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라이프

속보

더보기

[이명훈의 4색 여행기] 친숙한 고혹. 라다크의 오래 된 곰파에서

기사입력 : 2015년10월07일 10:41

최종수정 : 2015년10월07일 10:41

황량한 고원을 지프는 달리고 달린다. 라주와 나를 빼놓고는 인적이라곤 거의 없는 자연풍광뿐이다. 외길 하나에 자연의 거친 위광이 천연의 야성을 뽐내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보이는데 대자연과 어우러진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 같다. 양복이나 스커트 같은 문명의 의복들은 이곳에서는 도리어 그 미감이 훼손될 것 같다. 체구와 엇비슷한 짐을 지고 하염없는 길을 가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잔잔한 두 여인의 수수한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놓치기가 아쉬운 장면이었다. 
시간이란 것은 그 모든 미추나 부와 권력의 부침을 담았다가 놓으며 흘러가는 것. 시간 속을 달리는 지프에 몸을 맡긴채 눈 앞에 흐르는 대자연에 취하다 보니 멀리에 빼어난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마유루 곰파지요.” 라주가 말했다.
“아. 저게 그 유명한..”
“네. 이 곰파는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곰파입니다. 범죄자도 이곳에 들어오면 보호를 받는다고 하지요.”
11 세기 경의 고승 나로파 성자의 수행지로도 유명한 곰파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기분은 라다크 여행의 또하나의 별미였다. 지프에서 내려서 걷는 길엔 이곳이 워낙 고산지역이라 숨이 조금 가빴지만 풍경은 너무도 절묘해 마치 화성에 와있는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입구에서 동자승이 반겨준다. 표정과 미소가 너무도 천진하고 맑으며 먼 산을 배경으로 티끌 한 점없이 빛난다. 라주는 남아 쉬고 나는 그를 따라 걸었다.
부엌이 눈에 띄길래 들어섰다. 거기에도 동자승들이 모여 있었다. 열살 안팎 되어 보이는 남자 동자승들이 군불을 때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얼굴들이 역시 하나같이 뽀얗게 귀엽고 눈빛이 맑았다. 팥죽색의 승복 차림으로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해맑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나를 안내하던 동자승을 따라 곰파의 내부로 향했다. 붉은색, 갈색, 보라색의 천들이 천장에서부터 풀어헤쳐지고 청수를 담은 녹그릇들이 신단에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었다. 불이 켜진 하얀 초들이 가득 늘어서 있어 오랜 신비와 영성을 담은 듯 그윽하고 적요해 보였다. 신상들도 많았는데 동자승이 그 이름 하나하나를 알려주었다. 성스런 정기에 감응되어 가는 동안 어디선가 기묘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동자승을 재촉해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스님 두 분이 괴상한 모양의 악기들을 연주하며 경을 외고 있었다.
“라마교의 악기예요.”
동자승에게 눈을 찔금 하니 알려주었다. 큰북과 심벌즈 비슷하긴 하지만 또다른 악기들로 정말로 가슴 속을 녹일 정도로 진한 울림과 떨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며 스님들은 무릎에 놓은 경전을 따라 경을 외고 있었다. 그 소리가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스님들이 외는 경보다 대여섯배는 빠른 듯했다. 처음엔 경박한듯도 해서 웃음마저 나올뻔했다. 몸채는 좋은 분들이 나비가 날라가는 듯 빨리 외우는 모습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 모든 편견을 부순 곳에 그들의 경은 경미한 노랫가락처럼, 천상으로 날아가고 싶은 영혼의 날개짓처럼 이 짙은 선율의 공간 속에 고혹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아주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숙해져 있었다.
왜 이토록 익숙하고 친근할까. 절이나 교회, 힌두 사원이나 모스크 안에 있을 때보다 이곳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티벳으로 훌쩍 날아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소나마르그에서 마냥 바라본 티벳 풍의 풍경, 곰파 안의 다채로운 이미지의 불상들, 성황당의 깃발처럼 눈에 익은 묽은 물감의 삼색기, 만다라, 파란 창공...티벳엔 뭔가가 있다. 아니 물벡 너머의 이곳 동부 라다크엔 뭔가가 있다. 불교에서는 뭔가가 삭제된 느낌이 드는데, 그것의 충만한 원형질이 라마교에서 발견된다. 힌두이즘의 징그러운 억지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곰파 안의 다양한 색상과 형상의 불상들. 오랜 세월에 절어 고혹한 윤기가 도는 문양들과 불경들. 오묘한 입체 균형 속에 삼라만상의 묘법을 박아놓은 만다라. 그것들은 영적인 기운이 짙게 배어 있듯 그러한 기운과의 교감 속에 신묘하게 창출된 작품이란 느낌이 든다. 문명과 고립된 고원의 대지에 마음에 쏙 드는 종교 하나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서자 노인이 베를 짜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나 수수한 모습 역시 천진하기 그지 없는 동자승과 진배없어 보였다. 이곳에선 사람들을 늙게는 하지만 낡게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늙으면서 낡아가는 사람들이 무성한 문명 속에 살다보니 그런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 단단한 편견을 또한 단숨에 깨주는 곳에 나는 지금 서 있는 것이다. 고아하게 짜아지는 베와 그 베처럼 단아한 노인의 수수한 얼굴 너머에 지금 내가 막 빠져나온 고혹한 향기의 곰파와 천연미로만 빛나는 산지가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외교부 1차관 인사 충격파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국장급에서 일약 차관으로 직행한 박윤주 외교부 1차관 임명에 외교부가 술렁이고 있다. 외교부 조직과 인사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1차관에 현재 실장급(1급)보다 후배 기수인 박 차관을 전격 기용한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이번 인사는 파격을 넘어 충격에 가깝다. 박 차관은 전임 김홍균 1차관보다 외무고시 기수로 11기 아래이며 나이도 9살이나 어리다. 박 차관이 미국 관련 업무를 오래했다고는 하나 본부 주요 국장도 거치지 않았고 공관장도 특명전권대사가 아닌 총영사를 지냈다. 기수나 나이, 경력 모든 면에서 전례가 없는 인사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박윤주 신임 외교부 1차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첫 출근을 하고 있다. 2025.06.11 gdlee@newspim.com 퇴직한 외교관 출신의 한 인사는 "차관이 실장보다 후배였던 경우는 외교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면서 "이 정도 인사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보성 출신인 박 차관은 민주당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정권인수위원회를 거쳐 이종석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밑에서 일했다. '자주파·동맹파 파동'으로 외교부 북미국장에서 물러난 위성락 현 국가안보실장도 당시 NSC에서 함께 일했으며, 위 실장이 주미 대사관 정무공사일 때도 워싱턴 공관에서 함께 근무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미국 심의관과 인사기획관을 거쳐 애틀랜타 총영사로 임명됐지만, 1년여 만에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교체됐다. 외교부가 술렁이는 이유는 단순히 의외의 인물이 발탁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 차관 임명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전례없는 파격 인사로 조직에 충격을 가하고 강도 높은 조직 개편과 체질 개선을 추진하기 위한 인사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민주당 정부가 집권했을 때마다 개혁의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외교부를 '손보려는' 시도도 자주 있었다. 노무현 정부때는 중앙인사위원회·행정자치부 출신의 차관을 임명해 조직 개편을 시도했고, 문재인 정부 때는 주미 대사관의 한·미 정상통화 유출사건을 계기로 외교부 내 '친미 라인'을 제거하기 위해 과도한 징계를 가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외교부의 한 중견 간부는 "이번 차관 인사가 태풍의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외교부 내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박 차관 임명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선한 충격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opento@newspim.com 2025-06-11 16:23
사진
[이재명의 사람들]김현지 총무비서관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주일이 지난 가운데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급 인선도 추가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재명 대통령 인선의 핵심은 '실용'이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해야 하는 정부인 만큼 기존에 손발을 맞춰온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경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성남·경기라인 인물들은 정부 요직에 내정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총무비서관으로 내정된 김현지 전 보좌관이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 전 보좌관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이던 때 시민운동을 하면서 인연이 닿았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8년 당시 변호사이던 이 대통령이 설립을 주도한 성남시민모임에 합류했으며 이곳에서 집행위원장, 사무국장 등을 거쳤다. 이 대통령이 정치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던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도 함께했다. 성남시립병원추진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한 것. 이후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에 당선된 후에도 시민운동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2011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환경·도시 전문가 등이 주축이 된 민관 협력 기구 '성남의제21'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이 대통령이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에야 도청 비서관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이 대통령을 보좌하기 시작했다. 김 전 보좌관은 '그림자 보좌'로 유명하다. 본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성향이다. 시민운동가로 활동할 때는 지역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이 대통령이 국회에 입성한 이후에는 언론 노출을 지양해왔다. 또한 김 전 보좌관은 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김 전 보좌관은 리스크 관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고 조심성이 강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각각 대장동 사건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사법리스크에 휘말리면서 당직을 내려놓은 영향도 있다. 김 전 보좌관이 정 전 실장과 김 전 부원장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김 전 보좌관이 맡게 될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실 예산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공무원 직제상 1급에 해당한다. 특히 대통령실 2급 이하 행정관 등 실무진 인사에 관여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수석급 인선에는 강훈식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강유정 대변인 등 비교적 친명(친이재명) 색채가 옅은 통합형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실무라인에는 김 전 보좌관처럼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복심'들을 배치하고 있다. 대통령실 1부속실장에 내정된 김남준 전 당대표 정무부실장, 의전비서관의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 인사비서관의 김용채 전 보좌관 등이 대표적이다. 원외에서 이 후보를 후방지원한 더민주전국혁신회의 핵심인물들도 이재명 정부에서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용조 혁신회의 집행위원장은 대통령 국가안보실 비서관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강위원 혁신회의 상임고문은 전남 경제부지사에 내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 정부와 더 긴밀히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heyjin@newspim.com 2025-06-11 17: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