 추대됐다. 대통령 승인을 받아 23일부터 내각 구성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에 따라 약 11주에 걸친 이탈리아의 무정부 상태도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3월 4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은 정당이 나오지 않아 연정 구성을 위한 작업이 진행돼왔다.
하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회의적인 재정경제장관 후보 파올로 사보나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정부 구성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사보나는 반복해서 유로화 탈퇴를 주장해왔고 유럽에서의 독일의 지배력에 대해 비판해왔던 인물이다.
같은 날 마타렐라 대통령은 대통령 궁에서 기자들에게 "재정경제장관을 제외하고 모든 장관에 동의했다"며 "나는 유로화 탈퇴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인물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몇몇 정치 세력이 나에게 선거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회의 상황 전개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은 카를로 코타렐리 전 국제통화기금(IMF) 집행이사를 호출했다.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는 코타렐리가 이탈리아가 조기 총선에 돌입하기 전에 과도 정부를 구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총선이 치러지기까지 코타렐리 전 이사를 중심으로 소위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나 초당파 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 "조기 총선, 포퓰리즘 정서 더 일으킬 것"
하지만 양당 대표는 이에 대한 의회의 신임 투표가 진행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마에 위치한 루이스대학교의 로사마리아 비테티 공공정책 강사는 "마타렐라의 선택은 위험을 지연했지만 차기 선거에서는 더 강력한 포퓰리즘 정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사람들이 (원하는) 정당들에 투표를 했는데, 왜 자신들의 정부를 가질 수 없는지 설명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헀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정부 구성 논의를 중단한 가운데 오성운동은 마타렐라 대통령의 탄핵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성운동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는 RAI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재정경제장관 후보를 거부했기 때문에 국가를 저버린 이유로 탄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살비니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 "우리는 이탈리아 시민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부 탄생을 보장키 위해 밤낮으로 몇주 동안 일했다"며 하지만 누군가의 압력을 받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싫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디 마이오 대표는 신용평가 회사들이 내각 구성을 무산시켰다고 비난했다. 지난 25일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연립 정부의 정책 으로 이탈리아의 재무 건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어 이탈리아의 신용 등급 강등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양당 지도부가 주도한 연정 구성 계획안에는 EU의 재정 규정을 위협하는 재정 팽창과 감세 조치들이 담겨 있어 EU 회원국 사이에서 논란을 샀다.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