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에 항거한 평화시위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세력 다툼으로 변질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이 최근 1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를 폭격했다.
14일(현지시각) 미국 국방부는 전날 밤 시리아 공습에 대해 화학 무기 기지의 심장부를 명중했다며 자찬했고, 니키 헤일리 UN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군이 총탄을 장전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를 사용할 경우 재차 타격할 뜻을 밝혔다.
시리아 다마스커스 거리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시리아 공습에 항의 시위를 펼치는 시민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을 필두로 이번 폭격에 참여한 프랑스와 영국 이외에 러시아와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열강들이 맞물린 시리아 내전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군사 쿠데아로 권력을 잡은 하페즈 아사드부터 현직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로 이어지는 아사드 집안의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소규모 평화 시위에 당국이 경찰과 병력을 동원한 강력 진압에 나서면서 평화 시위는 무장 항거로 탈바꿈했다.
무력 충돌은 시리아 전국으로 확대됐고, 민간인 살해와 잔혹한 고문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UN이 2012년 공식적으로 내전 상태라고 인정하면서 국제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시리아 정부군이 2013년 다마스커스 인근 구타 지역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해 1000여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 국제 사회가 경악한 데 이어 주요국들의 비판과 대응에도 참사가 멈추지 않는 실정이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밀려들었고, 이 때문에 시리아 사태는 정치와 인권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쟁점으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 시리아 폭격과 관련,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임무가 완료됐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임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는 공습에 앞서 시리아를 문젯거리라고 언급하면서도 미국이 내전 사태를 종결시킬 수 없으며, 이 같은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근 시리아의 화학 무기 사용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기 전 2000여명의 군대를 철수하는 방안을 저울질했다.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한 주요 배경인 이슬람국가(IS)를 진압시킨 만큼 군사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이외에 이란과 러시아, 사우디, 터키, 이스라엘 등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열강들의 역학 관계가 새삼 세간의 조명을 받고 있다.
군부 독재 타도라는 7년 전 평화 시위의 본래 목적은 후방으로 밀린 채 주변국들의 힘의 논리가 시리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외신과 군사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14일(현지시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미군과 영국군, 프랑스군의 공습이 있은 후 시리아 공군이 반격했다. [사진=뉴스핌 로이터] |
미국이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IS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브렛 맥거크 반 아이시스 연합 특사가 미군의 시리아 파병에 대해 IS와 싸우기 위해서라고 밝혔고, 최근에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의회 증언에서 미군이 시리아의 내전에 가담하기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전 정부와 달리 시리아 내전에 공격적인 행보를 취하는 데는 정치적인 배경이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 워싱턴 포스트(WP)와 뉴욕타임즈(NYT) 등 주요 외신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아사드 정권의 화학 무기 사용에 맞서는 것 외에 중동 지역에서 이란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속내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화살은 시리아 정부만큼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군사 개입을 본격화 한 러시아는 각종 물자와 무기를 공급, 아사드 대통령이 내전 과정에 반군을 진압하고 정권을 지켜내는 데 강력한 버팀목이 됐다.
중동 지역에서 지배력을 굳게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시리아를 위한 전투>의 저자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더 애틀란틱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세력 확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발판”이라며 “러시아가 과거 소비에트 연방과 같은 영향력을 지녔다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와 직접적으로 얽힌 열강들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인 시리아와 이란, 터키,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갈등의 골이 깊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러시아는 중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용인하는 이란의 시리아 군사력 배치의 수위가 러시아에 의해 좌우된다는 얘기다.
UN 안보리에서 의견을 나누는 니키 헤일리 미국 대사와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대사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란의 시리아 군사 개입은 아사드 정권을 지키는 한편 숙적인 이스라엘을 견제 및 위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물론 사담 후세인 집권 당시인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을 때 아랍 국가 가운데 시리아가 유일하게 이란을 지원한 사실이 있지만 이에 대한 신의와 충절 이외에 시리아는 상당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리적으로 시리아는 이란에 이스라엘이나 서구의 군사적 행위에 대한 완충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사태에 회자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주둔한 이란 군대에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국경은 수년간 평화를 유지했지만 이란의 세력 확장에 이스라엘은 커다란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이란이 시리아 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헤즈볼라와 함께 국경 지역에 군력을 배치할 경우 작지 않은 위협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역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시리아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우디는 중동 지역의 강력한 라이벌인 이란이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가담하자 반군에 자금을 지원했다. 터키와 카타르가 반군 세력을 지원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이처럼 거미줄처럼 얽힌 열강들의 세력 다툼이 시리아 내전의 본질을 흐리는 한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날 WP에 따르면 아사드 대통령은 폭격의 성공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웃기라도 하듯 평소와 다름 없이 머리를 빗고 넥타이를 착용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공습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의를 더욱 높일 뿐”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