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참사,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 출동 늦어져
소방기본법 제25조있지만, 차량 손상 어려워
전문가 "소방 당국·지자체장 적극적 의지 표명해야"
[뉴스핌=심하늬 기자] 제천 화재 진압 초기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들로 출동에 어려움을 겪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 법안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을 손상하고 출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하는 국민은 4일 만에 2만5000명을 넘어섰다.
21일 일어난 제천 화재 관련 문건에 따르면 소방청은 이번 화재의 인명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로 불법 주차 차량을 꼽았다. 당시 바로 건물 주위로 투입돼야 할 대형 소방차들은 건물로 접어드는 소방도로를 가득 채운 불법주차 차량들로 인해 도로로 들어서지 못하고 500m를 우회해야 했다. 이로 인해 화재 초기 진압과 인명구조가 지연됐다.
◆ 영국 등 화재 진압 시 필요하면 차량 이동 및 파손도 가능
외국의 경우 화재 진압 시 소방도로를 막은 불법주차 차량을 부수면서라도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은 2004년 '화재와 구출 서비스법'을 제정해 소방관이 화재 진압과 구조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재량에 따라 차량 소유주의 동의 없이 차를 옮기거나 부술 수 있게 했다. 캐나다도 몬트리올 빌딩화재 당시 소방차가 길가의 주차된 차량을 범퍼로 밀어버리고 출동하는 영상이 알려진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법률상으로는 화재 진압 시 불법 주차 차량을 제거 또는 이동시키고 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소방기본법 제25조는 "소방본부장·소방서장 또는 소방대장은 소방활동을 위하여 긴급하게 출동하는 때에는 소방자동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차 또는 정차된 차량 및 물건 등을 제거 또는 이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손실을 받은 자에게는 시·도지사가 손실을 배상해야 하지만, 법령을 위반해 소방자동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된 경우에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화재 진압을 위해 불법 주차 차량을 손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동안에는 소방관이 소방 활동 중에 피해를 주는 경우 소송 당사자가 되는 등 책임을 직접 지게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책임을 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후 복잡한 민원이 발생하거나 처리에 곤란을 겪게 되기 때문에 차량을 손상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출동하기 힘들었다.
◆ 법안 있어도 차량 손상 시 민원 및 소송 문제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련 법안이 있지만 실제로 차량을 손상하며 출동한다면 소방 공무원들이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민원에 신경 쓰거나 소송에 말리는 등 너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방청과 지자체 등이 적극적으로 '차량을 손상하더라도 화재 진압을 위해 빠르게 출동할 것'을 지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에 관련 지침을 분명히 전달하고, 빨리 출동하기 위해 차량을 손상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민원이나 손해배상은 소방공무원들에게 책임이 넘어가지 않게 법안대로 시·도지사가 확실히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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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충북 제천시의 한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하고 있다. <사진=제천소방서> |
이어 불법 주차된 좁은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 소형소방펌프차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소방차 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주정차 구역은 재난 시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표시를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소방관들이 구조활동에서 부득이한 피해를 주어 소송에 걸리면 국가가 책임을 지고, 소방관의 중과실이 있을 때에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19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하지만 통과되지 않은 관련 법안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해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곳들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종래 정차 및 주차가 금지되는 구역 중 도로의 모퉁이, 대중교통의 정류지, 소방 관련 시설의 주변 등 특별 관리가 필요한 구역을 별도로 구분해 주·정차 금지 표시하고 금지 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를 일반적인 때의 2배로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은 9개월째 재난 안전대책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심하늬 기자 (merongy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