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포스터만 보면, 공포 장르인가 싶다. 설명만 들으면, 지루한 철학적 내용인가 싶다. 그러나 막상 공연을 관람하게 되면, 두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연극 '비명자들2'가 그렇다.
극단고래의 신작 '비명자들2'(연출 이해성)는 사회 안에서 각 개인이 마주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개인이 느끼는 고통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그 아픔을 사실 공유할 길이 없다는 것에서 착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고통을 '비명'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작품은 갑작스레 사회에 나타난 '비명자'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요한'은 파사현정 연구소의 파사팀 팀장으로, 비명자를 파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파사하는 과정에서 비명자의 고통을 직접 체감하며 사연도 듣는다. 그러던 중 요한은 자신의 동료였던 보현이 비명자가 되어 나타나자 괴로워하다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공연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비명자'는 일종의 좀비로, 그가 지르는 비명이 반경 4km내 사람들에게 극한 고통을 준다. 때문에 '아리랑병'이라고도 불린다. '파사(破邪)'란 비명자의 목을 꺾어 죽이는 행위다. 이외에도 비명의 고통을 다스리는 사성제, 고집멸도, CRPS 등 여러 용어가 등장한다. 물론, 극 속에서 충분히 뜻을 유추할 수 있고, 설명도 해준다.
극은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충격적이다. 그러나 과거 '퇴마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몰입도가 강하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비명자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탄생하고, 그들의 아픔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요한이 비명자를 파사할 때에야 비로소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고통을 겪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요한 뿐이다. 다른 이들은 고통의 공유에 괴로워할 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비명자들의 사연은 세월호 참사, 해고노동자의 분신, 학교 폭력 피해자, 송파 세모녀 사연 등이 연상된다.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 보이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말로는 '이해한다' '공감한다'고 하지만 전혀 그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외면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오히려 파사 당하는 비명자들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요한에게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위로한다.
무거운 내용이지만 어렵진 않다. 요한으로 분한 배우 박요한의 묵직한 연기는 물론, 배우 남명렬의 무게감, 여기에 강애심, 김성일, 김동완, 김혜진, 박윤정 등의 안정적인 연기가 대사의 진정성을 더욱 빛낸다. 그 외에 대규모 코러스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통해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해왔는지 가늠케 한다.
비명자가 내지르는 소리는 극장 너머를 꿰뚫고, 박이표 안무가에 의해 탄생된 동작은 그 기괴함을 높이고, 파사 팀원들의 잘 맞춰진 움직임은 처음에는 다소 오글거릴 수 있지만, 역동성을 더한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콘트라베이스와 기타 연주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귀가 예민한 사람들은 극 내내 지르는 비명에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다.
사회에서 받은 고통으로 죽음을 택했던 피해자가 죽지 못하고 비명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해자로 변한 아이러니. 파사는 과연 그들에게 주는 안식일까 살인일까. 그리고 개인의 고통은 결국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걸까. 정답은 없다. 작품 역시 열린 결말이다. 3부작 중 '현재'에 집중한 '비명자들2'. 앞으로 나올 '비명자들1'과 '비명자들3'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연극 '비명자들2'는 오는 3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극단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