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악어들이 멀리서 다가오곤 했다. 다시 하류로 되돌아올 땐 공포와 경외가 깃든 그 강 속으로 이디오피아에서 온 연수생 동기가 다이빙을 했다. 우리가 탄 나룻배 곁에서 수영을 하며 보조를 맞췄는데 수영 솜씨가 기가 막혔다. 악어들이 기습해 저 몸을 물어갈까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는 아랑곳 없이 유유히 헤엄쳐 내려왔다. 그 역시 악어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의 상태나 악어의 성격을 이미 파악한 것인지 그는 전혀 동요하는 낌새가 없었다. 내게선 엄두도 낼 수 없는 행동을 눈부시게 하던 그의 모습 역시 그 인상적인 강의 풍경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 아마 영원할 것이다.
우리 연수생들은 각자 기숙사 독방을 썼는데, 팔뚝만한 도마뱀이 내 방 벽에 달라붙어 있곤 했다. 처음엔 기겁을 했지만, 나중엔 친근해졌다. 죽 이어진 방들에 기거한 연수생들은 모두가 친구였다.
나이가 적든 많든. 무슬림이건 불교건 바하이교건. 흑인이건 수녀건.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홍콩, 마카오, 피지, 케냐,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파푸아 뉴기니아....하나하나 친했다. 그들과 나눈 끈적끈적한 삶의 이야기들. 같이 마신 독한 필리핀 술. 함께 다닌 이 빈곤한 도시의 병원, 주민들의 집, 야자로 만드는 엉성한 비누 공장, 장터, 시골학교, 바다....
이 섬에서 가장 비천한 오지 농촌을 함께 탐방한 기억 역시 생생하다. 차창 유리도 없는 버스로 이동해, 발이 푹푹 빠지는 뻘건 진흙밭을 몇시간이나 걸었는지 모른다. 낡아빠진 집들이 서너채 남아있는 폐허 직전의 촌락이 나타났다. 거기서도 그곳을 끝까지 지키려는 젊은 농촌지도자가 있었다.
대나무들로 얼기설기 엮어 집 형태를 이루고, 맨흙 위에 모포 한장 깔아놓은 것이 방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차가운 한기가 올라오는 그 땅바닥 방에서, 그 농촌지도자는 그 마을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농촌이 대부분인 필리핀에서 농촌 문제는 아마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도록 구조적 모순에 봉착해 있는 듯했다. 더욱이 그 마을은 낙후된 오지이며 빈곤의 바닥에 있는 듯해서 문제의 심각성은 외지인인 나에게도 피부에 달라붙는 듯했다.
그 모순의 한복판에 젊은 농촌지도자는 죽어라 버티고 있는 것이며 혼신의 불을 태우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는 절망의 빛 역시 배여 있었다. 그럼에도 짙은 파토스를 머금은 모습.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던 그의 눈빛과 신념을 잊을 수 없다.
세미나는 세미나대로 열의 있게 진행되었다. 매일매일의 오전 시간. 제3세계의 제반 문제 즉 그 오지 농촌의 문제 같은 빈곤 문제, 물, 종교 갈등, 인권, 공동체 개발 등의 테마들이 구체적인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논의되었다.
인도 할렘가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인도 남자는 그곳의 빈곤과 질병을 심도 있게 다루었고, 사람 좋아 보이는 나이지리아 목사는 아프리카의 물 부족과 오염, 인종 간의 갈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네팔에서 온 아리따운 처녀는 네팔 산지의 여성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 가부장적인 그늘 아래 평생 짐승처럼 일만 하면서도 남자들에 의해 모진 학대와 억압을 받는 여인들의 모습을 슬라이드를 통해 생생히 보여주었다.
한 장면 한 장면 설명해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가고 있었다. 가슴 깊히 우러나오는 호소력 짙은 설명에 의해 슬라이드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눈시울이 함께 붉어지던 시간이었다. 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에서 벌어진 실화를 담은 기록영화를 관람한 적도 있었다. 얼굴이 뭉개진 아이, 팔다리가 잘려나간 남자, 가슴이 흉칙하게 파인 여자...미국의 원폭 실험 때문에 생긴 피해 사례였다. 경악을 금치 못할 장면들을 보면서 너나없이 분개했다.