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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의 4색 여행기] 축제와 일상 속에 도사린 낯설고도 깊은 그늘

기사입력 : 2015년02월27일 12:08

최종수정 : 2015년03월25일 09:44

도르제나 콘소는 에티오피아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들이다. 이 나라의 남쪽은 원시부족들로 유명하다. 우리는 더 깊숙이 가보기로 했다. 투르미(Turmi) 마을은 콘소에서 남서 방향으로 차를 두 세시간 더 몰아야 닿을 수 있다. 우리가 투르미의 숙소에 도착하자 그곳 주인은 운이 좋다며 하메르(Hamer)라는 원시부족의 성인식이 마침 오늘 있으니 가 보면 좋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풀고 다시 차에 올라 달려나갔다. 비포장 도로에서 빠져나가 어느 샛길로 접어들었다. 잡목숲 속으로 한참 들어가자 건천이 나타났다. 차를 세워 두고 걸어나갔다. 멀리 원주민들이 건천 너머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발이 푹푹 꺼지는 모래뻘을 부지런히 걸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알 수 없는 신명이 온몸을 훑고 나가는 것 같았다. 붉은 색 염료를 머리에 바른 그들은 누군가의 주문과도 같은 선창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차박차박 걸어나갔다. 팔과 발목, 목에 두른 장신구들에선 찰랑찰랑 소리가 요란했다. 원시적인 분위기가 물씬했다. 목전에서 듣는 원시부족의 노랫소리는 초혼이라도 하는 듯 음악 이상이었다. 그들을 따라 이삼십 분 숲 속 깊이 들어가자 더욱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떼가 모여 있고 그 둘레를 먼저 온 여인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노랫소리와 장신구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어디선가 짝짝 채찍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 쪽으로 옮기자 장성한 남자가 손에 긴 나무 회초리를 들고는 자기 앞을 지나는 여인들의 등짝을 내리치고 있었다.
여인들은 피하거나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은채 오히려 당연한 듯 아니 원하기라도 하는 듯 적극적으로 맞고 있었다. 채찍이 얼마나 강한지 그녀들의 등은 쩍쩍 갈라져 피가 맺혀 있었다. 연로한 여인들은 평생 얼마나 맞아 왔는지 등가죽이 거북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가슴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쓰리게 타들어가는데 방금 맞은 여인들이 원을 이루고 모여 땅을 구르며 더욱 신명나게 춤판을 벌여 나갔다. 고통이 춤의 안주라도 되는 듯 그들의 얼굴은 밝았으며 그런 안주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집단 최면이나 집단 광기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런 인위적인 개념 너머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생각 자체가 인권 유린이니 그에 대한 방종이니 하며 공격받을 수 도 있겠지만 그런 범주를 넘어서는 진한 파토스가 그들의 행위에 담겨 있는 듯 했다.
이방인에 불과한 나로선 그들의 가슴 속에 수천 년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내려온 뜨거운 피의 강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무지 혹은 옅은 이해의 밖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축제에 계속 몰입해 나갔다. 물론 자본주의적 방식이 이곳까지 파고들었기에 그들의 행위에 일정량의 상술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내면에 이글대는 존재의 강은 천연의 계곡을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장성한 남자들이 뿔을 거머쥐며 소들을 일렬로 세워 나갔다. 거친 드잡이가 마무리 되자 겨우 앞만 가린 소년 하나가 도열한 소들 앞에 섰다.

앞가리개마저 벗어버려 완전히 나체가 된 소년이 달린다. 소의 옆구리를 밟고 올라 뛰어오른다. 열 마리쯤 되는 소들의 등을 타며 내달린다. 소들은 요동을 치며 성난 뿔로 여차하면 소년의 몸을 치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 실제로 죽은 소년들도 많다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 위험 속으로 소년은 달리는 것이다. 반대편에 다달아 끝났다고 생각되자 또다시 저편으로 소들의 등을 타고 달린다. 소년은 저 죽음의 등을 수차례 뛰어넘으며 어른이 되는 것이다. 소년이 성공하자 춤사위는 더욱 요란해지며 소년의 가족뿐 아니라 마을 사람 전체가 더욱 축제 분위기로 무르익어 간다. 

축제가 끝나고 그들의 뒤를 따라 숲을 빠져나오며 생각들이 흘러나갔다. 원시부족들의 문화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입술을 째서 접시를 끼우는 행위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무르시(Mursi) 족에 있고 목에 금속고리들을 겹겹이 두루는 전통도 카렌족에 존재한다. 전자에 대해선 그 행위가 아름다워서라든가 적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섭게 보이기 위해서라든가 악령이 입을 통해 들어오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식의 설명이 따른다. 후자에 대해선 맹수들이 여자들을 물어가 삼키지 못하게 하려 한다든가 다른 부족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든가 하는 식의 설명이 따른다. 그러나 그 어떤 인류학적 지식들을 다 더한다해도 원시부족 문화의 진실에 정확히 도달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해석 너머에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에게 낯선 구석이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낯선 면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해석들이야 가능하지만 그 전체를 또다시 비웃는듯한 시선을 느낀다면 내가 잘못된 것일까. 눈 앞에서 본 하메르 부족의 성인식 축제는 그런 면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일상 생활이 궁금해진 나는 다음 날 아침 일행과 함께 그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숲 속의 드넓은 땅에 움막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마당에는 돌을 모아 화덕을 만들었고 나무를 이용해 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남자들은 눈에 많이 띄지 않았는데 소나 염소들을 방목하러 멀리 떠나 늦게나 돌아온다고 했다. 생활은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엔 역시 밝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일상은 어제의 잔혹한 폭력을 무색케 할 정도로 고요했으며 집단 광기라도 되는 듯한 열기는 그림자마저 비취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 같은 정서마저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이면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지하수가 또 나름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면서 필요에 따라 주기적으로 성인식 같은 축제를 열어나갈 것이다. 

일상과 축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그들의 일상이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빚어낸 소박한 지혜의 산물이라면 그들의 축제 역시 뭔가의 문제 의식 속에서 고안해낸 고도의 산물일 것이다. 자칫 불합리하게 보이는 면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기 전에 그것이 불합리하게 보이는 우리의 시각을 먼저 들여다 보는 것이 옳은 순서일 것이다. 우리의 시각은 길들여진 바가 많을뿐더러 그 낯선 세계의 비의에 결코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대지 위에 편하게 서 있는 모자의 모습은 단순한 이분법적 소양 이상의 깊은 것들을 침묵으로 지그시 알려주는 듯 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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