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배가 고팠다. 부둣가 저쪽에서 생선 냄새가 흘러오고 있었다. 생선 요리 식당이 보였다. 그리로 걸어가 허기진 배를 때웠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로 달려가다보니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묘지 안내판이 보였다. 어둡지만 않다면 가보고 싶은데 마음을 접어야 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무덤이 지키고 있어서인지 크레타는 내 마음을 한결 다사롭게 감싸주고 있었다. 청정한 공기에 어둠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있었고 서구의 시원 문명권에 들어섰다는 기분이 가슴을 싸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모텔을 골라 여장을 풀고는 푹 잔 다음 날엔 크노소스 궁으로 향했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에서 십 여리 밖에 위치한 이 궁을 발굴한 에반스라는 영국의 고고학자가 콘크리이트로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이 못마땅했지만 4000 여 년 남짓 전의 아득한 문명을 간직한 궁전은 침묵 속에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필 육지 아닌 섬에서 서구의 시원 문명이 싹텄을까.
그러나 이 말은 모순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문명지가 발굴된 후로 다양한 고고학적, 인문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섬에서 독자적으로 문명이 발아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문명의 빛을 발하고 있던 이집트나 오리엔트 지역의 문명들과 크레타는 접촉과 교류가 있었다. 이 섬과 육지를 오갈 정도의 선박 기술은 당시에도 풍부하게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이 서구 문명의 시원적 성격이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론 맞고 부분적으론 어폐가 생기게 된다. 이집트와 오리엔트까지 가 닿아야 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의 뿌리는 이처럼 근원이라고 여겨지던 곳에서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그 종착지가 어딘가를 알려면 이집트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 중에 초기에 특히 강렬했다고 하는 수메르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또 깊어지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서구의 시원 문명이라고 부르기 보단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서구인들은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리이스 문명에서 기원이 더 아득한 과거로 밀려갈수록 점점 불안해했다. 고고학의 발전적 성취는 서구인들의 그런 불안감과 일치하는 면도 있다. 물론 열린 마음의 서구인들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고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국한된 말이다.
그러나 아전인수의 마음으로 역사건 문명이건 진단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정확한 사실의 바탕 위에 진실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이 시대에 걸맞는 인식일 것이다. 크레타를 서구의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면에서 타당한 빛을 낼 것이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크노소스 궁전의 지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미궁을 상기시키는 듯한 곳 앞에 서니 기분이 아득해진다.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떠올라서였다.
그리이스 신화에 따르면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라는 여자를 크레타 섬으로 납치한다. 둘 사이에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가 바로 미노아 문명의 전설적인 왕 미노스이다. 미노스는 장성해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신께 제물로 되돌려 드리겠다고. 포세이돈이 받아들여 황소를 한 마리 보냈고 그 덕에 미노스는 왕이 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진노한 포세이돈이 복수한다. 미노스의 왕비에게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 사이에 괴물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 왕은 고민 끝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미궁을 만들도록 해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가둔다. 그 괴물을 죽인 영웅이 바로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의 처녀 총각들이 공물로 바쳐지는데 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섞인다. 크레타에 가서 그 괴물을 처치하고 오겠다고 나선 그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가 실 한 꾸러미를 주면서 그것을 풀어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일러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이해>의 저자 이진성에 의하면 이 신화의 밑바탕엔 크레타 문명이 미케네 문명에게 지배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들어있다고 암시한다. 즉 미케네 문명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1400년 경까지 크레타 섬을 지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이야기 속에 그런 사실이 우회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미노스의 왕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며 테세우스가 승리하게 된 이유를 미노스의 딸의 배신으로 만든 것도 어쩌면 전승자인 미케네 문명의 신화 창조자의 날조일지도 모른다. 미노스의 부인이 짐승과 불륜을 맺고 괴물을 낳았다는 얘기도 미노스 왕실에 대한 고의적 험담을 은밀히 숨겨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점은 미케네가 트로이에 대해 승리한 이야기가 배경인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도 은근히 숨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문명은 그렇게 무너지면서 신화적으로도 악의를 담당한채 뒷 문명의 재료가 된다. 지금 서구 문명의 바탕엔 그처럼 한때 화려하게 타올랐던 문명들의 아스라한 재들이 깔려 있다. 미케네 문명에 의해 지배당한 크레타 섬은 미케네와 그 이후의 그리스 문명에게 진귀한 불씨를 전해주고는 쇠퇴해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게 된다. 로마에 정복되어 속주가 되었다가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된다. 십자군 전쟁 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자 더불어 정복 당해 섬을 채웠던 교회와 수도원들이 모스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격심한 굴곡들을 겪으며 그리이스 영토가 되어선 전설상으로 있던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미노스 문명은 연속된 유럽의 첫 고리’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첫 고리는 과연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의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계속 더 이전으로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그 의미 있는 여행에 눈과 귀를 감지 않고 따라가려 한다. 지평선을 넘고 또 넘어야 진정한 시원이라고 밝혀질 아찔한 감각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을 거쳐오면서 서구의 시원격인 문명 앞에 서서 나는 이제야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에메럴드 빛 에게 해에 둘러싸인, 낮은 구릉 위의 크노소스 궁의 빛 바랜 잔해들이 비밀의 문을 더 열어 보라는듯 빛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