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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김민정 "'갑동이' 오마리아 통해 희열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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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현경 기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구슬픈 휘파람 소리가 안방극장에 전해졌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불렀던 동요가 아닌 연쇄살인범의 등장을 알리는 오싹한 분위기로.

올해 초 장르물이 물밀듯 등장했고 시청자들 또한 ‘미국드라마’에서 벗어난 한국판 스릴러에 관심을 가졌다. ‘장르물 전성시대’를 맞은 2014년 상반기, 케이블채널 tvN 또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갑동이’로 흥행 대열에 합류했다. 방송에 앞서 영화 ‘살인의 추억’과 비교되며 자극적인 소재와 추리의 연속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감독과 작가진은 ‘휴머니즘’을 그린 드라마로 만들었다. 극중 인물들의 아픔을 모두 감싸 안은 '사람 냄새'나는 작품이었다. 이 기획의도에 크게 공감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배우 김민정(32)이다.

김민정은 실제로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 추리 소설을 곁에 두는 편은 아니다. 그간 장르물 시나리오도 들어왔지만 매번 고사했다. 하지만 ‘갑동이’만큼은 김민정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4회분의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바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상처 받은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중성을 가진 정신과 상담의 오마리아를 만난 건 김민정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서운 작품을 보면 계속 생각나서 오래 못 보는 편이예요. 그런데 ‘갑동이’는 다르더라고요. 대본에 휘파람 소리가 있어서 무서웠는데도 계속 생각났어요. 그래서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됐죠. 마리아가 큰 비중이 없었음에도 욕심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상처를 받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리아가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요.” 

김민정이 연기한 오마리아는 과거 12세에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친구와 죽음을 당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 후 그는 죄책감과 함께 사람들과의 거리는 99cm를 유지, 쉽게 타인에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정신과 상담의가 된 오마리아는 수용소의 범죄자들 중에 분명히 갑동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갑동이 앞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진한 화장과 가발로 둔갑한다. 이 또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다. 

김민정은 이중적 성격의 오마리아로 시청자와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민정은 “지금 생각해보니 잘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 돌렸다.
 
“오마리아는 이중인격자에 솔직히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잖아요. 정상적일 수가 없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여인이니까요. 상반된 두 성격을 가진 인물을 시청자와 공감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죠.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게 ‘외줄 타기’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깜빡 잘못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결국엔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재미를 맛보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갑동이 카피캣’ 류태오(이준)를 갑동이라고 생각한 오마리아는 ‘선생님은 왜 한 번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으세요’라고 말하는 그를 단 한번도 이해한 적 없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자신을 찾아온 류태오를 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김민정은 류태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과 함께 류태오가 마지울(김주원)과 마리아를 불러놓고 ‘가위바위보’하는 상황을 ‘갑동이’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이는 과거 갑동이가 오마리아와 친구에게 가위바위보를 해 이기는 사람을 살려주겠다고 한 상황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장면이다.
 
“특히 가위바위보 장면은 작가 언니가 마리아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쓴 지가 보여요. 이 장면은 긴장감이 아니라 마리아의 참회의 시간이죠. 사실 사건을 당한 이후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게 마리아가 살아가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그래서 태오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태오가 죽었을 때 마리아가 흘린 눈물에는 연민과 참회, ‘한 번이라도 믿어줄 걸’이라는 후회가 담겨 있죠. 이 장면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범죄자, 사이코패스의 아픔을 이해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마리아가 우리 드라마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이었다는 뿌듯함도 드네요.”
 
사실 김민정은 1990년 8세에 데뷔한 25년 베테랑 연기자다. 매번 어려운 캐릭터만 들어와 고민이 많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제작진에 항상 감사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5년의 경력이 33세의 나이에 묻힌다. 

서른줄에 접어든 그는 20대에는 좀 더 거침없이 소통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소통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는단다. 지금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함께 촬영하는 배우, 제작진과 소통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30대에 들어섰으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를 어필하고 싶다고 했다.
 
“20대에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어요. 한국 정서에 경력보다 나이로 상황을 가릴 때가 있으니까요. 경력으로 보면 ‘갑동이’에서 함께 연기한 이준, 윤상현씨도 까마득한 후배죠.(웃음) 다행히 이번엔 배우들과 소통이 참 잘됐어요.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준이도 제 호흡을 잘 받아줬고 상현 오빠도 제가 권하는 의견에 잘 수용해줬죠. 처음엔 저의 조언이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오히려 함께 이야기하고 나눠야 더 발전 할 수 있다는 걸요. 이 점이 제가 ‘갑동이’를 통해 배우게 된 소통입니다.”

[사진=더좋은ENT]

 

'진짜사나이' 내레이션 "매주 놀러가는 기분이에요"

연기만 잘할 줄 알았던 김민정이 지난 2월부터 고정으로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특별출연에 이어 지금은 고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자들의 진한 군 생활 이야기에 김민정의 목소리가 덮여지니 한층 더 밝고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에 보탬이 됐다.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내레이션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김민정은 "매주 녹음 차 들릴 때마다 놀러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며 밝게 웃었다.

"목소리 연기는 또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화면으로는 안 나오지만 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새롭고 재미가 있어요. 처음 제의를 받고 '한 번 해보자'였는데 지금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매주 일요일 기분 좋은 목소리 들려드릴게요."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 (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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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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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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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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