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독창이 아닌 합창, 오너이자 전문경영인 될 것
열등감을 자신감으로...타고난 성실맨
[서울=뉴스핌] 김승동 기자 = 말라도 지독하게 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남자아이 몸무게가 23㎏에 불과했다. 별명도 ‘깨비’다. 성냥개비처럼 보인다는 의미였다. 목소리도 여자아이처럼 하이톤이었고 작았다. 음악 시간이나 오락 시간에 그가 노래를 부르면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다. 그랬던 그가 대학에 입학해 우연한 기회에 교회 중창단에 들어갔다. 변성기를 지나면서 목소리가 달라졌지만 정작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렀다. 굵은 중저음에 동료들과 청중이 매료됐다. 목소리의 변화는 그의 성격도 바꿨다.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군 시절에는 대대 대표로 군단 웅변대회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원종규 코리안리 사장은 자신의 성장에 노래가 큰 힘이 됐다고 믿는다. 결혼한 뒤에도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독창보다 합창이 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합창은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 있고 좋아하는 부분이라도 내 목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된다. 내 목소리가 돋보일지는 몰라도 합창은 깨지니까. 노래와 합창의 경험은 경영에도 투영됐다.
원종규 코리안리 사장<사진=코리안리> |
◆ '보험사의 보험사' 재보험 경영 비결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 아시죠? 그때 보험회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수조원에 달합니다. 그런 대형 사고를 한 보험사가 감당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파산하겠죠. 그래서 보험사도 보험에 듭니다. 재보험사는 다른 보험사들과 합창을 하고 있는 셈이죠.”
원 사장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재보험을 이렇게 쉽게 설명했다. 보험회사가 가입하는 보험이라고.
그는 지난 1986년 코리안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입사하면서 ‘합창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8년 만인 2013년에 사장이 됐다. 선친인 고(故) 원혁희 코리안리 회장이 대주주였지만 아들은 사원, 대리, 차장, 부장 등 직급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았다. 차장 때까지는 입사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뒤처지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해상보험 실무는 물론 인사·재무·교육 등 회사 내 모든 분야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다. 회사를 두루 겪었기에 취임 때 했던 말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원 사장이 취임했을 때 보험업계를 잘 모르는 이들은 ‘2세 낙하산 경영인’으로 폄훼했다. 통상 경영은 장남이 물려받는데 원 사장은 3남이었던 데다 박종원 전 사장이 오랫동안 경영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동년배에 비해 젊어 보여도 그는 1959년생이다. 경영권을 이어받은 시점도 55세였다. 30년 동안 코리안리에 몸담으면서 회사 사정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사장 취임 직후 소문을 들으니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우유부단한 2세가 제대로 경영이나 할 수 있겠냐는 시각도 많았죠. 하지만 저는 그런 소문을 무시했습니다. 입으로 말하기보다 실력으로 말하면 됩니다. 코리안리에서만 30년 경력을 쌓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잘 알았기에 묵묵히 체질 개선에 집중했죠. 또 회사가 커지면서 생기는 폐해도 겪었기에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할지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죠.”
◆ '도전합시다' 관행 타파하고 전문성 강화
원 사장은 취임식 때 회사의 인사 구호를 ‘도전합시다’로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 제1의 재보험사를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가장 먼저 도전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경영 색깔은 취임 2년 차인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이전 사장 체제에서 15년간 지속됐던 조직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도전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갔다. 국내 재보험 시장에서는 절대 강자로, 해외 시장에서는 신흥 강호로 입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구상의 일환이다.
또 정신력을 강조하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것도 없앴다. 신입사원 대상의 체력장 면접이나 협동심을 기른다는 명목의 백두대간 종주, 히말라야 등정 등이 사라졌다. 체력과 협동심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신흥 강호가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식과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3년마다 진행한 순환보직을 없애고 전문성을 강화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야성(野性)도 중요하고 조직원의 일체감과 협동심을 높이는 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일류 재보험사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맞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내 제2 재보험사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그룹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지속적으로 재보험업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원 사장은 언제든 시장에서 싸울 의중을 내비쳤다. “삼성과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들이 삼성에 재보험을 맡기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건 회사의 기밀을 삼성에 그냥 넘긴다는 의미기 때문이죠. 재보험은 자산 규모도 크고 안정성도 높아야 하지만 신뢰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삼성과 경쟁하는 제조업체라면 삼성에 재보험을 드는 일을 없을 겁니다.”
◆ CEO 아닌 CEM ...동기부여자 전달자 중재인
원 사장은 아직도 주말이면 스키장을 찾는다. 스키를 50세가 넘어서 배웠다. 하지만 이제 선수 수준의 실력을 자랑한다. 스키를 배우기 전에는 바이올린에 푹 빠지기도 했다. 바이올린을 처음 들었던 시기도 50대 들어서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배움에 열정적이다.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게 원 사장 스타일이다. 원 사장은 매일 오전 5시 전에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기도로 아침을 열고 기도가 끝나면 영어학원으로 간다. 영어 공부는 그가 사원일 때부터 시작해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일이다. 아침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게다가 회사에 가장 빨리 출근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을 만나면 몸을 낮추고 존댓말로 인사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팀 단위로 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원 사장의 소망은 CEO가 아닌 CEM으로 남는 것이다. ‘동기부여자(Motivator)’, ‘전달자(Messenger)’, ‘중재인(Mediator)’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
“강압적인 부모 아래서 자란 자식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요. 하지만 성장 과정 중 한 번은 크게 홍역을 앓기 마련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소통하고 믿어준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조금 더디 성장하더라도 반드시 제 몫을 스스로 찾아 하죠. 제 역할은 한 가정에서 부모 역할과 비슷한 것 같아요. 동기를 부여해서 직원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뿐이죠.”
◆ “실력으로 말하면 됩니다”
원 사장이 취임한 후 5년도 안 되는 기간에 코리안리는 많이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사업이다. 뮌헨리, 스위스리 등 세계 일류 재보험사들의 해외 매출 비중은 90%에 달한다. 원 사장 취임 당시 코리안리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는 ‘2050년 세계 3위 재보험사’라는 비전을 내놓았다. “해외시장을 생각하다 다시 내부 조직으로 눈을 돌리니 300여 명의 엘리트가 눈에 보였습니다. 바로 코리안리 임직원이죠. 이들을 최고로 육성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원 사장은 우수 직원을 해외에 파견하는 것은 물론 해외사무소도 꾸준히 늘렸다. 뉴욕, 런던, 베이징, 도쿄에 사무소를 세웠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라부안, 두바이에 지점을 뒀고 런던, 홍콩에는 법인을 만들었다. 현재 취리히에도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뉴욕지점도 법인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세계 거점지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3년 후인 2020년에는 해외 매출을 3조8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코리안리의 매출(수재보험료) 추이는 2014년 5조4220억원(해외 1조2697억원), 2015년 5조6860억원(1조3590억원), 2016년 5조9490억원(1조4529억원), 2017년 6조4170억원(가마감 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25%를 해외에서 벌어오고 있는 것. 해외 매출 비중이 매년 1%포인트씩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해외 재보험 시장은 그야말로 무한경쟁이다.
코리안리는 글로벌 신용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자본 확충 작업도 추진했다. 해외 수주를 더욱 늘리기 위해서는 신용도가 높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자본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한다. 고객사가 안전한 재보험사라고 인식해야 더 적극적으로 물량을 맡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유상증자만 하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떠올린 게 글로벌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신종자본증권이란 영구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채권이다. 원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글로벌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4년 10월에 아시아 재보험사로는 최초로 2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다. 그것도 발행 규모의 6배에 이르는 해외투자자들의 주문을 받았다.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신용도와 자본 확충 두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셈이다.
이후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는 코리안리의 신용등급도 격상했다. 2006년 ‘A-’ 등급 획득 후 8년 만에 ‘A’ 등급을 받은 것. 자본 증대와 신용등급 상향을 통해 코리안리는 글로벌 재보험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해외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전 신용등급으로 인수가 어려웠던 해외 우량물건 수재를 확대하고 국내 보험물건의 보유를 늘려 국부 유출 방지와 함께 보험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됐다. 호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하지만 원 사장은 세계 3위 재보험사로 진입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가야 할 길이 머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의미였다.
◆ 약력
원종규 코리안리재보험 사장은 명지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경영학 석사)을 마쳤다. 1986년 코리안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1998년 뉴욕주재사무소장, 2002년 기획관리실 기획전략 차장, 2005년 경리부 부장, 2007년 이사대우, 2009년 상무대우, 2011년 전무 등을 거쳐 입사 28년 만인 2013년 6월 사장에 취임했다. 국내 유일의 재보험 전업사인 코리안리에서 실무를 고루 경험하며 재보험 전문가로 성장했다.
0I08709489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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