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5)

포르투갈하면 어떤 것들이 연상되는가? 한때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를 호령했던 최강대국이었지만 지금은 옛 영광을 잃고 쇠락한 유럽의 변방국가 이미지, 혹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면에서는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 파두(Fado)와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떠오르게 된다.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민속음악이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멜리스마 창법, 전통 기타인 '기따라(guitarra)' 반주, 숙명론적인 사고 등이 파두를 설명하는 특징이다. 이 파두에는 리스본 뒷골목에서 서민들이 부르는 '리스본(Lisbon) 파두'와 남성 보컬들이 부르는 달콤한 사랑의 세레나데인 '코임브라(Coimbra) 파두'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서민생활의 애환이 묻어 있는 리스본 파두가 백미이며, 보통 ‘파두’라고 하면 ‘리스본 파두’를 일컫는다.

파두는 한마디로 슬픈 음악이다.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글썽거려질 만큼 파두는 슬프다. 파두에 배어있는 슬픔은 이베리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나라 포르투갈의 지리와 역사에 기인하고 있다. 주로 바다 위에서의 활동을 통해 삶을 꾸려갔던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 자체였다. 배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바다로 떠난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며 주로 여인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파두이다.

포르투갈의 기타인 12줄 현악기 '기따라'의 애조띤 반주에 구슬픈 멜로디, 창자가 뒤틀리듯 고통스럽게 뱉어내는 노랫말. 포르투갈의 국민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들려주는 파두의 색조(色調)는 이렇게 애처롭고 구슬프며 처연하다. 원래 리스본 선창가의 카페에서 불리며 하찮게 여겨지던 노래가 호드리게스 그녀로 인해 이제는 '월드 뮤직(world music)'으로 발돋움했다.

파두를 부르는 여자 가수를 ‘파디스타(Fadista)’라고 한다. 파두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리아 세베라(Maria Severa)는 집시여인으로, 그녀는 1846년 2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녀가 파두를 부를 때는 언제나 검은 옷과 맨발차림이었다. 이후 파두가수는 모두 그녀를 따라 검은 옷과 맨발차림을 하게 되었다.

호드리게스 또한 그랬다. 호드리게스 이후 차세대 파디스타로는 파두 특유의 구슬픔을 대물림한 여가수 미지아(Misia)가 유명하다. 또 다른 파두 여 가수인 베빈다(Bevinda)는 내한공연을 가진 바도 있는데, 프랑스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전통적인 파두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초상 <사진=이철환>

파두(Fado)는 ‘운명’ 또는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인지 파두에는 짙은 슬픔과 한(恨)이 가사와 곡조에 절절이 배어있다. 대서양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해양국가인 포르투갈.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생활의 터전이자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삶의 방식으로 인해 서민들과 뱃사람들에게는 어떤 상실의 한이 서린 정서가 탄생하였다. 그 정서를 ‘사우다데(saudade)’라고 한다. 이 사우다데는 슬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한(恨)과 아주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은 한때 스페인과 함께 세계를 누비던 해상왕국이었으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어려운 고비를 맞게 된다. 1822년 식민지이던 브라질이 독립되어 나가면서 점차 국력이 쇠퇴해 갔고, 20세기 초반에는 무려 40년간을 장기 집권한 살리자르의 독재치하에서 체념과 탄식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포르투갈 국민들의 가슴속에는 손상된 국가적 자긍심에 대한 회한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었다. 이런 아픔과 한을 가진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초기의 파두는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그리고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담은 노랫말이 주종을 이뤘다. 그것이 점차 발전해 지금은 포르투갈의 한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정착하였다. 어둠이 내리면 리스본의 좁은 뒷골목 길에 자리한 카페클럽에서는 서민들의 슬픔과 애환을 담은 노래가 12줄의 포르투갈 기타 ‘기따라’의 애조 띤 연주에 실려 흘러나온다.

파두는 노래가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끝나기 직전의 클라이맥스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관례다. 낮게 읊조리며 시작하다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극도의 고음으로 전율하듯 부르짖을 때 박수와 함께 다시 낮게 깔리는 노래, 그것이 파두인 것이다.

파두 중에서도 세상사람 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호드리게스가 부른 《어두운 숙명(Malbicão)》과 《검은 돛배(barco negro)》이다. 이 노래들은 돌아오지 않는 님을 그리워하는 젊은 여인의 애절한 절망을 담고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슬픔과 죽음의 노랫말을 담은 이 곡들을 부르고 들으면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기쁨과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아침에 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모두들 무서워해요
난 해변에 쓰러져 있다가 눈을 떴죠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그리고 바위와 십자가를 보았죠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지친 두 팔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미친 여자들이야! 미친 여자들이야!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유리 구슬을 강변에 뿌리는 것 같은 바람 속에
꺼질듯한 불빛 속에서 노래하는 물 위에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 검은 돗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Amalia Rodrigues, 1920~ 1999)는 1920년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동네 중 하나인 알파마 거리에서 가난한 거리의 트럼펫 연주자의 9남매 중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상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야 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의상실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과일 행상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녀 삶의 유일한 위안은 노래였다. 파두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근처 카페의 사장의 눈에 띄었고 카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마치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 그녀의 나이 17세였다. 그러다 20세가 되던 1940년 ‘산안토니오 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아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생활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유럽과 남아메리카 각지로 연주여행을 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또 파두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마치 신들린 듯 열과 성을 다해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에게 청중들은 환호했다.

호드리게스는 1954년 프랑스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Les Amants Du Tage)》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녀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영화에서 그녀는 검은 옷에 검은 숄을 걸치고 《검은 돛배》를 불렀는데, 이것이 관객들에게 크게 각인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파두 또한 세계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파두 가수들은 주로 검은 옷을 착용하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살아있는 동안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녀는 무려 170종의 앨범을 내었고, 또 세계 각지를 돌면서 순회공연을 하는 동안 많은 찬사와 호평을 받았으며 파두라는 장르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또한 그녀는 노래 속에 담겨 있는 슬픔과 한을 자유와 평화를 향한 메시지로 승화시켜, 포르투갈 국민은 물론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 진정한 뮤지션이었다.

호드리게스는 언제인가 그녀의 인생이 되어버린 파두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파두란 우리들이 결코 마주하고 싸울 수 없는 숙명. 아무리 발버둥 치며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다는 것, 왜냐고 물어도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호드리게스는 두 번의 결혼을 하였지만 자녀는 없었다. 그리고 어릴 적 엄격한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 손에서 자란 탓인지 별다른 스캔들 없이 조용히 살아갔다. 1999년, 그녀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정부는 사흘 동안의 애도기간을 공포하였다. 그만큼 그녀는 포르투갈 국민의 자랑이요 민족혼의 상징이자,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진정한 국민 가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황대헌 "결승서 플랜B 급변경"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로는 처음으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따낸 황대헌(강원도청)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다. 너무 소중한 메달"이라고 말했다. 황대헌은 "월드투어 시리즈를 치르면서 많은 실패와 도전을 했고, 그런 부분을 제가 많이 연구하고 공부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도 했다. 황대헌은 15일(한국시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옌스 판트 바우트(네덜란드)에 이어 2위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2018 평창 대회 남자 500m 은메달을 시작으로 2022 베이징 대회에서 남자 1500m 금메달과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을 땄다. [밀라노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황대헌이 15일(한국시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시상식에 오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2026.02.15 psoq1337@newspim.com 황대헌에게 이번 올림픽은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에서 열린 2025-202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투어 4차 대회에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 부상 치료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올림픽을 준비했다. 이날 결승은 9명이 함께 뛰었다. 황대헌은 "2022년 베이징 대회 때는 결승에서 10명이 뛰었다. 그리 놀라운 상황은 아니었다"며 "쇼트트랙 레이스의 흐름이 많이 바뀌어서 공부도 많이 했고, 계획했던 대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운영엔 다양한 전략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플랜B로 바꿨다"며 "자세한 내용은 제가 많이 연구한 결과라 소스를 공개할 수는 없다"며 미소를 보였다. psoq1337@newspim.com 2026-02-15 09:10
사진
최가온이 전한 긴박했던 순간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들것에 실려 나가면 그대로 끝이었어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최가온(세화여고)이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최가온. [사진=대한체육회] 최가온은 1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공식 기자회견에서 전날 결선 1차 시기를 떠올렸다. 그는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결선 1차 시기에서 크게 넘어지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의료진이 내려와 상태를 확인했고, 들것이 대기한 긴박한 상황이었다. 최가온은 "들것에 실려 나가면 병원으로 가야 했고, 그러면 대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다음 선수가 기다리고 있어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발가락부터 힘을 주며 움직이려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걸을 수는 있었지만 코치는 기권을 권유했다. 최가온은 "나는 무조건 뛰겠다고 했지만 코치님은 걸을 수 없는 상태로 보셨다"며 "이를 악물고 계속 걸어보려 했고, 다리 상태가 조금씩 나아져 2차 시기 직전 기권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넘어지자 의료진이 달려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1, 2차 시기 연속 실수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3차 시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최가온은 "긴장감이 오히려 사라졌다. 기술 생각만 하면서 출발했다. 내 연기를 완성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900도와 720도 회전을 안정적으로 연결하며 90.25점을 받아 극적인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은메달을 차지한 교포 선수 클로이 김(미국)과 관계도 화제가 됐다. 최가온은 "클로이 언니가 안아줬는데 정말 행복했다. 그 순간 '내가 언니를 넘어섰구나' 하는 감정이 몰려왔고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이어 "경기 전에는 언니가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복잡했다. 존경하는 선수라 기쁨과 서운함이 동시에 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부상 직후 재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겁이 없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타며 자연스럽게 생긴 승부욕이 두려움을 이겨낸 것 같다"며 웃었다. [리비뇨=로이터뉴스핌] 밀라노-코르티나 2026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가온 선수가 지난 12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6.02.13 photo@newspim.com 많은 눈이 내린 경기 환경에 대해서도 담담했다. "첫 엑스게임 때 눈이 정말 많이 왔는데 그때에 비하면 괜찮았다.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함박눈이 내려 오히려 예쁘다고 느꼈다. 시상대에서도 눈이 내려 클로이 언니와 '이렇게 눈이 내리니 좋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몸 상태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는 "무릎이 아주 아팠지만 많이 좋아졌다"며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 다친 왼쪽 손목은 귀국 후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드리지는 못했다. 기술 완성도를 더 높이고 긴장감을 다스리는 법도 보완하고 싶다"며 "먼 미래보다 당장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가온. [사진=올댓스포츠] 가족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최가온은 "아버지가 내가 어릴 때 일을 그만두고 이 길을 함께 걸었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해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귀국 후 계획을 묻자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친구들과는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금메달과 함께 포상금과 고급 시계를 받게 된 데 대해서는 "과분한 것들을 받게 돼 영광이다. 시계는 잘 차겠다"고 말했다. 스노보드 꿈나무들에게는 "하프파이프는 즐기면서 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치지 말고 즐기면서 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들것 앞에서 멈추지 않았던 17세의 선택은 결국 한국 설상 종목의 새 역사가 됐다. zangpabo@newspim.com 2026-02-14 22: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