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미국 영향력 희석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달러 강세론자들이 기존의 상승 포지션에서 발을 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5개월 가량 축적됐던 달러 상승 포지션이 거의 모두 청산된 것. 달러 강세에 불을 당겼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의 이행 가능성에 회의론이 번진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선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미국이 가졌던 영향력이 꺾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21일(현지시각)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헤지펀드와 그 밖에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 심리 조사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자료를 근거로 한 투자자들의 포지션을 분석한 결과 달러 상승 베팅이 지난해 대선 이전 수준으로 복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달러화는 7% 랠리했다. 하지만 공식 취임 이후 인프라 투자를 포함한 주요 정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실망감이 번진 상황이다.
미리아 미리아쿠 BOfA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대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부터 쌓이기 시작한 달러화 강세 베팅이 거의 전량 청산됐다”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트레이더들이 달러 향방에 대해 비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제 개혁안을 올해 여름까지 의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투자자들의 기대는 꺾인 실정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연내 승인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Fed)의 온건한 금리인상 기조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종료 움직임에 따른 유로화 강세도 달러화에 하락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진단된다.
연초 103을 뚫고 올랐던 달러 인덱스는 이날 장중 99선으로 밀렸다. 이에 따라 6개 바스켓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가 6주간 최저치로 밀린 상태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패배할 경우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화를 누를 것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커먼웰스 포린 익스체인지의 오머 이시너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지난주 연준 회의 이후 달러화가 뚜렷한 약세 흐름을 나타내고 있고, 투자자들의 포지션 변경이 하락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 대선 결과 르펜 대표가 낙마할 경우 유로화가 추가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이머징마켓 통화로 몰려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달러화 약세 흐름이 두드러지자 투자자들이 고수익률을 창출하는 통화를 중심으로 신흥국 베팅에 나섰다는 것.
실제로 지난주 15일 연준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가 발표된 이후 남아공의 랜드화가 4% 랠리하며 2015년 중반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 관련 국가가 보호주의 배격 조항을 성명서에서 삭제한 한편 경쟁적인 통화 가치 평가절하를 지양한다는 문구를 유지한 데 따라 신흥국 통화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판단이다.
MUFG의 데릭 하페니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 “워싱턴이 환율 정책에 관한 기조를 수정하는 데 매우 신중하다는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는 앞으로 달러화 움직임이 미국 이외 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JP모간은 투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주도적인 힘을 잃고 있다”며 “대선 이후 영향력이 크게 희석됐다”고 전했다.
또 향후 외환시장이 유로존의 경제 지표 및 정치 변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