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는 많은 차이점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는 형제로 만나며 사막 종교로서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에서 기독교 문화의 원류를 일부라도 느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유럽의 기독교와 달리 그리이스와 터키에서 발전된 그리이스 정교나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문화에는 소박하고 둥글둥글한 맛이 있다. 비잔틴의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상은 마치 불상을 보는 듯한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소박하고 부드러운 맛은 코란의 독경이나 이슬람 노래를 들을 때도 느껴진다. 원을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듯한 공(空)의 가락. 이런 원형적이며 순환적인 리듬은 인간의 마음이 그것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단순한 사실로 보더라도 마음의 주소라 할 수 있는 모든 종교들의 공통 아닐까.
그런데 왜 기독교는 직선적인 형식을 띠게 되었을까. 바울과 헬레니즘을 통해 로마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로 화하기 전의 예수님 말씀에는 이러한 소박하면서도 둥글둥글한 사랑의 질감이 풍성히 담겨 있지 않았을까. 예수가 사생애 때 불교 국가인 인도를 외유했다고 적은 기록들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런 가정은 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특정 종교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종교와 종교의 사이이다. 그리고 시간의 전개에 따라 닫힌 공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해 경직과 황폐함의 노정을 따르기 마련인 바 모든 종교의 굴절 가능성이다. 단순하게 보면 상이한 종교들이 서로 원으로 만나면 포용과 창조적 탄력의 공간이 될 관계가, 각으로 만나 갈등과 상잔의 비극 공간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착잡한 분노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기독교는 자기 고향을 떠나 헬레니즘의 화살을 타고 날아갔다고 말할 수도 있음직하다.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화살의 끝에 매달려, 그 속도에 홀려 허공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양이 현대 서구문명의 한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허공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고도로 머리를 쓰고 과학을 발전시켜 이루어낸 놀라운 성과들의 긍정성과 함께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스탄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 중의 하나인 그랜드 바자르에 들어섰다. 피혁, 도자기, 악세사리, 의류를 파는 숍들이 미로를 형성하며 즐비하게 놓여 있는 대형 전통 시장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이’가 숨어 있다. 즉 터키 중부를 지나는 육상 실크로드는 이 도시까지 이어진다. 동시에 이 도시는 해양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이 도시에서 서로 만나기에 이같은 대형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에 입각해서 보니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펼쳐지는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 풍경이 진짜 두 개의 실크로드의 사이로 보이는 것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육지와 바다를 통해 이곳에 드나들던 숱한 상인들과 상품들의 흐름이 솔솔 와닿는 기분이었다.
아이 쇼핑과 더불어 몇 개의 기념품을 산 한 후에 바깥으로 나오자 칙칙한 뒷골목이 나타난다. 낡아 지저분한 건물들과 삭아버린 물건, 궤짝, 넝마, 떠들석한 사람들...정이 간다. 나는 왠지 이런 것들에 친밀감이 강하고 마음이 동한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긴 언덕길을 따라 보스프러스 해협으로 내려갔다. 일몰이 지고 있었다. 바닷물과 배들을 불태우려는듯 붉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 위로 갈매기들이 떠돈다. 어시장은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물들어간다.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오리엔탈 하우스라는 유명한 클럽이 부근에 있다고 들었기에 찾아 들어섰다. 유명세를 탄 클럽답게 엄청 넓은 홀에 테이블마다 관광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혼자 왔기에 자그마한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남자와 동석이 되었다. 인사를 나눴는데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유학을 온 청년이었다. 전율되는 느낌이었다. 말로만 듣던 비극적인 땅의 사람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스탄불 대학의 대학생으로 여기까지 공부하러 온 것을 보면 제법 잘 사는 집의 아들인 것 같았다. 부모형제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데 안전한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의 눈동자는 반짝이면서도 심하게 흔들리곤 했는데 고국과 가족에 대한 불안이 잔뜩 어려서인 듯 했다.
무대는 다채롭고 흥미롭게 꾸며져 있었다. 관능적인 밸리 댄스에 이어 수피 댄스가 시작되었다. 일품이었다. 이슬람의 신앙을 표현하는 명상적인 춤으로 한 방향으로 계속 돌고 있었다. 아까 느꼈던 원형적인 공(空)의 가락이 육화된듯한 몸짓이었다. 바라볼수록 몰입되어 갔다. 검은 옷은 죽음을 나타내고 흰 옷은 수의를, 머리에 쓴 하얀 색의 길쭉한 모자는 묘지에 세워두는 비석을 상징한다고 한다. 춤 자체가 하나의 종교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테이블마다 국기가 꽂혀 있었는데 실로 많은 나라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이스라엘, 러시아, 아프리카, 터키, 일본, 미국, 유럽국가 등등. 그들 모두가 수피 댄스를 즐기고 있었다. 저 다채로운 나라들의 사람들의 마음 역시 원형적인 공의 가락을 음미하고 있을 듯 했다.
수피 댄스가 끝나고 몇 개의 민속 노래들로 흥겨운 축제를 이루어가더니 갑자기 아리랑 노래가 울려퍼진다. 사회자가 밴드에 맞춰 아리랑을 크게 부르며 내게 다가와 마이크를 건넨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이미 봐왔기에 나는 일어나 마이크를 받아들고는 뱃심에서 나오는 최고조의 성량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관광객들이 우렁찬 박수 소리로 환호해주었다. 팔레스타인 청년도 조금 전의 불안한 눈빛이 사라진채 너무도 기쁜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나를 껴안는다. 감격스러웠다.
굳었다가 기뻤다가 뭔가 근본적인 불안을 내재한 듯한 팔레스타인 청년과 작별하고 자정 무렵의 거리에 나섰다. 야경의 조명을 받아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저 멀리에 있었다. 다가갈수록 경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슬람의 신비로움은 밤에 더욱 또렷하다. 청정한 어둠 속에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고 블루모스크 첨탑 주위를 검은 새들이 헤엄치듯 느리게 날고 있었다. 문명이 이럴 수가 있구나,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게 해에 뜬 크레타 섬을 비롯한 유서 깊은 섬들, 에페소스, 파묵칼레, 카파도키아...고대 문명들은 적어도 자연미에 있어 고도의 아름다움과 청정, 신비를 지녔을 것이다. 감질 나는 야경 속에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또한 그 사이를 바라보며 이스탄불의 짙은 정서에 나는 잠겨가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이슬람에서 기독교 문화의 원류를 일부라도 느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유럽의 기독교와 달리 그리이스와 터키에서 발전된 그리이스 정교나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문화에는 소박하고 둥글둥글한 맛이 있다. 비잔틴의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상은 마치 불상을 보는 듯한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소박하고 부드러운 맛은 코란의 독경이나 이슬람 노래를 들을 때도 느껴진다. 원을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듯한 공(空)의 가락. 이런 원형적이며 순환적인 리듬은 인간의 마음이 그것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단순한 사실로 보더라도 마음의 주소라 할 수 있는 모든 종교들의 공통 아닐까.
그런데 왜 기독교는 직선적인 형식을 띠게 되었을까. 바울과 헬레니즘을 통해 로마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로 화하기 전의 예수님 말씀에는 이러한 소박하면서도 둥글둥글한 사랑의 질감이 풍성히 담겨 있지 않았을까. 예수가 사생애 때 불교 국가인 인도를 외유했다고 적은 기록들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런 가정은 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특정 종교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종교와 종교의 사이이다. 그리고 시간의 전개에 따라 닫힌 공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해 경직과 황폐함의 노정을 따르기 마련인 바 모든 종교의 굴절 가능성이다. 단순하게 보면 상이한 종교들이 서로 원으로 만나면 포용과 창조적 탄력의 공간이 될 관계가, 각으로 만나 갈등과 상잔의 비극 공간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착잡한 분노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기독교는 자기 고향을 떠나 헬레니즘의 화살을 타고 날아갔다고 말할 수도 있음직하다.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화살의 끝에 매달려, 그 속도에 홀려 허공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양이 현대 서구문명의 한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허공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고도로 머리를 쓰고 과학을 발전시켜 이루어낸 놀라운 성과들의 긍정성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이’가 숨어 있다. 즉 터키 중부를 지나는 육상 실크로드는 이 도시까지 이어진다. 동시에 이 도시는 해양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이 도시에서 서로 만나기에 이같은 대형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에 입각해서 보니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펼쳐지는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 풍경이 진짜 두 개의 실크로드의 사이로 보이는 것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육지와 바다를 통해 이곳에 드나들던 숱한 상인들과 상품들의 흐름이 솔솔 와닿는 기분이었다.
아이 쇼핑과 더불어 몇 개의 기념품을 산 한 후에 바깥으로 나오자 칙칙한 뒷골목이 나타난다. 낡아 지저분한 건물들과 삭아버린 물건, 궤짝, 넝마, 떠들석한 사람들...정이 간다. 나는 왠지 이런 것들에 친밀감이 강하고 마음이 동한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긴 언덕길을 따라 보스프러스 해협으로 내려갔다. 일몰이 지고 있었다. 바닷물과 배들을 불태우려는듯 붉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 위로 갈매기들이 떠돈다. 어시장은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물들어간다.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그는 이스탄불 대학의 대학생으로 여기까지 공부하러 온 것을 보면 제법 잘 사는 집의 아들인 것 같았다. 부모형제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데 안전한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의 눈동자는 반짝이면서도 심하게 흔들리곤 했는데 고국과 가족에 대한 불안이 잔뜩 어려서인 듯 했다.
테이블마다 국기가 꽂혀 있었는데 실로 많은 나라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이스라엘, 러시아, 아프리카, 터키, 일본, 미국, 유럽국가 등등. 그들 모두가 수피 댄스를 즐기고 있었다. 저 다채로운 나라들의 사람들의 마음 역시 원형적인 공의 가락을 음미하고 있을 듯 했다.
수피 댄스가 끝나고 몇 개의 민속 노래들로 흥겨운 축제를 이루어가더니 갑자기 아리랑 노래가 울려퍼진다. 사회자가 밴드에 맞춰 아리랑을 크게 부르며 내게 다가와 마이크를 건넨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이미 봐왔기에 나는 일어나 마이크를 받아들고는 뱃심에서 나오는 최고조의 성량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관광객들이 우렁찬 박수 소리로 환호해주었다. 팔레스타인 청년도 조금 전의 불안한 눈빛이 사라진채 너무도 기쁜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나를 껴안는다. 감격스러웠다.
굳었다가 기뻤다가 뭔가 근본적인 불안을 내재한 듯한 팔레스타인 청년과 작별하고 자정 무렵의 거리에 나섰다. 야경의 조명을 받아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저 멀리에 있었다. 다가갈수록 경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