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급제·특수통 禹, 검사장 좌절 뒤 靑입성해 부활
직권남용 禹 쫓던 특검, 시간 없어 막판 수사 착수
영장기각으로 檢 이첩…검찰라인 봐주기 의혹도
[뉴스핌=김기락 기자] 수사 막바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칼날은 우병우를 향했다. 그러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우 전 수석은 법을 잘 알고 피해간다는 전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법꾸라지’ 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 전 수석은 특검의 칼날을 피해갔으나 그가 살아온 성공적인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로 남을 전망이다. 특검 수사 종료 후,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도 피해갈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검이 우 전 수석을 놓치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짧은 수사 기간, 둘째는 검찰에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22일 우 전 수석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위에서 시킨대로 했기 때문에 무혐의’라는 취지로 주장한 우 전 수석의 논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특검 주변에서는 우 전 수석 조사 전부터 구속영장 발부까지는 회의적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직권남용 혐의 입증이 어렵고, 검찰 출신인 우 전 수석을 단 한차례 소환조사 후 바로 영장 청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이와 함께 우 전 수석의 ‘영향력’이 특검에 미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다. 우 전 수석은 검찰에서 승승장구했던 신화적 인물로 꼽혀왔다. 서울대 법대 84학번인 우 전 수석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 ‘소년급제’했다. 그의 나이 만 20세, 대학교 3학년 때다. 첫 근무지로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와 형사6부에 발령받아 엘리트 인생이 시작된 듯 했다.
하지만, 1992년 당시 우병우 검사는 대구지검 경주지청, 밀양지청으로 발령났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이다. 펄펄날던 20대 중반 나이에 겪은 첫 아픔이었다. 이후 검찰의 요직을 거치며 검찰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서 우 전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특유의 파고드는 수사력을 과시했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이동,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 2부장, 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 등도 거치며 ‘특수통 평가를 받았다.
추락하는 건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우 전 수석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후 급격히 추락한다. 대검 중수부 1과장 시절 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200여개 질문을 쏟아냈고, 20여일만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사표를 냈다. 우 전 수석은 잠시나마 책임을 피했으나 2012년과 2013년 ‘검사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승진에 미끄러졌다. 우 전 수석의 검사 시절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해 검찰에 출석해 가족 회사인 '정강' 횡령에 대해 질문하는 취재진을 응시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진=이형석 기자> |
이후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청와대 권력은 막강했다. 이 때부터 우병우 세력인 ‘우병우 사단’이 만들어졌고, 검찰청 등 주요 국가기관에 그의 영향력이 뻗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제2의 인생마저 추락하게 됐다.
특검 핵심 관계자는 우 전 수석 소환을 앞두고 ‘우 전 수석 수사에 특별히 어려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여러가지가 있다”며 말을 아꼈다. 감추고 싶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의 손을 떠나 우 전 수석의 수사를 검찰이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찰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 전 수석은 학생과 검사 시절 등 정점에 오른 속도만큼이나 추락하는 속도 또한 빨랐다. 잘못된 권력을 좇은 결과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