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고통을 직면하면서 추상이 나온 것 같아요."
신민주 작가가 오는 2월28일부터 3월29일까지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추상 본능'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150호 대작 회화 위주의 신작을 발표한다.
신민주(49) 작가는 '붓질'이라는 근원적인 예술 행위를 기반으로 한 회화의 본질에 관해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삶 속의 다양한 심리적 경험들은 어떤 이미지들로 작가의 내면에 끊임없이 축적되고 그 축적된 이미지들은 작가의 강렬한 붓질을 통해 화면 위에 가시적으로 뿜어나오게 됐다.
26일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신민주 작가는 취재진과 마주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삶을 먼저 알아야한다며 소탈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제 유년 시절은 평범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저를 존중해주셨고, 재수해서 대학생활을 했고 대학원을 갔죠. 대학원에서 작업을 열심히 했어요. 영화, 사진, 이미지를 좋아해서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한 작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저희 부모님과는 다른 성향의 시어머님과 부딪히면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절대적인 고통과 직면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순간에는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캔버스에서 제 마음을 해소할 방법을 찾게 됐고, 그것이 추상 작업의 시작이 됐습니다."
Uncertain Emptiness 17002, 2017. 227x182cm <사진=PKM갤러리> |
무기력한 생활의 연속이었던 신민주 작가는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캔버스 위에 블랙과 화이트로 한 호흡, 한 호흡을 담아 붓을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은 '솔직하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작품을 할 때 '아름답게 장식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규칙을 세웠고, 아크릴물감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흘러내리면 흘러내리는 대로, 튀면 튀는 대로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을 수용했다.
"작품을 데코레이션하지 않겠다는 저만의 법칙이 있어서 금방 작품을 끝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한 번 치고 빠지는 과정이죠. 작업하는 과정이 저를 구원하는 순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이를테면, 다음 날에 전날 작업한 작품을 보면 물감이 흘러내리고 혹은 뭉게져 있기도 해요. 아크릴물감은 금방 굳기 때문에 제가 콘트롤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작업한 것이 아니기에 그대로 마무리 짓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기준에서는 실수 혹은 오류로 보이는 것이 제게는 짓뭉게진 그 자체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어제의 액션에서 파생된 부수적인 것까지 수용합니다."
Uncertain Emptiness 17004, 2017. 227x182cm <사진=PKM갤러리> |
신민주 작가는 150호 캔버스를 세워놓고 '붓질'을 한다. 대형 캔버스 위 거침없는 붓질과 실크스크린 도구인 스퀴지를 사용해 팽팽한 긴장감과 거대한 에너지를 강렬하게 뿜어낸다. 200cm가 넘는 캔버스와 정면 승부(?)를 한다. 그는 캔버스 위가 아닌 캔버스를 벽에 걸어놓고 작업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신민주 작가는 "캔버스와 나의 힘의 균형이 맞아야 정당한 대결이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작업하는 건 불공평하다"며 거침없는 입담을 보여줬다.
"캔버스와 저의 힘의 균형이 동일한 상태에서 마주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캔버스가 서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돌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붓질은 제게 내제된 분노와 화를 표현합니다. 폭력적인 게 필요한 데, 그럴 땐 머리가 쭈뼛쭈뼛하면서 갈아엎고 싶은 그런 시원함이 느껴지도록 작업합니다. 스퀴지 작업과 붓질의 비율을 절묘하게 만들어 단조로움과 힘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죠. 그리고 힘 조절도 관건입니다. 멈출 때를 알아야죠.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판을 벌이면 작품이 살지 않더라고요."
신민주 작가는 추상 작업을 하기 전 팝아트를 주로 해왔다. 그는 추상 작업을 하면서 자신을 잘 알아가게 됐다고 했다. 스스로도 "자기애가 강하다"고 말하는 그는 뼈를 깍는 순간을 겪으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결혼생활에서 시어머니와 부딪히며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그 과정이 없었다면 자신의 작품이 재미가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저는 '나 하나만 알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정도로 저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그런 제가, 문제와 직면했을 때 '어떻게 회피해야 하나' 혹은 '직면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시기를 겪은 거죠. 그 때 추상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나의 것이 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실 때 즈음에는 독성이 다 빠지셔서 또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제 결혼생활이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런 시기가 없었다면 '제 것'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흑백의 컬러뿐만 아니라 유채 계열의 단색 바탕과 흑백 컬러의 강렬한 붓질의 대비로 세상의 빛, 모순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강렬한 감정 표현을 위한 다양한 색 사용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놨다. 신민주 작가는 "색깔을 갖고 노는 건 아주 쉽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색 다루는 건 껌이죠. 하고자 하면 여러 색 사용도 잘하는데 블랙 앤 화이트를 주로 쓰고, 그러다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핑크가 들어갈 때 회색의 퍼센트도 달라지죠.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색도 색의 기가 있어서 최적화된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앞으로 분노의 감정에 붉은 색이 나올지는 글쎄요. 저도 한 번 봐야겠는 걸요."
[뉴스핌 Newspim] 글·사진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