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펠레폰네소스 반도이다. 성경에도 나오는 고대 도시 고린도가 있고 미케네 문명이 싹튼 곳. 얼마나 그리웠으면 며칠 전에 파트라스 항을 떠나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바라보고 또 보았을까. 반도 너머로는 에게 해가 빛나고 사포라는 여자 시인이 사랑에 빠져 투신한 섬이 있고 고대 문명의 시원인 크레타 섬이 도사리고 있다.
사라진 문명은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 흔적이 후대의 문명들 속에 면면히 흐르는 것을 발견할 때 찬탄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이스 문명이 태동하기 훨씬 이전에 에게 해의 에머럴드 빛 물결에 에워싸여 탄생한 크레타 문명. 크놋소스 궁전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을 때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는 여러 개의 소문명들을 물리친 미케네 문명이 융성하게 된다. 선진 크레타 문명과 접해 받아들임과 동시에 결국 붕괴시킴으로써 에게 해를 장악하게 된다. BC 1500~BC 1200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고는 갑자기 몰락하게 된다. 도리아 족의 침입 탓이라고도 하고 그보다 더 큰 광범위한 사회적 혼란 탓이라고도 한다. 그 후 약 400년간의 암흑 시대를 거쳐 그리이스 문명이 발아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다다른 고린도 운하는 한마디로 절경이었다. 이오니아 해와 에게 해 사이에 놓인 육지를 두동강 내어 깎아지를듯 파인 절벽 밑으로 아찔할 정도로 시퍼런 바닷물이 흐른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수천 명의 죄수들을 동원해 파기를 시도도 했었다는 이 운하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심장이 뚝 떨어지는듯한 공포를 받는다.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관문이며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세계 3대 운하에 속한다고 한다.
운하를 건너 도착한 고린도에도 아고라가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의 그것보다 훨씬 심하게 마모되어 폐허의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다. 시간의 파괴력이 느껴져 애잔했다.
“미케네 문명이 이곳에서도 발달했죠. 이곳은 페니키아 인들과도 왕래가 있었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30만 명이나 살던 대도시였어요.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걸고 사역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구요.”
공포스런 자연에 압도되어서인지 가이드의 말이 더 잘 와닿았다.
고린도에서의 아쉬운 시간을 멀리 하며 관광버스는 달려나갔다. 구릉과 평원 지대를 한시간 정도 지나자 거대한 석조물이 보이는 언덕이 나타났다. 일행들과 나는 차에서 내려 걸어나갔다. 가이드가 어느 돌문 앞에 섰다.
“사자의 문입니다. 미케네 문명의 상징이지요. 트로이 원정대의 총지휘관인 아가멤논의 아버지인 아트레우스가 왕일 때 세워진 것이지요. 기원전 1350 년 경의 건축물입니다.”
책으로나 보던 듣던 트로이 전쟁이며 아가멤논의 이야기를 들으니 색다른 곳에 와있다는 실감이 깊어졌다. 저 두 마리의 사자가 무엇을 의미할까 상상하며 돌문을 통과해 걸어나갔다. 성채, 왕궁터, 원형 무대 등등이 훼손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공격하러 떠나기 전에 친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는 아내인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그 러자 또다른 딸인 엘렉트라와 아들인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복수를 갚는다. 참혹한 가정 비극이기도 한데 역사성과 버무려져 너무도 극적이라 후에 소포클레스같은 비극 작가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미케네 문명은 전투를 통해 세력을 확장했고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도 많이 건설했죠. 트로이 정벌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잘 그려져 있지요. 성이 폐쇄적인 구조인데 전투가 빈번했기 때문일 거예요.”
가이드의 말이 나의 착잡한 마음을 더욱 흔들어댔다.
이진성 저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
미케네 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문자이다. 이 시기에 쓰인 문자가 선형 문자 B형인데 그후 그리이스 문자의 원형 격에 해당된다. 이전의 크레타 문명엔 선형 문자 A형이 쓰였었다. 아직 해독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체한 문자가 선형 문자 B형이다. 그후 페니키아인들이 만들어낸 알파벳이 도입되고 변형되어 고대 그리이스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이스 신화 또한 이 시기에 활성화된다. 물론 이때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멀리는 구석기, 짧게는 신석기 시대부터 자연과 삶과의 지독한 상호작용 속에 구전되고 첨가되고 만들어져온 신화는 이 시기에 한껏 뜨거워진다. 트로이 전쟁은 그에 기름을 붓는다. 전쟁 이야기가 신화와 엮여 짜이고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기원전 8세기에 호메로스에 의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로 매듭지어진다. 현대 문명의 정신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이스 철학도 그리이스 신화에 큰 빚을 지니고 있는 바 미케네 문명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부각된다. 문명은 비록 사라졌지만 그 유품인 그리이스 신화는 철학뿐 아니라 문학으로도 거듭나고 르네쌍스에서도 중요한 펌프 역할을 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 교감 속에 거니는 미케네 유적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하고 진한 감정을 계속 선사하고 있었다. 사방의 평원에서 불어오는 장쾌한 바람과 발바닥에 감겨드는 석조물들의 숨결, 아늑한 공기 속에 섞인 풀내음. 미케네 시절 무슨 의식이 치루어졌다고 추정되는‘아트레우스의 보고’라는 돌무덤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런 마음의 파동은 진정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줄곧 고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