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야간버스에 몸을 싣고 카파도키아를 떠났다. 달디단 잠에 빠졌다가 새벽에 눈을 뜨니 창 밖으로 푸르른 물이 쏟아질듯 하다.
“뭐지요?”
“보스포러스 해협입니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대답에 감동이 물결쳤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해협. 그 두 이질적인 문명 사이의 경계를 바라보는 마음도 푸른 빛으로 도금되는 것 같았다.
“뭐지요?”
“보스포러스 해협입니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대답에 감동이 물결쳤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해협. 그 두 이질적인 문명 사이의 경계를 바라보는 마음도 푸른 빛으로 도금되는 것 같았다.
나는 천 몇백년 되는 시간 동안 저 자리에서 역사적인 변모를 겪어온 살아있는 화석 같은 건축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저 화석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비잔틴 문명의 찬란함 역시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채 말이다. 나는 안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잘 보시면 앞에 놓인 제단의 방향이 좀 비뚤게 되어 있지요. 성당을 모스크로 만들 때 메카를 향하게끔 방향을 맞춘 거지요.”
어떤 관광팀의 가이드의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더니 과연 제단의 방향이 좀 달라 보였다. 저 변형된 곳으로 주욱 나가면 메카 즉 이슬람의 발원지가 나오는 모양이다. 신기하다. 역사는 이런 것인가 보다.
1453년. 이스탄불 뿐 아니라 세계의 지도를 또한번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오스만터키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함으로써 비잔틴 제국이 몰락하는 것이다. 오스만터키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고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야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진 않는다. 대신 이슬람을 상징하는 네 개의 첨탑을 성당의 사방 둘레에 세우게 하는 한편 내부에서도 기독교 성상들을 철거시키고 저처럼 알라를 위한 변형을 꿰하는 것이다. 아야소피아는 그렇게 회교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지금까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내부를 둘러보니 묘미가 더욱 깊어져 갔다.
아야 소피아의 맞은편에 있는 블루모스크이다. 아야소피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는데 오스만터키 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세는 아야소피아를 능가하는 회교 모스크를 짓고 싶어한다.
블루모스크는 1609년에 착공되어 1616년에 완공된다. 스테인드글라스와 2만여 개의 푸른색 타일로 내부가 장식되었다고 해서 블루모스크라고 불린다. 아야소피아가 4개의 첨탑으로 되어 있는 반면 이 모스크는 2개를 더해 6개의 첨탑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아야소피아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계단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경남 밀양에 있는 영남루에 오르는 계단이다.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영남루는 밀양의 남천강 옆의 낮은 산에 고적하게 놓여 있다. 몇 년전에 그곳으로 오를 때 걸은 저 계단은 보는 순간 내 마음에 각인되어 오랜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보통의 계단 형식과 완만한 경사길이 겹치도록 계단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보통 계단을 걸을 때처럼 걸을 수도 있고 휠체어도 지그재그로 오를 수 있다. 나는 아름답다는 영남루보다 그곳을 향한 저 조화로운 계단이 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번갈아 보며 밀양의 그 소담스런 계단이 떠오르는 것은 흔치는 않을 일 같다. 파괴보다는 조화, 공존, 상생의 가치는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며 우리의 마음을 한결 맑게 고양시켜준다. 이스탄불은 아름다운 공존으로 인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인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