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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종료] 놓친 우병우, 원인은 수사부족? 막강파워?

기사입력 : 2017년02월28일 07:30

최종수정 : 2017년02월28일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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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급제·특수통 禹, 검사장 좌절 뒤 靑입성해 부활
직권남용 禹 쫓던 특검, 시간 없어 막판 수사 착수
영장기각으로 檢 이첩…검찰라인 봐주기 의혹도

[뉴스핌=김기락 기자] 수사 막바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칼날은 우병우를 향했다. 그러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우 전 수석은 법을 잘 알고 피해간다는 전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법꾸라지’ 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 전 수석은 특검의 칼날을 피해갔으나 그가 살아온 성공적인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로 남을 전망이다. 특검 수사 종료 후,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도 피해갈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검이 우 전 수석을 놓치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짧은 수사 기간, 둘째는 검찰에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22일 우 전 수석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위에서 시킨대로 했기 때문에 무혐의’라는 취지로 주장한 우 전 수석의 논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특검 주변에서는 우 전 수석 조사 전부터 구속영장 발부까지는 회의적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직권남용 혐의 입증이 어렵고, 검찰 출신인 우 전 수석을 단 한차례 소환조사 후 바로 영장 청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와 함께 우 전 수석의 ‘영향력’이 특검에 미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다. 우 전 수석은 검찰에서 승승장구했던 신화적 인물로 꼽혀왔다. 서울대 법대 84학번인 우 전 수석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 ‘소년급제’했다. 그의 나이 만 20세, 대학교 3학년 때다. 첫 근무지로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와 형사6부에 발령받아 엘리트 인생이 시작된 듯 했다.

하지만, 1992년 당시 우병우 검사는 대구지검 경주지청, 밀양지청으로 발령났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이다. 펄펄날던 20대 중반 나이에 겪은 첫 아픔이었다. 이후 검찰의 요직을 거치며 검찰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서 우 전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특유의 파고드는 수사력을 과시했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이동,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 2부장, 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 등도 거치며 ‘특수통 평가를 받았다.

추락하는 건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우 전 수석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후 급격히 추락한다. 대검 중수부 1과장 시절 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200여개 질문을 쏟아냈고, 20여일만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사표를 냈다. 우 전 수석은 잠시나마 책임을 피했으나 2012년과 2013년 ‘검사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승진에 미끄러졌다. 우 전 수석의 검사 시절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해 검찰에 출석해 가족 회사인 '정강' 횡령에 대해 질문하는 취재진을 응시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진=이형석 기자>

이후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청와대 권력은 막강했다. 이 때부터 우병우 세력인 ‘우병우 사단’이 만들어졌고, 검찰청 등 주요 국가기관에 그의 영향력이 뻗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제2의 인생마저 추락하게 됐다.

특검 핵심 관계자는 우 전 수석 소환을 앞두고 ‘우 전 수석 수사에 특별히 어려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여러가지가 있다”며 말을 아꼈다. 감추고 싶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의 손을 떠나 우 전 수석의 수사를 검찰이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찰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 전 수석은 학생과 검사 시절 등 정점에 오른 속도만큼이나 추락하는 속도 또한 빨랐다. 잘못된 권력을 좇은 결과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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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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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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