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론화된 문제를 통해 맞춤형 처방전 낼 수 있어...효율성 높아질 것"
반 "우리나라 노사관계 선진국 수준 못 미쳐...갈등 증폭될 것"
[뉴스핌=허정인 기자] KB금융지주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노동이사회' 도입이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금융권과 한국 경제에 큰 숙제를 안겨줬다. 노동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이사제는 투명 경영, 업무 생산성 향상 등을 근거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경영 효율성 약화, 노사갈등 증폭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 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노동조합(금융노련)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근로자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통해 경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허권 금융노련 위원장은 뉴스핌과 전화를 통해 “회사가 갖고 있는 문제를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맞춤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며 “또한 회사와 근로자 간 소통창구의 간격이 좁혀지기 때문에 갈등 해결 면에선 효율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놓치는 회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고, 근로자와 사측이 ‘공유화된 문제’를 놓고 함께 논의함으로써 더욱 실천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회사 경영에 있어 실익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공유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맞선다. 그 동안의 노사갈등을 고려해보면 노동이사제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켜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란 분석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매년 임단협을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근로자 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경영에 과도한 개입을 해 의사결정 과정을 비능률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의결권자문사인 ISS는 KB금융그룹 노조협의회가 제안한 하승수 변호사의 사외이사 선임 건과 관련해 “과거 정치 경력이나 비영리단체 활동 이력이 금융지주사의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식회사는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근로자 대표가 의사결정권자로 참여하게 되면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반대론자의 주된 논거다.
조성재 노동시장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근로자의 의견을 사전적으로 수렴한다면 구성원들도 회사의 방침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이라며 “수익성뿐 아니라 안정성과 성장성 면에서도 회사에 실익을 가져다 줄 제도”라도 말했다. 즉 운영하는 방향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오르고 회사의 수익성도 함께 증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현실적으로 근로자 대표는 노조의 이익만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다. 운영방향에 따라 회사의 수익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첨예했던 노사갈등을 고려해보면 노동이사제를 통한 경영 투명화, 효율성 증대 등은 이상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이날 주총 후 기자들과 만나 “(노동이사제를 통해)어떤 가치를 증대시킬 것인지에 대해 주주를 설득하기 위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사실상 노조가 주주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뉴스핌 Newspim] 허정인 기자 (jeon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