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고에서 우리를 내려준 기사 겸 가이드가 말했다. 정말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그 영화의 배경 속으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버섯처럼 생긴 바위산들이 익살스런 모양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동화작가와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다가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커다란 버섯 바위에 그와 나뿐이었다. 그도 나와 끼가 비슷한지 하늘을 우러러보더니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동화작가 다웠다. 엊저녁 괴레메의 저녁 노을에 적셔질 때의 맛을 알고 있는 나도 웃통을 벗었다. 우리는 맨 몸으로 버섯 바위의 정상에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만끽하며 놀았다.
“봉고 떠나. 내려와.”
그의 미모의 애인이 저 아래에서 웃으며 외친 것은 한참 후였다. 웬만한 곳은 동행하다가 이 바위산은 높고 가팔라 우리 둘만 오른 것이었다. 동화작가와 나는 웃옷을 서둘러 입고 봉고가 있는 것으로 달려 나갔다. 십 여분은 기다렸을 일행 중 단 한명도 핀잔을 주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모두가 배려 깊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미안한 마음 속에 가슴이 따스하게 차올랐다.



“이 지하도시를 처음 만든 것은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까지 히타이트 족이라고 추정된답니다.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면서 규모가 점점 확장되어 나가는 거죠.”

“초기 기독교인들도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도 많이 살았지요.”
진한 비애감과 함께 동굴 안을 돌아보니 교회 뿐 아니라 그에 딸린 식당, 강당, 주거지 용도의 공간이 어둑한 음영 속에 펼쳐져 있었다. 성경을 가르쳤을 학교 공간과 함께 밥을 해 먹은 흔적으로서의 연기 그을린 자국은 어제의 석굴 교회에서처럼 아리게 눈길을 끌었다. 이중삼중의 함정들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는데 가령 적이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파놓은 첫번째 함정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 또다시 대비한 치열함의 결과일 것이다. 생사가 오가는 궁극의 한계에선 그렇게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처절 앞에 먹먹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데린쿠유에서 진지한 시간을 보낸 다음 우리는 밖으로 나와 봉고에 실려 달려나갔다. 광활한 중부 대륙.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모래벌판이 모진 척박성을 드러내며 열을 달구고 있었다. 달리고 달려 어느 사원 앞에서 봉고는 멈췄다.
“카멜 사원입니다. 실크로드가 이곳을 지나갔지요. 상인들과 낙타가 이곳에서 쉬다가 또다시 먼 길로 떠났곤 했지요.”
실크로드! 감개가 무량했다. 아득한 시대의 동과 서의 교류. 중국으로부터 로마까지 이르는 비단길이 바로 이곳을 지나는 것이다. 비단길. 그 말이 내게 주어온 끝 모를 풍성함이 새삼 밀려와 가슴을 두근거리며 서 있던 나는 동화작가와 함께 사원의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꼭대기에 서서 동쪽을 그 끝까지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눈길을 돌려 서쪽 방향도 바라보았다. 아득한 시절부터 그 길을 오간 무수한 사람들의 삶의 내음이 조금은 만져지는 듯 했다. 동화작가도 무슨 상상을 속으로 펼치는지 아무 말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버섯 모양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했고 그 후엔 끔찍함을 안고 있는 지하 도시를 본 탓에 더욱 불거진 바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즐거웠던 대화도 일체 없이 황무지 속에 장구하게 뻗은 실크로드가 전해주는 무언의 소리에 귀를 마냥 기울이고 있었다. 저 육로의 길로 비단이 지나갈 때 저 너머 딱딱한 암반 속에선 밥을 짓고 적을 따돌리며 살림을 꾸려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석양빛보다도 붉은 격정마저 내 가슴에 솟구치는 듯했다. 뒤늦게 따라 올라온 동화작가의 미모 애인은 선글라스가 제공하는 검은 배경 속에 실크로드를 또다른 맛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