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나가르를 벗어나 라다크 방향으로 지프는 달려나갔다. 운전 기사는 이름이 라주인데 나이는 서른 다섯 살이고 딸린 식구가 여섯이나 된다고 한다. 고된 노동의 댓가가 고작 박봉이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군다나 겨울이면 카슈미르가 너무 추워 관광객이 더욱 없기에 델리나 잠무로 가서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도로는 곳곳이 깨지기도 하고 차에 치여 죽은 염소가 가로막는 둥 엉망이다. 그럼에도 주변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차창을 열어 감상을 하며 달리다보니 양떼가 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 양들도 겨울이면 집시를 따라 하산을 하지요.”
라주의 말마따나 얼마 후면 집시들이건 양들이건 보다 따스한 곳으로 이주할 것이다. 텅 비어질 산야를 바라보다가 인적이라곤 없는 고원을 두어 시간 내리달리자 자그마한 마을이 우릴 반겼다. 소나마르그라고 불리는 해발 2800 미터의 고산 마을이다.
“옛날에는 실크로드의 중간 관문이었지요. 지금은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으로 얼룩져 곳곳에 군사시설이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마을은 을씨년스러웠지만 그 너머 치솟은 험준 산맥은 티브이에서나 본 티벳 풍이 역력했다. 하긴 저 산맥은 히말라야와 연결되고 그 너머는 티벳이다. 히말라야 남쪽의 라다크는 티벳과 경치가 비슷하며 <오래된 미래>라는 유명한 책에서도 인류의 고향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푸르른 색상의 산야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그 너머 하얀 위용을 자랑하는 설산. 그런데 이 마을부터 도로의 상황이 확연히 바뀐다고 라주가 말했다. 여기서부터 동쪽 방향으로 향한 도로폭이 좁아진다고. 게다가 인도의 군용 트럭들의 통과가 우선시 되었기에 우리는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통행이 가능해지자 대기하고 있던 차량들이 서로 앞서 가려고 경적을 울려대며 달려나갔다. 우리 지프는 다섯번째로 달리다가 가속을 붙여 추월을 시작했다. 라주는 속도광이었다. 하지만 운전 솜씨는 기가 막혔다. 비포장 산길에 바로 곁은 천길 낭떠러지. 상태조차 좋지 않은 그 길에서 앞차들 역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주가 속도를 더 올려 좁은 외길의 우측을 파고들어 앞차들을 추월해 내는 동안 손에 진땀이 흘렀다. 여차하면 죽음이다. 위험천만한 스릴들을 통과해 결국 선두에 섰는데 전망은 실로 기가 막혔다. 쪽물이 뚝뚝 떨어질 듯 새파란 하늘 아래 장대한 파노라마의 산악이 연두색, 초록색, 주황색 등등으로 변이되며 끝없이 펼쳐지고 바로 곁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는 초록의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환상적인 경관 속을 달리고 달려 우리는 드라스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한겨울에 사람이 사는 마을 중 시베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추운 곳이지요. 해발 3230 미터의 고산지역으로 영하 45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도 있어요. 겨울도 긴데 추워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집집마다 지하실을 파 그곳에 내려가 살지요.”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라주를 따라 한 집에 들어가 지하실에 내려가 보았다. 어둑했으며 구석에 고구마 같은 게 쌓여 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일 것이다. 저 곳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데 눈이 올 때는 마을 자체가 눈에 덮히는 때도 있다고 했다. 언뜻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겨울이면 눈에 쌓여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가 날씨가 풀리면 되살아나는 마을. 그러나 그 혹독한 환경 속에서 지하실에 들어가 겨우 견디며 삶의 불꽃을 지피는 이들은 나의 그 어떤 상상도 벗어난 곳에서 자신들만의 무늬를 빚어낼 것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드라스에서 점심을 먹고 지프에 실려 또 달려나갔다. 역시 인적이라곤 전혀 없는 고산 외길을 몇 시간 달린 후에야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카르길 마을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 마을로 두 나라 사이에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지요. 저기 두 개의 산봉우리가 보이죠. 오른쪽이 인도의 것이고 왼쪽이 파키스탄의 것입니다.”
마을에 들어서자 참상의 후유증이 돋보이고 있었다. 길 가의 바위에 총알 자국들이 난무했고 사람들의 얼굴빛이 무거웠다. 곳곳에서 파괴된 건물들을 수리하고 있었다. 군인들과 군용 트럭이 눈에 많이 띄었고 생계를 위한 날품팔이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을 한바퀴 돌때도 두려움이 엄습했다. 숙소에 다다르자 거기에만 들어와 있던 불도 정전이 되어 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침대에 누우니 잠이 안온다. 마을 전체가 깜깜한 암흑 속이다. 전쟁이 났을 때 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를 상상하니 아찔해졌다.
다음 날 새벽 어둠 속에 세수를 하고 밖에 나오니 라주가 지프의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늘이 어듬푸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고 공기는 선선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카르길을 벗어나자 그곳의 바위에도 총알 자국이 보였다. 이제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연두, 초록, 주황 등등의 색에서 황갈색이나 암갈색, 회색 등으로.
색상이 변이되어 가는 경이로움에 취해 창 밖을 마냥 바라보는 사이에 지프는 그 광활한 풍광 속의 한 실금일뿐인 길 위를 달리고 달려 물벡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입구에 거대한 마애불이 세워진 곰파(사원)가 있었다. 티벳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제부터 새로운 문화, 색다른 종교의 땅이 펼쳐진다고 한다. 소나마르그, 드라스, 카르길에서 잠깐잠깐 머물며 지나오는 동안 이슬람 문화가 역력했다. 인도의 북쪽은 힌두교는 약하고 이슬람 문화가 풍성하다. 이제 그 문화도 물벡에서 끝나고 라마교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