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주로 사회의 선과 악의 대립, 정의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박경수 작가의 작품에 배우 이상윤(37)의 이름이 올랐다. ‘귓속말’이란 작품에서다. 일각에서는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의 반응이 있었다. 주로 남자 캐릭터의 선 굵은 연기가 빛을 발하는 박경수 작가의 작품에 따뜻하고 로맨스극에 제격인 이상윤이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초반 우려와 달리 다행히 ‘귓속말’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이상윤이 담은 남자주인공 이동준의 캐릭터도 살아났다. 그 덕인지 ‘귓속말’은 마지막회에서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캐스팅 과정에서 이상윤을 만나 이동준이 보였다던 이명우 감독의 안목도 틀리지 않았다는 평가도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이상윤은 ‘귓속말’에서 펼친 자신 연기에 대해 “완벽하게 잘했다고는 못하겠다”고 평했다. 이어 “제가 듣기로는 중간에 욕도 많이 먹었다고는 알고 있다”며 털털한 모습을 보였다.
“‘이상윤이 이동준이란 인물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싶어요. 이상윤도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요. 그간 드라마에서 여성의 취향을 저격한, '로망남'을 많이 맡았잖아요. 제 안에 그 모습 외에도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귓속말’이 그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12년 KBS 2TV ‘내 딸 서영이’에 이어 이상윤은 5년 만에 다시 이보영과 ‘귓속말’에서 재회했다. 5년 만의 재회임에도 훌륭한 케미와 연기 호흡으로 두 사람은 또다시 ‘귓속말’을 흥행작으로 만들었다. 이상윤은 이보영과 촬영장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면서 더욱 굳건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제가 보영 누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힘들 때마다 서로 응원을 해주면서 힘을 북돋아 줬어요. 이번 ‘귓속말’을 하면서 어려웠던 게 극중에서 비슷한 상황의 연속이 부닥칠 때였어요. 상황만 바뀔 뿐 비슷한 연기를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그때마다 누나와 호흡에 더욱 신경을 써 가면서 서로 연기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누나가 지치면 제가 힘이 되어주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요.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연기하면서 저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거요. 누나가 '상윤이 많이 컸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귓속말’ 속 이보영과 이상윤의 로맨스는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멜로라인이었다. 드라마 속 로맨스라고 하면 두 남녀주인공의 설레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는 것. 하지만 ‘귓속말’에서는 부정 사건에서 대립된 입장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신영주(이보영)와 이동준(이상윤)은 비리 사건의 엮인 과정을 풀어가며 사랑을 이어갔다. 이 역시 이상윤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다.
“보통 드라마의 경우 감정이 쌓이면서 두 남녀의 사이가 발전하거나 혹은 아예 첫눈에 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귓속말’은 여러 사건이 얽히고설키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남녀가 서로를 인간적인 면을 보고 접근했다고 봐요. 정도 있고, 연민도 쌓였을 거예요. 이동준이 자신의 죗값까지 다 받아가면서 사회의 정의를 위해 맞서 싸우고 있고, 그런 남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수밖에 없는 여자의 이야기에 사랑이 결합된 구조죠. 이 점이 결국 시청자와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귓속말’을 무사히 마쳤지만, 이번 작품이 워낙 무거운 메시지와 담고 있고 캐릭터 역시 정의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야했기에 부담감이 만만찮았다. 데뷔 11년 차이지만, 이상윤은 연기에 대한 걱정을 여전히 안고 산다. KBS 2TV ‘공항가는 길’을 할 때쯤부터 슬럼프가 있었다. 작품마다 박수를 받았지만, 어김 없이 그에게 어두운 시간도 따라왔다. 현재는 극복하는 중이다. 그가 슬럼프에 대처하는 자세는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까지 (슬럼프 극복)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싶네요. 연기적인 부분은 선배들이나 선생님들과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한번 가져볼까 해요. 지금까지 너무 쉬지 않고 뛰어놀았나 싶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연기자로서는 충만해지는 시간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보다 저 자신을 깊게 파보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이상윤은 쉬지 않고 매해 한편 씩 꼭꼭 작품을 해왔다. ‘귓속말’ 후에 차기작이 정해진 게 있느냐는 물음에 “아무 생각이 없다. 가능하다면 올해는 안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다 연기에 갈증이 생기는 그 시기에 다시 에너지를 모아 연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 작품이라도 더 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배고픔처럼 연기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인 순간까지 참다가 그때 작품을 한다고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에너지를 모아 터뜨린다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을 할수록 더욱이요. 드라마는 힘에 부칠 것 같고, 여건이 된다면 영화는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드라마에서는 할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에 욕심도 나고요.”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