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구설에 오른 연예인들은 많다. 그런데 그 구설을 시간이 아닌 실력으로 극복한 이는 극히 드물다. 이병헌(46)은 그런 면에서 대단한 배우다. 영원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스캔들도, 새롭게(?) 터지는 루머도 그의 연기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폭발적인 이병헌의 연기 앞에서 관객은 귀가 먹고 눈이 멀어버린다.
이병헌이 신작 ‘마스터’를 통해 또 한 번 미친 연기력을 뽐냈다. 오늘(2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그린다. 희대의 사기범과 그의 브레인, 그리고 이들을 쫓는 지능범죄수사대까지,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물이다. 극중 이병헌은 희대의 사기범 진회장을 연기했다.
“영화를 보고 조의석 감독 영화답다고 생각했어요. 빠른 템포가 눈에 띄었죠. 무겁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경쾌하게 잘 만들었어요. 그리고 든 생각은 김우빈이 애드리브를 많이 했구나(웃음). 공부를 참 많이 해오고 순발력도 대단한 배우예요. 반면 우려가 된 부분이 있다면 역시나 러닝타임(143분)이죠. 화장실 갈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면 몰입이 안되거든요. 여전히 그게 가장 걱정스럽죠.”
이병헌이 열연한 진회장은 실존 인물 조희팔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설명을 곁들이자면, 변신에 능하고 단숨에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언변을 지닌 인물로 회원이 수만 명에 이르는 원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남의 믿음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지만, 정작 본인은 누구도 믿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다.
“감독님이 실제 그 인물에 관한 자료와 영상을 줬어요. 하지만 그걸 참고하면 영화적인 재미가 없을 듯해 따라하진 않았죠. 그리고 ‘악마를 보았다’(2010) 최민식 선배 같은 캐릭터로 그려서도 안됐어요. 이 사람은 금융 사기범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금융사기를 더 악랄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단편적인 악역으로 보이지 않되 그에게서 가장 악마적인, 악한 지점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이병헌은 캐릭터의 전체적 그림은 물론, 세심한 부분까지 공을 들였다. 대표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소소한 웃음을 줬던 동남아식 영어다.
“2년 정도 동남아에서 사업하는 후배가 있어요. 어느 날 비즈니스로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영어를 하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해야 상대방도 편하고 자신도 편하다고 했죠. 그 기억을 진회장에게 적용했어요. 그러고 스태프에게 필리핀 배우들 오디션 때 읽어서 전송해 달라고 부탁했죠. 세 배우의 녹음본을 주셨더라고요. 그걸 들으면서 나름의 룰, 공식을 찾아갔죠. 감정은 내 몫이니까 완전히 배제하고 사람들의 발음과 억양을 찾아갔어요.”
이제는 이병헌의 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드리브 이야기도 이어졌다. 더욱이 전작 ‘내부자들’(2015)에서 “우리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라는 즉흥적인 대사를 유행시키면서 이병헌표 애드리브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번엔 의아했어요. 특히 양면테이프(극중 이병헌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김우빈에게 이렇게 말한다)에 다 웃길래 당황했죠. 제가 질풍노도의 시기와 양면테이프를 말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밀었거든요. 조의석 감독은 양면테이프를 밀고요. 근데 사람들이 양면테이프 장면에서 웃는 걸 보고 내가 졌구나 싶었죠. 물론 전 제가 여전히 세련된 유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코드가 다른 거라고, 하하. 사람들은 아재 개그라고 하지만, 정작 아재 개그를 하는 사람은 그게 아재 개그인 줄 모르는 거죠.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봐요(웃음).”
많은 아이디어 중 대중적인 것을 사용한다는 이병헌의 애드리브에는 또 하나 중요한 철칙이 있다. 바로 때와 장소를 가리는 거다.
“애드리브도 아무 곳에서나 하진 않아요. 작품의 성격을 봐가면서 하죠. ‘마스터’와 같은 경우에는 내용과 흐름상 애드리브가 허용되지만, 지금 찍고 있는 ‘남한산성’은 하면 안되죠. 그런 건 확실히 지켜야 해요. 촬영이요? 다들 열심히 고생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입김이 나와야 해서 추위와 싸우고 있어요. 인조가 쫓겨나듯 피난을 와서 굉장히 열악하게 지냈다는 역사적 기록을 표현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실내에서도 입김이 나오고 그래요. 고생을 좀 하고 있죠(웃음).”
현재 촬영 중인 ‘남한산성’ 외에도 이병헌은 영화 ‘싱글라이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부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협녀, 칼의 기억’ ‘내부자들’ ‘미스컨덕트’ ‘밀정’ ‘매그니피센트7’, 그리고 ‘마스터’까지 개봉시키며 충무로와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이병헌은 2017년에도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정신없던 시간이었죠. 정신 안차리면 온전히 캐릭터를 못만들겠다는 위기감도 느꼈고요. 물론 지금도 항상 그 부분은 경계하고 있어요. 근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으면 꾸준히 할 거라는 생각은 안해요. 끝나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란 거죠.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완벽한 휴식을 취해보고 싶기도 해요. 근데 그걸 이겨내는 게 작품에 대한 욕심이죠.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들면 쉴 텐데 자꾸만 좋은 작품이 있으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예요.”
바쁜 스케줄 속에서 이병헌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일상의 여유, 그리고 가족이다. 특히 지난 2013년 배우 이민정과 결혼, 2015년 3월 아들 준후 군을 품에 안은 이병헌은 아들과 놀아주다 보면 저절로 리프레쉬가 된다고 말했다.
“장기간 시간이 빈다면 여행이 좋은 리프레쉬겠죠. 하지만 요즘에는 하루 이틀밖에 시간이 안나요.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게 좋은 휴식이죠. 근데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니까 리프레쉬는 짧은 시간에도 되는 듯해요. 육아 고충이요? 쉬운 파트를 맡아서 잘 몰라요(웃음). 같이 놀아주는 게 다거든요. 근데 허리가 아프긴 하더라고요. 아이랑 놀아주면 허리가 아프다는 게 힘들다는 말을 과장한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심각하게 데미지였어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