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언젠가, 노희경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말했다. 사랑은 누군가의 강요로 할 수 있는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통제하기도 힘든 감정. 언제나 사랑에 빠지면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괴로워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연극 '라빠르트망'이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질 미무니 감독의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이 원작으로, 약혼 반지를 사려던 날 옛 연인 리자의 흔적을 쫓게 된 막스가 그녀를 찾아 헤매는 동안 두 사람을 중심으로 얽혀있던 관계들이 드러나며 사랑의 본질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는 1997년에 발표됐지만,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는 건 역시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 원작에 매료돼 직접 질 미무니를 찾아갔던 고선웅 연출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감수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사랑은 영원한 것 같다.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그만큼 작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약혼녀가 있지만 옛 연인 리자(김주원)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쫓는 막스(오지호), 막스를 짝사랑해 리자인 척 하는 알리스(김소진), 알리스를 사랑하는 루시앙(조영규), 막스를 믿고 사랑하는 약혼녀 뮤리엘(장소연), 다소 거칠게 리자를 사랑하는 다니엘(이정훈) 등 여섯 남녀들이 엇갈린 사랑으로 얽히고설켜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 사랑의 비극을 만든 막스 역의 오지호는 다소 순진하면서도 열렬한 사랑을 꿈꾸는 청년을 잘 그려낸다. 매혹적인 여인 리자 역을 맡은 김주원은 무대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연기를 풀어나간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알리스 역의 김소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소녀에서 사랑으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모습, 극중극 연기까지 말투와 행동, 표정 모두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세 사람은 연기 뿐만 아니라 춤과 몸짓으로 많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원작과 달리 과거부터 시간순으로 흐르는 무대 위에서, 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의 흐름은 물론 감정의 변화까지, 한층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무대를 풍성하게 만든다. 배우들 모두 쉽지 않았을 도전이었을 텐데, 꽤나 훌륭히 소화한다.
복잡한 스토리에 비해 무대는 매우 간소하다. 테이블과 벤치, 침대, 빨간 문, 그리고 가로등이 넓은 무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네 개의 스크린으로 장소를 보충 설명하고, 배경음악으로 인물들의 긴장감을 전한다. 여기에 회전 무대 구성으로 장소의 이동을 표현한다. 배우들의 동선이 이리저리 엇갈리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지만, 그만큼 속도감 있는 전개로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인다.
엇갈린 사랑의 무게는 관객들에게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1인 다역의 두 배우 배보람, 김용래의 열연과 춤으로 곳곳에 유쾌함을 포진시킨다. 간혹 터져나오는 웃음들로 긴장감을 완화시키며, 관객들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사랑이라는 게,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극중 인물들의 행동과 거짓말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고, 그것이 모두 '사랑'으로 귀결되기에, 우리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지금 본인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 '라빠르트망'은 오는 11월 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