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이스를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서구 문명의 주춧돌임에도 그 변방으로 몰려진 사실, 더욱이 최근에 불거진 재정 위기로 인해 유럽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사실을 보면 더욱 그러해진다.
파리나 런던, 베를린 같은 유럽의 수도들과 비교할 때 아테네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인구 사백만 명 정도가 사는 자그마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무덤이 있는 필리파네스 언덕에 마음이 한껏 가 있던 나는 플라카 지구라는 아테네의 저명한 거리로 접어들었다.
멋진 색상과 디자인들로 수놓인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이곳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아고라 광장이 지척에 있어서도 유명세를 탄다. 지금은 경제 위기로 인해 그 거리도 위축되었겠지만 내가 여행을 다니던 시기에는 활기있게 북적거렸다. 풍성한 먹거리 골목 안을 뒤적거리며 걷다가 노천까페에 앉아 저녁을 먹는 기분도 좋았다. 그리이스 전통 음식인 수블라키와 레드 와인을 시켜 일행과 떠들며 먹고 마셨다. 골목 안에 꽉 들어선 테이블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기분 좋게 떠들며 취해가고 저 끝에선 누군가 부즈키라는 그리이스 악기를 감미롭게 연주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는 알딸딸하게 취해 이슥해져가는 아고라 광장으로 걸어갔다. 이천 오백년 전쯤의 풍경들이 아싸하게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이 광장에서 고대 그리이스 인들은 물건을 사고 팔고 정치가, 철학자, 예술가들이 토론과 논쟁을 벌여나갔다. 시장이며 광장인 셈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소피스트들은 궤변과 수사학을 낳았고 스토아 학파도 이곳 회랑에서 사색을 했다.
“지금 서구 문명을 민주주의라는 초석 위에 올려놓은 기원도 저 아고라에서 생겨난 것이겠죠.”
“그렇죠. 저 아고라는 프랑스 혁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살롱과도 통할 거예요. 살롱에서 루소나 볼테르 같은 선각자들이 주장과 토론을 펼치지 않았다면 유럽을 나태한 꿈에서 깨어나게 한 계몽주의나 그 계승자인 프랑스 혁명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러면 지금의 유럽도 없는 거지요. 그 살롱 역할을 한 게 지금 걷고 있는 이 아고라일 거예요.”
프랑스의 근대 여명기의 살롱도 이 아고라가 없다면 불가능했을테니 그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더욱 뭉클해졌다. 유럽 문명이 찬란한 빛을 발한 것도 고대 그리이스의 직접 민주주의 사상과 철학적 사유들 그리고 그것들이 가능하도록 한 아고라 광장에 빚진 것인데 그럼에도 현재의 아고라는 그리이스의 처지처럼 서구의 뒷전으로 밀려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일행과 그쯤에서 헤어져 오모니아 광장으로 걸어나갔다. 현대식 건물들 틈바구니에 <빛과 소리>라는 공연 티켓을 파는 여행 대리점이 눈에 띄었다. 아테네의 외곽에 있는 주점에서의 음주까지 묶어놓은 패키지 상품이었다. 구미가 당겨 티케팅을 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차를 탔다.
공연 장소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서 멀리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흰빛의 신전에 빛을 쏘아 조명 효과를 내며 스피커를 통해 스토리가 진행되는 구조였다.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낮에 본 감명도 컸지만 밤의 현대식 조명에 빛나는 파르테논은 신비감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고대와 현대가 동시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더우기 나는 레드 와인에 살짝 취해 있었다. 곁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에선 짙은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내용은 고대 그리이스의 전성기에 관한 것이었다. 펠리클레스의 위용이 번쩍이다가 서서히 무너지며 그리이스 전체가 쇠퇴해가는 구조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었다.
멋진 휘날레와 함께 봉고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공연을 함께 본 일행들과 어울려 탔다. 차는 아테네 시가지를 달려나갔다. 미처 못 본 아테네의 밤거리를 요모조모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더 달리다가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또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 속에 도착한 곳은 아담한 토속 주점이었다. 일행과 동석한 테이블엔 와인과 안주가 놓여 있었다. 잔을 부딪히며 기다렸더니 무대 위에 댄서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잔잔한 곡이 흐르면서 건장한 그리이스 남자들이 경쾌한 민속춤을 춘다. 미모의 그리이스 여자들이 이어 추며 그 남녀 댄서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며 흥에 빠져든다. 구경하는 동안 나도 절로 빠져들고 있었다. 댄서들은 무대 위로 관객들을 불러올려 손에 손을 잡고 무대 위 아래를 빙빙 돌며 춤을 추어 나갔다. 동심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춤. 저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어디론가 끊임없이 몰입해 들어가는 춤사위에서, 그리이스 정신의 한 원형과 고대의 숨결을 맛본다면 과장일까. 고대의 미학은 그처럼 단순성과 원형적 순환에 있어 보였다.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춤사위에 빠져드는 동안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본 수피 댄스가 떠오르고 있었다. 어딘지 그 두 개의 춤이 닮아 있었다. 아주 단순하며 근원적이다. 수피 댄스가 한 방향으로 계속 돌듯 그리이스의 민속춤도 단순한 동작으로 계속 원을 그리며 돌고 돌았다. 고대에는 이런 단순한 원형의 춤사위가 더욱 강렬했을 것이며 그 순환의 기운은 서양과 동양의 뿌리에서 맞닿아 있을 것 같았다. 그리이스와 터키 비약하자면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도 그런 근원적인 공통 대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유사한 뿌리에서 비롯되어 겨우 시간을 통과했을 뿐인데 지금 기독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극렬하게 싸우고 있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서글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이 기막히게 비극적인 현실을 순수했고 공통의 대지가 컸던 고대의 사회처럼 되돌릴 길이 없을까. 눈 앞에 펼쳐지는 고대의 원형이 물씬한 춤을 바라보면서 서구에 풍부한 문명 유산을 물려주고도 변두리로 밀려버린 이 나라의 처지, 공통 대지가 분명히 있음에도 화해 보다는 극단적인 분열과 싸움으로 치닫는 양대 문명을 생각하니 즐거움 속에 착잡함이 번지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